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생「님」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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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2면

「선생」이란 말엔 여러 가지 뜻이 있다. 가장 보편적인 뜻은 글자 그대로「먼저 세상에 태어난 사람」으로 스승, 교사, 사장이란 말이다.
그러나 『논어』의 위정 편에는 선생이란 말이 부모 또는 부형으로 쓰이고 있다. 자하가 효도에 대해 물으니 공자 말씀이『좋은 낯빛으로 섬기기가 어렵다. 일이 있으면 자제들이 그 노역을 맡고 술과 음식이 있으면 먼저 어른에게 올리는데(선생찬) 이것만으로 어찌 효도한다 하겠는가』하는 대목이다.
같은 선생이란 말이『맹자』에는「자기보다 먼저 도를 깨친 사람」을 일컫는다.
하지만 요즘은 선생이란 말이 평가 절하되어 상대방을 부르는 일반적 호칭이 돼버렸다. 그래서 나이가 지긋한 어른이 새파랗게 젊은 사람을 보고「아무개 선생」이라고 부르는 예를 흔히 본다.
물론 스승이나 손위 어른을 부를 때는「님」자를 붙여 존칭으로 쓰이기도 한다.
영어에서는 선생을 뜻하는 단어에 teacher, tutor, mentor, ma-ster, doctor등이 있다. 티처의 원래 뜻은「보여준다」에서 나왔으며「상징·기념품」의 token정점과 어원이 같다.
튜터는 라틴어의 보호자·후견인이란 말에서 나왔는데 영어에서는 주로 가정교사라는 의미로 쓰인다. 멘터는 그리스 신화에 나오는 양육의 신 멘토르에서, 닥터는 라틴어「가르치다」에서 파생된 말이다. 그러나 이들 단어의 어디에도 훈도의 뜻이 담겨있지 상대방을 부르는 일반적인 호칭의 뜻은 없다.
엊그제 신문을 보면 어느 야당 총재가 자신의 호칭을「선생님」또는「총재 님」으로 부르지 말라고 당부했다. 하긴 총재 호칭에는 이미 경칭의 의미가 있으니 굳이「님」자를 넣을 필요가 없다.
이같은 권위주의적 호칭은 제6공화국이 들어서면서 많은 변모를 했다. 노태우 대통령은 취임식장 현수막에「각하」라는 말을 빼어 버렸고, 그 이후에도 각하라는 말을 쓰지 못하게 했다.
이현재 총리도 취임 후 총리 밑에「님」자를 떼고 불러달라고 했다. 많은 철학자들이 『언어는 사고를 지배한다』고 했다. 권위주의적 호칭의 청산이야말로 민주화로 가는 지름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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