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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석만의 인간혁명]철기·문자 혁명이 피운 ‘인문의 꽃’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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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4면

소크라테스와 공자, 석가모니의 공통점은 뭘까요. 이들은 예수와 함께 4대 성인으로 꼽히는 분들입니다. 각기 동서양에서 인류 문명의 발전에 큰 영향을 미친 위인들이죠. 또 이들은 모두 비슷한 시기에 활동했습니다. 유럽과 아시아에서 정신문화의 꽃을 화려하게 피웠던 주인공들이 동시대 인물이었다는 게 흥미롭습니다. 동서양이 서로의 존재조차 잘 몰랐던 시절, 이들은 어떻게 같은 시기에 인류 문화의 꽃을 피울 수 있었을까요. 2500년 전 동서양 문명의 발전엔 어떤 비밀이 숨어 있을까요? 그때 인류에게 무슨 일이 있었는지 정신문화의 원류가 됐던 BC 5세기의 중국과 그리스로 잠시 여행을 떠나보시죠.

2500년전 동서양 정신문화 전성기 #AI혁명 앞두고 인문적 성숙이 필수 #관용·개방·다문화, 미래문명 핵심

왼쪽부터 석가모니, 소크라테스, 공자.

왼쪽부터 석가모니, 소크라테스, 공자.

“아버지, 아킬레우스는 진짜 있었나요? 트로이 전쟁은요.”

열살 소년의 눈망울은 호메로스를 이야기할 때면 늘 빛이 났습니다. 말이 트일 무렵부터 아버지가 들려준 『일리아스』와 『오디세이아』는 세상의 전부였죠. 가난한 시골 교회의 목사였던 아버지는 풍족한 삶을 주진 못했지만, 누구도 꾸지 못할 큰 꿈을 안겨 줬습니다. “저 구름 뒤엔 그리스라는 나라가 있어, 거기엔 영웅들이 살았던 모습이 남아 있지. 어른이 되면 꼭 가보렴.” 그 때부터 소년의 인생 목표는 호메로스의 전설을 찾는 것이었습니다.

이는 독일의 고고학자 하인리히 슐리만(1822~1890)의 이야깁니다. 가난 때문에 교육을 제대로 받지 못한 그는 10대 시절 잡화상 점원부터 선원까지 닥치는 대로 일했습니다. 밤에는 홀로 독학하며 그리스의 영웅들을 꿈꿨죠. 서부개척 시대 미국으로 건너가 큰돈을 번 그는 46세가 됐을 때 트로이 전쟁의 무대였던 터키로 발굴을 떠납니다.

하지만 당시 학계에선 슐리만의 행동이 무모하게 보였습니다. 호메로스의 이야기는 전설일 뿐이라는 거였죠. 그러나 발굴 작업을 시작한 지 5년, 슐리만의 꿈은 현실이 됩니다. 오랜 세월 목동과 양떼만 지나다니던 시골 마을의 언덕이 찬란했던 트로이의 문명지로 눈앞에 드러난 거죠. 3000년 간 잠들어 있던 전설이 역사적 실재로 깨어난 순간이었습니다.

이어 영국의 고고학자 아서 에번스(1851 ~1941)가 크레타·미케네 문명을 차례로 발굴하면서 그리스 초기 문명이 역사 앞에 본 모습을 드러냈죠. 트로이와 함께 세 문명의 삼각 축을 중심으로 하는 에게 문명의 실체가 완성된 겁니다. 에게는 지중해 연안의 여러 지역들과 교류하며 유럽 문명사의 첫 페이지를 장식하죠.

3000년 만에 드러난 트로이 문명

철기의 동서양 전파 경로

철기의 동서양 전파 경로

그러나 서양문명의 시작을 알린 에게는 북쪽에서 침입한 도리아인에게 멸망합니다. 영화 ‘트로이’에서 묘사된 것처럼 뛰어난 기술과 막강한 군대를 보유했던 에게였지만, 도리아인 앞에선 속수무책이었죠. 그 이유는 도리아인이 사용한 무기에 있었습니다. 인류 최초로 철기를 사용한 히타이트가 멸망(BC 1200년 전후) 하면서 철기가 퍼져나갔는데, 이를 그리스에 처음 들여온 게 도리안입니다. 도리아인은 ‘헤라클레스’의 자손이라 불릴 정도로 용맹함을 과시하며 그리스 본토를 점령합니다.

하지만 산과 분지가 많은 그리스의 지형은 시간이 갈수록 도리아 왕조의 영향력을 약화시켰습니다. BC 700~800년경 왕국은 200여 개의 폴리스(polis·도시국가)로 분화되죠. 폴리스는 도리아인이 들여온 온 철기를 무기뿐 아니라 농기구로 사용하며 생산력이 급증했습니다. 철제 농기구의 사용은 오늘로 치면 엄청난 기술혁신이었죠. 생산력의 증대는 ‘잉여가치’를 확대했고, 인간을 단지 먹고 살기 위한 생존노동에서 해방시켰습니다.

아울러 문자가 없던 도리아인과 달리 폴리스인은 에게 시대의 선형문자를 발전시켜 생활 문화로 삼았습니다. 문자의 확산은 교양 있는 사람들이 많아지는 문화적 토대를 마련했습니다. 이처럼 생산력의 급증으로 여유가 생긴 이들이 높은 교양까지 갖추면서 역사상 최초로 ‘시민’이라는 계층이 탄생합니다. ‘왕-귀족-평민-노예’였던 사회구조가 무너지고 직접민주주의가 시작된 거죠.

시민들은 아고라에 모여 국가 중대사를 결정했습니다. 또 자신의 안위와 재산을 지키기 위해 스스로 검사·변호사가 돼야 했죠. 그리스 고전 연구의 권위자인 김헌 서울대 교수는 “각 개인이 스스로 정치인·법조인이 돼야 했기 때문에 모든 시민들은 합리적으로 토론할 줄 알며 이성적으로 의사 결정할 수 있는 능력을 키워야 했다”고 말합니다. 이를 가능케 한 것이 수사학이죠. 전문적으로 수사학을 가르치던 이들이 ‘소피스트’였고요.

철기혁명으로 시민계층의 탄생

라파엘로는 그리스 문화의 부활을 꿈꾸며 실존 인물을 모티브로 ‘아테네 학당’을 그렸다. 화면 정중앙의 플라톤은 손으로 하늘을 가리키며 이상세계인 ‘이데아’를 이야기하고 있다. 그 옆에 손바닥을 땅으로 향한 아리스토텔레스는 현실세계를 강조했다. 그림 왼편에서 허름한 옷을 입고 열변을 토하고 있는 인물이 소크라테스다. [중앙포토]

라파엘로는 그리스 문화의 부활을 꿈꾸며 실존 인물을 모티브로 ‘아테네 학당’을 그렸다. 화면 정중앙의 플라톤은 손으로 하늘을 가리키며 이상세계인 ‘이데아’를 이야기하고 있다. 그 옆에 손바닥을 땅으로 향한 아리스토텔레스는 현실세계를 강조했다. 그림 왼편에서 허름한 옷을 입고 열변을 토하고 있는 인물이 소크라테스다. [중앙포토]

그리스어로 ‘지혜로운 자’를 뜻하는 소피스트는 여러 폴리스를 돌며 다양하고 폭넓은 주제로 강의했습니다. 수사학뿐 아니라 문법, 시, 음악 등을 가르치며 전인교육을 했죠. 한편으로는 철학적 사고와 논증을 통해 인간과 자연에 대한 탐구 활동을 이어 나갔습니다. 그 중 최고의 지성으로 꼽힌 이가 소크라테스였고, 그의 정신은 플라톤과 아리스토텔레스 등 제자들로 이어졌습니다. 당시 그리스는 페르시아 전쟁(BC 492~448)의 승리로 큰 번영을 누렸습니다. 그 중심인 아테네는 물질문명 뿐 아니라 정신문화에 있어서도 앞서 있었죠. 다양한 학문이 꽃피었으며, 시민의 교양은 높아지고 민주주의를 통한 정치 체제는 성숙했습니다. 개방과 관용의 문화가 그리스를 뒷받침하며 역사상 가장 찬란했던 인문의 꽃을 피웁니다.

고대 그리스가 눈부신 문명을 이룩할 수 있던 이유를 요약해 보면 두 가지입니다. 철기를 농사에 사용하면서 생산력이 급증하고 잉여가치가 확대됐다는 게 첫 번째고요. 문자의 확산으로 시민의 교양이 높아지고 지적 문화가 성숙했다는 게 두 번째입니다. 물질적 성장에 걸맞은 정신적 성숙을 이루면서 찬란한 문명이 꽃 피었던 거죠.

동서양에 철기 전파된 시기와 효과

동서양에 철기 전파된 시기와 효과

중국도 마찬가집니다. 히타이트의 멸망과 함께 서쪽으론 도리아인이, 동쪽으론 유목민족인 스키타이가 철기를 전파합니다. 중국에서 철제 농기구가 확산된 건 춘추시대의 일입니다. 농사에 철을 사용하면서 ‘우경(牛耕·소를 농사에 이용하는 것)’이 가능해졌고, 이는 생산성을 크게 높였습니다. 특히 제(齊)나라의 명재상 관중은 철의 사용량을 늘리며 기술혁신을 주도했죠. 생산성이 높아지고 나라의 재정이 튼튼해지면서 제나라는 춘추시대의 패권국가로 부상합니다.

‘춘추전국이야기(1~11권)’를 쓴 공원국 작가는 “관중이 설계한 국가의 체제와 사회 시스템은 춘추시대, 나아가 중국 역사의 글로벌 스탠다드가 됐다”고 설명합니다. 다른 나라들도 철제 농기구와 우경을 확대하며 높은 생산성을 갖게 됐고, 상업의 발달로 다양한 문물이 교류하며 춘추시대는 황금기를 맞이합니다.

그리스 초기문명 발상지, 중국 춘추시대 영역도

그리스 초기문명 발상지, 중국 춘추시대 영역도

최초의 지식인 집단 ‘사(士)’ 등장

이처럼 새로운 시대가 열리며 생겨난 계층이 ‘사(士)’입니다. 과거 봉건제도 아래선 귀족과 평민으로 계급구조가 명확했죠. 바로 토지를 갖고 있느냐, 아니냐의 차이였습니다. 그런데 ‘사(士)’는 토지는 없어 귀족으로 분류되진 않았지만, 그렇다고 육체노동을 하고 조세를 바치는 평민도 아니었습니다. 대신 전문적으로 학문을 연구하고 지식을 제공해 대가를 받는 최초의 지식인이었습니다.

이들은 제후의 집에 머물며 선생 역할을 하기도 했고, 정치 참모가 되기도 했습니다. 집단의 규모가 커지면서 한 명의 스승 아래 100여 명의 제자가 몰려다니기도 했죠. 이렇게 ‘사(士)’가 모여 일가를 이룬 게 제자백가입니다. 그 중 대표적인 인물이 공자였죠. 그는 맹자와 함께 ‘인의예지’ 등 사람의 본성과 도덕을 강조하며 유가 사상을 발전시켰습니다. 이외에도 엄격한 규율을 중시한 한비자의 법가, 자연과 무위를 강조한 노·장자의 도가, 평화와 사랑을 실천하는 묵자의 묵가 등이 활약했습니다.

기술혁신은 삶과 제도를 바꿔

흥미로운 것은 ‘사(士)’와 소피스트의 성격과 역할이 유사했다는 겁니다. 활동했던 시기도 비슷했고요. 이들이 만들어낸 학문과 지식은 문자를 통해 전달되며 문명 발달을 가속화 했습니다. 공자와 소크라테스 같은 위대한 성인이 나올 수 있던 것도 ‘사(士)’와 소피스트 같은 탄탄한 지식인 사회가 만들어졌기 때문입니다. 물론 그 밑바탕을 이룬 건 철기혁명이라는 기술혁신이었고요. 2500년 전 인류 역사가 말해주는 건 기술발달은 필시 문명 전환의 토대를 마련한다는 겁니다. “기술은 인간의 삶과 제도를 바꾸고 새로운 가치를 만들어 내기 때문”(앨빈 토플러, 『제3의 물결』)이죠. 하지만 물질적 성장에 걸맞은 정신적 성숙을 이루지 못하면, 그 사회는 곧 나락으로 떨어집니다.

선조보다 아는것 많지만 지혜는 떨어져

18세기 산업혁명이 대표적입니다. 증기기관과 방적기의 발명은 물적 성장의 새로운 토대를 마련했습니다. 그러나 인간을 기계의 부속품처럼 여기며 인간성은 말살됐고, 착취하는 자본가와 억압받는 노동자의 구도가 만들어졌죠. 19세기 초 기계파괴 운동인 ‘러다이트’ 같은 극단적 흐름이 확산되기도 했습니다. 특히 이런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선 사회 전복이 필요하다는 마르크스의 급진적 이론이 ‘유령처럼 온 유럽을 떠도는’ 일도 생겼습니다. 산업혁명기의 유럽은 기술혁명에 걸맞은 질적 성숙을 이루지 못하면서 사회 모순과 갈등을 잉태했습니다.

그리고 지금 우리 앞엔 또 다른 기술혁명이 놓여 있습니다. 4차 산업혁명은 이전의 기술혁신보다 더 큰 변화가 예상됩니다. 수십년 내에 인공지능(AI)이 인간의 능력을 뛰어넘는 특이점의 시대가 올 것으로 예상되고요. 문자에 한정됐던 지식과 문화의 소통 수단은 동영상과 홀로그램 등으로 획기적이게 변하고 있습니다. 제자백가와 소피스트가 그랬듯 정신문화를 한 단계 높이고 인문의 꽃을 화려하게 피울 수 있는 기틀이 다져지고 있는 거죠.

그러나 지금은 기대보다는 걱정이 앞섭니다. 지혜로운 선조들이 그랬듯 우리도 잘 할 수 있을지 의문이죠. 시민 개개인은 눈부신 기술발전을 정신문화와 조화시킬 수 있을 만큼 현명한가요. 제도는 차별과 격차를 줄이고 공정한 기회를 통해 더불어 잘 사는 세상을 만들 수 있을 만큼 성숙한지요. 비록 2500년 전 인류보다 우리가 알고 있는 지식의 총량은 훨씬 많을지 몰라도, 우리가 그들보다 더욱 지혜로운지, 더 높은 교양을 가졌는지 자신할 수 없습니다. 지금 우리에게 절실한 건 무엇일까요. 과학과 기술뿐일까요, 가치와 정신도 중요할까요.

윤석만의 인간혁명

‘인간혁명’은 4차 산업혁명이란 말 속에 미래를 가두지 않고 과학·기술의 발달이 가져올 교육·문화·제도 등 인간 사회 전반의 혁명적인 변화를 탐구할 계획입니다. 역사와 철학, 예술·과학 등 다양하고 흥미 있는 이야기로 인간과 미래에 대한 생산적인 담론을 제시하겠습니다.

윤석만 기자 sam@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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