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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정간섭 말라”…갈등의 골 깊어지는 폴란드 vs 유럽연합

중앙일보

입력

폴란드와 유럽연합(EU)간 갈등이 증폭되고 있다.
지난해 말 사법부 개혁에 따른 독립성 훼손 여부를 둘러싼 대립에 이어 이번엔 유럽의 마지막 원시림을 놓고 양측이 비난전을 벌이고 잇다. 원시림 보호를 위해 벌목을 금지해야 한다는 유럽사법재판소(ECJ)의 결정을 폴란드 정부가 무시하고 벌목작업을 계속하고 있기 때문이다.

양측 환경 정책, 사법 개혁 놓고 대립 #헝가리도 폴란드 편들며 싸움 가세 #EU #“폴란드, 벌목금지 결정 위반했다” #“사법부 개혁은 독립성 침해 우려” #폴란드 #“산불 예방 등에 꼭 필요한 조치” #“사법부 개혁 반대는 내정 간섭”

21일(현지시간) 영국 텔레그래프 등에 따르면 ECJ의 법률고문인 이브 보 법무감은 “폴란드 정부가 바이알로비에자 원시림에 대한 벌목을 허용한 것은 유럽연합의 법규를 위반한 것”이라며 “법원은 폴란드가 EU 법을 준수하지 못했다고 최종 판결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에 맞서 헨리크 코발치크 폴란드 환경장관은 “ECJ의 최종 판결을 존중할 것이다. 나무를 벤 것은 공공안전을 위한 것으로 EU의 금지명령을 어긴 것이 아니다”고 반박했다. 그러면서 “미래 세대에게 남겨줄 숲을 유지하기 위해 우리는 지금도 모든 조치를 취하고 있다”고 덧붙였다.

바이알로비에자 숲은 유럽에 남은 최후의 원시림으로 1만년 전 유럽 생태계를 간직하고 있는 것으로 평가받고 있다. 약 15만ha 크기로 폴란드와 벨라루스에 걸쳐있다. 1979년 유네스코 세계유산에 등재됐다. 벨라루스는 자국에 있는 이 원시림 전체를 보호구역을 지정했지만 폴란드는 일부 만을 보존하고 있다.

전문가들은 이 숲의 생태학적 가치가 막대하다고 평가한다. 현존하는 유럽 최대 동물인 유럽들소를 비롯해 동물만 2만종이 넘게 이 숲에 서식하고 있다. 높이 50m에 달하는 전나무 등 희귀 식물들도 자생하고 있다. 이에 따라 환경단체 등은 이 숲에서 폴란드 정부가 상업적 목적의 벌목을 금지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하지만 폴란드 측은 “벌목은 제한적으로 이뤄지고 있으며 산불 예방과 산림병의 확산 등을 막기 위한 조치”라고 항변한다.

마테우시 모라비에츠키 폴란드 신임 총리. [로이터=연합뉴스]

마테우시 모라비에츠키 폴란드 신임 총리. [로이터=연합뉴스]

ECJ는 이미 지난해 7월 벌목작업 중단을 결정하고 이를 폴란드 정부에 통보했다. 하지만 폴란드 정부는 “벌목을 계속할 것이며 ECJ의 결정에 항소할 것”이라고 반발했고, 현재 항소심이 진행 중이다. 폴란드 TV방송은 심지어 이 숲에서 벌목하는 장면을 내보내기도 했다. 벌목이 계속되자 급기야 ECJ는 폴란드에 하루 10만 유로(약 1억3000만원)의 벌금을 부과할 수 있다고 경고하기도 했다.

폴란드와 EU 마찰은 이뿐만이 아니다. 사법부 개혁을 둘러싼 대립도 진행형이다. 당초 EU는 지난해 12월 폴란드 집권당인 '법과 정의당(PiS)'이 주도하는 개혁이 사법부 독립성을 침해한다며 중단을 요구했다. 이에 응하지 않을 경우 리스본 조약 7조를 발동해 조사한뒤, 사법부에 대한 독립성 침해가 드러날 경우 폴란드의 EU 투표권 박탈까지 경고했다. 그러면서 3개월의 유예기간을 폴란드에 줬다.

난민을 겨냥한 범죄 등 유럽에선 그간 금기시되던 ‘인종 혐오’ 움직임이 확산하고 있다. 2017년 말 헝가리 부다페스트에서 열린 극우파들의 집회.  [로이터=연합뉴스]

난민을 겨냥한 범죄 등 유럽에선 그간 금기시되던 ‘인종 혐오’ 움직임이 확산하고 있다. 2017년 말 헝가리 부다페스트에서 열린 극우파들의 집회. [로이터=연합뉴스]

하지만 폴란드 정부는 꿈쩍도 하지 않고 있다. 안제이 두다 폴란드 대통령은 “사법개혁은 EU가 아닌 우리의 문제”라며 “폴란드가 EU의 가치를 위반한다는 주장은 거짓말”이라는 입장을 고수하고 있다.

헝가리 마저 이 싸움에 뛰어든 형국이다. 이와 관련 헝가리 의회는 21일 폴란드 정부를 지지하는 결의안을 통과시켰다. “헝가리가 폴란드를 지지하고 EU 조약에 따른 폴란드의 권리를 박탈하거나 제한하는 것에 반대한다”는 내용이다. 헝가리의 집권 세력은 폴란드와 마찬가지로 보수 우파 성향으로 난민 정책 등에서 공조하고 있다. 두 나라는 EU의 비난에도 불구, 난민 할당제를 거부하면서 난민을 한 명도 받아들이지 않고 있다.
최익재 기자 ijchoi@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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