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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간중앙] 정부가 '강남 집값' 잡을 수 없는 5가지 이유

중앙일보

입력

되풀이되는 부동산 '강남불패' 신화


주거·교육 환경에 재테크까지, 수요 많은데 공급
줄이니 가격 치솟아… 규제보다는 강남 대체 주거지
조성 등 양질의 주택 공급으로 풀어야

정부가 강남 아파트값을 안정시키기 위해 각종 규제 조치를 내놓고 있지만 현지에서는 오히려 희소가치만 높아지면서 아파트 시세가 급등한다. 부동산 전문가들은 정부 정책만으로는 강남 집값을 절대 잡을 수 없다고 말한다. 왜 그럴까? 

장면 하나. 지난 2월 2일, 서울 서초구 반포동 아파트단지 상가의 A공인중개사 사무소. 출입문 손잡이를 당겼으나 문이 잠겨 있었다. 돌아서려는데 직원 한 명이 빼꼼히 문을 열더니 위아래를 훑어보고는 사무실 안으로 안내했다. 국토교통부 단속요원으로 알았던 모양이다. 반포동은 지난 연말을 거치면서 아파트값 상승 폭이 매우 컸던 지역 중 하나다. 3~4인 가구 중산층이 선호하는 84.94㎡(25평형)정도의 아파트가 있는지 물어봤다.

“물건 자체가 없다. 지금은 사람들이 불안하니까(집주인들이) 다 안 판다고 한다.” 정부 정책이 어떻게 될지 몰라 집주인들이 불안해 한다고 했다. 매물을 내놓았다가 거둬들이는 집주인 중에는 “노무현때도 버텼는데 뭘… 어디까지 버틸지 보자”는 식의사람들도 있다고 했다. 그런 배짱이라면 집 한 채 가진 집주인이라기보다는 자금력 있는 업계의 ‘큰손’들일 수 있다. 전문가들에 따르면 현재 시중에 풀려 있는 부동자금은 1000조원이 넘는다. 재건축아파트 투자 수익이 금융권과 증권시장 투자 수익을 상회하는한 이 자금의 상당 부분은 부동산으로 투입될 수밖에 없다.

호가만 오른 것이지 그래도 적당한 가격이면 팔려는 사람은 있지않을까요?

서울 서초구 반포주공아파트의 한 부동산 중개업소. 집값이 오르면서 팔려고 내놓았던 집주인도 계약한다고 하면 거둬들이는 판이다.

서울 서초구 반포주공아파트의 한 부동산 중개업소. 집값이 오르면서 팔려고 내놓았던 집주인도 계약한다고 하면 거둬들이는 판이다.

“팔려고 내놓았던 집주인도 막상 계약한다고 하면 (돈 욕심에) 거둬들이는 판이다. 거래되면서 가격이 오른 것보다 내놓는 사람이 적어 호가가 많이 올랐다.”시세는 어느 정도일까? 지은 지 5년 된 26평형 아파트가17억 5000만원이라고 했다. 그것도 매물이 없으니 기다려봐야 한단다. 비슷한 면적의 그보다 오래된 아파트는 17억원,새 아파트는 19억~20억원이라고 했다. 10년 전, 반포동의 낡은 주공아파트 한 채가 7억원이었다. 그때만 해도 큰돈이었다. 그 뒤부터 무려 2.5배나 뛴 것이다.저층으로 조금 싼 것은 없나요?“저층이고 고층이고 다 똑같다. 돈 없으면 강남에 집 못 산다.”이제는 서민은 고사하고 어지간한 중산층도 강남 진입은꿈도 꿀 수 없게 됐다는 말로 들렸다.

“재건축아파트는 돈 되는 장사”

재건축 대상인 반포주공아파트. 이 낡은 아파트 한 채가 20억원이 넘는 금액에 거래된다.

재건축 대상인 반포주공아파트. 이 낡은 아파트 한 채가 20억원이 넘는 금액에 거래된다.

장면 둘. 부동산 업계를 잘 아는 지인의 소개를 받아 한 블록건너에서 중개업에 종사하는 B씨를 찾았다. 그는 10여 년 전부터 발빠르게 재건축 대상 아파트를 여러 채 매입해놓은 실속파다. 대학 선후배와 지인 등 친소관계에 따라 1인당 수백만 원을 주고 이름을 빌렸다. 그렇게 매입한 재건축아파트가지금 한 채당 18억~19억원이다. B씨는 겉으로는 허름한 중개업소를 운영하고 있지만 여느 중소기업 사장 부럽지 않은부자인 셈이다. 실제 B씨처럼 자금력 있는 부동산 자본가가돈을 버는 게 업계의 생리다.B씨에 따르면 예나 지금이나 반포주공은 매력적인 투자처다. 부동산 시장의 블루칩이라 늘 공급이 달린다. 반포래미안퍼스티지는 최근전용면적 84.94㎡가 23억원에 계약 됐다. 3.3㎡(1평)당 8000만원이 넘는다.1년 전에는 같은 크기의 아파트가 16억원에 거래됐다. 무려 7억원이 올랐다.강북의 어지간한 아파트 한 채 값이 더된다. 역시 재건축한 아파트인 아크로리버파크는 지난해 11월 84㎡가 22억9000만원에 거래됐다. 전해에 비해 6억원이 상승했다. 반포동의 중개업자들은이 같은 사례를 전국 각지에서 찾아온‘고객’과 ‘사모님’들에게 그래프로 보여준다.

B씨에 따르면 현재는 같은 반포동이라도 호가 차이가 크다. 아직 시공사를 정하지 못한 재건축 예정 단지인 반포 3주구는 재건축 뒤 초과이익 환수 대상이다. 전용면적 72㎡ 거래가는 18억~19억원에 그친다. 이와 달리 지난해 말 재건축시공사 선정을 마친 반포동 1·2·4주구는 올해 1월부터 시행된 초과이익 환수제가 적용되지 않는 아파트다. 전용면적 84㎡가 34억~35억원을 호가한다. 3.3㎡당 무려 1억원을 웃돈다. 그런데도 매물이 없다. 정말 ‘억’ 소리가 절로 난다.

GS건설이 시공 예정인 재건축아파트 조감도. 첨단 기능이 장착된 스마트한 아파트로 신축된다.

GS건설이 시공 예정인 재건축아파트 조감도. 첨단 기능이 장착된 스마트한 아파트로 신축된다.

왜 이렇게 호가가 높을까? 투기적 가수요가 집값을 너무올린 것은 아닐까? B씨는 이렇게 설명했다.

“재건축한 새 아파트는 요즘 말로 ‘신상’이다. 인공지능등 첨단 기능이 장착된 스마트한 아파트다. 신상이니까 비싼것은 당연하다. 집주인이 호가를 높게 부르는 것은 조합원이 내야 하는 추가 분담금, 재건축 초과이익 환수제에 따른 6억~8억원의 부담금, 예정된 종합부동산세, 대출금과 이자부담, 미래가치에 대한 추정금액 등을 감안해 산정했다고 봐야한다. 정부가 집값에 부담금을 퍼부으면 그 부담금이 결국시세에 반영되는 구조다. 비쌀 수밖에 없다.”

“그래도 너무 비싸다”고 하자 B씨가 뭘 잘 모르는 사람이라는 듯 쐐기를 박았다. “요즘 여기 반포 학생들은 대치동(학원가)으로 가지 않는다. 반포 안에 대치동 학원을 만들어놓았다. 지금 S아파트 주변이 학원가로 바뀌었다. 대치동의고액강사를 반포동으로 다 스카우트해왔다. 고급 주거 환경에 교육 프리미엄이라는 현재가치, 은행 이자율보다 높은재테크를 가능하게 해주는 미래가치까지 생각해야 한다. 강남 재건축아파트는 비싸게 사도 돈 되는 장사다.” 정부가 강력한 초과이익 환수제를 발표했지만 가격이 오를 대로 오른반포동은 별다른 영향을 받지 않은 듯 보였다. 오히려 철옹성을 높이 쌓고 있었다.

“지금 강남에 집을 사고 싶어하는 사람은 서울 사람만이아니다. 전국에서 돈푼깨나있는 사람은 다 강남에 터를잡고 싶어 한다. 아니면 자기자녀들이라도 강남에 살게해주고 싶어 한다. 한국에진출하는 글로벌 기업들도강남을 원한다.” 

다음 날, 이번에는 잠실 아파트단지를 찾았다. 잠실동의 잠실파크리오, 잠실엘스 등 재건축을 통해 빌딩숲이 된 잠실은 말 그대로 상전벽해다. 특히 롯데월드타워가 지어진뒤로 중산층이 가장 선호하는 주거지역 중 하나가 됐다. 잠실 일대는 부동산 중개업소들마다 문을 닫아건 업소가 많았다. 문을 열어놓았어도 하나같이 매물이 없다고 손사래를 쳤다. 그중 중개업소 한 곳을 찾았다. 전용면적 84.94㎡에 12억5000만~13억원대로 거래되고 있었다. 반포동보다는 시세가 낮다.

오른 아파트값 지키려는 ‘담합’도

시세를 물으며 상담하는 사이 중개업소 사장의 휴대전화로전화가 걸려왔다. 갑자기 목소리를 낮추더니 대화가 길어졌다. 휴대전화 속에서 “OO억원 이하로는 안 돼요.…” 하는 소리가 흘러나왔다. 중개업소 사장은 “알겠습니다. 사모님! 집보러 갈 때 확인하겠습니다”라고 말하고는 휴대전화를 껐다.

국회에서 열린 국토교통위원회 전체회의에 참석한 김현미 국토교통부 장관. 주무부처 장관으로서 강남 집값을 잡기 위해 골몰하고 있다.

국회에서 열린 국토교통위원회 전체회의에 참석한 김현미 국토교통부 장관. 주무부처 장관으로서 강남 집값을 잡기 위해 골몰하고 있다.

‘집값 담합’이 의심됐다. 강남에서는 급격히 오른 집값이떨어질까 봐 집주인들이 불안해하면서 집값 담합에 나서기도 한다. 지난해 말에 송파구에 있는 한 재건축 추진 아파트단지 엘리베이터에는 ‘OO 집값 지키기 운동본부’ 명의로‘강남은 담합을 통해 매주 1억원씩 집값을 올리고 있는데,우리 단지도 OO억원 이하로는 집을 팔지 않기로 결의했다’는 게시물이 붙기도 했다. 반상회에서 집값 담합을 결의한뒤 중개업소 사장과 부녀회가 긴밀히 손잡고 매매가의 범위를 ‘관리’하기도 한다. 집주인이 사정이 급해 매도가를 낮춰급매물을 내놓으면 아파트단지의 시세 하락을 이유로 매물을 거둬들이라고 종용하는 기막힌 사태도 벌어진다. 호가를 낮게 불렀다가 부녀회 간부로부터 질책을 받는 경우도 있다.‘강남불패’의 신화는 거저 얻어지는 게 아니다.

현장 취재 결과, 정부가 강남 집값을 잡기 위해 갖은 정책을 내놓고 있지만 강남 현지는 요지부동이었다. 시중에 풀린풍부한 유동자금을 무기로 강남만의 견고한 성을 구축하고있었다. 투자 개념으로 강남의 블루칩 아파트를 사려면 전용면적 84.94㎡의 경우 17억~22억원이 필요하다. 주담보(주택담보대출)를 통한 자금 마련은 현실성이 없어졌다. 글로벌 경제의 급격한 변화로 집값이 일시적으로 떨어질 경우도감당하려면 어지간한 자본력이 없으면 강남 아파트를 보유하기 힘들게 됐다. 이제 강남 아파트는 자산가들의 주택이자재테크 대상이다. 진입장벽이 높아졌고, 중산층이 뛰어들기에는 위험부담이 커졌다.

20년 동안 부동산을 연구해왔다는 경제신문의 간부 K씨는 이렇게 말했다. “강남의 집값은 정부 정책으로 절대 잡을수 없다. 강남의 집값은 강남만의 수요·공급으로 결정되는게 아니기 때문이다.” 그의 말을 더 깊이 들어보자.

“지금 강남에 집을 사고 싶어 하는 사람은 서울 사람만이아니다. 전국에서 돈푼깨나 있는 사람은 다 강남에 터를 잡고 싶어 한다. 아니면 자기 자녀들이라도 강남에 살게 해주고 싶어 한다. 그뿐만이 아니다. 요즘은 한국에 진출하는 글로벌 기업들도 강남을 원한다. 사무실은 광화문에 얻더라도집은 강남에 얻고 싶어 한다. 학군 좋고 교통 편리하고 살기편한데, 누가 강남을 원하지 않겠나?”

K씨의 말은 현실을 반영하고 있었다. 강남의 교통, 교육,경제, 문화 인프라는 다른 지역을 압도한다. 현장 취재와 몇몇 전문가의 견해를 종합하면 정부가 강남 집값을 잡을 수 없는 데는다섯 가지 요인이 작용하고 있었다.

첫째, 시장원리다. 기본적으로 강남아파트는 수요는 많은데 공급이달린다. 강남권에 있는 주택은 모두 합해봐야 30만 채 정도다. 이 30만 채를 두고 전국에 걸쳐, 그것도 지속적으로 수요가 늘어나고 있다. 부동산 전문가들에 따르면 강남에는 아파트 지을 땅이 부족해 재건축을 통해 공급해야 한다. 그런데 정부가 재건축을 규제해 오히려 집값을 치솟게 한다. 그 정책도부처가 혼선을 빚고 있다. 김현미 국토교통부 장관이 “재건축 가능 연한을 30년에서 40년으로 늘리겠다”며 규제를 시사하자 김동연 부총리는 “그렇게 되면 강북 재건축까지 막을 수 있다”고 반대 입장을 밝혔다. 정부 정책이 시장의 신뢰를 주지 못하는 사이에 투기적 성격의 유동자본이 재건축 시장에 대거 유입되면서 집값만 치솟았다. 집주인들은 내놓았던 매물도 거둬들였고, 자연히 호가는 높아졌다. 지난 연말이후 벌어진 일이다.

조국 수석도 강남 집은 안 팔아 

영동대로복합환승센터 지하조감도. 대규모 강남 개발사업이 강남 선호심리를 부추겼다는 지적도 있다.

영동대로복합환승센터 지하조감도. 대규모 강남 개발사업이 강남 선호심리를 부추겼다는 지적도 있다.

여기에는 일부 불법적인 요소도 작용한다. 투기적 자본의 개입이다. 자금력이 풍부한 부동산 자본이 경쟁하듯 값을 올린다. 자전(自轉)거래도 있다. 대형 중개업자들이 자신들이 보유한 아파트를 서로 비싸게 사고팔고 하면서 인위적으로 거래가를 높이는 행위다. 국토교통부 조사단이 강력 단속에 나선 이유이기도 하다. 부동산 업계에서는 자금력이 있으면 많아 사두면 사둘수록 돈이 된다는 게 상식이다. 집값 상승기에는 보유한 집이 얼마나 많느냐에 따라 돈 버는 게 다르다.돈이 돈을 버는 구조다. 하지만 이 같은 투기적 자본이나 자전거래는 집값 상승의 부분적인 요인이다. 수요에 비해 공급이 부족하다는 것은 정부도 인정하고 있다.

둘째, 재테크 용도로 ‘똘똘한 한 채’ 보유 심리가 서울과수도권을 넘어 전국적으로 확산됐다. 정부가 ‘사는 집이 아니면 4월까지 팔라’며 다주택자들에 대해 경고를 날리자 다주택자들이 강남 아파트만 놔두고 수도권과 지방의 아파트는 팔아치우면서 강남 수요를 더 부채질한 것이다. 조국 청와대 민정수석의 사례를 봐도 그렇다. 조 수석은 서초구 방배동 S아파트와 부산 해운대구 좌동 K아파트(배우자 명의)등 두 채를 소유하고 있다가 지난해 말 부산의 K아파트를팔았다. 조 수석이 소유한 방배동 전용면적 151㎡의 최근 시세는 13억여 원이다. ‘똘똘한 한 채’만 챙긴 것이다.

똘똘한 한 채 보유 심리는 지방의 부유층과 사업가, 지역유지 등 강남과 강남권에 아파트를 소유하고 있거나 소유하고 싶은 이들의 욕망을 자극했다. 부동산 중개업소에서 만난S씨의 사례가 그렇다. 전북 전주에서 교장으로 정년퇴임한그는 두 자녀를 뒀다. 큰아들 내외가 의사 부부다. 아들이 현재 거주하는 아파트는 서초동인데, S씨가 아들이 전주에 개업하면 물려주려고 준비해둔 전주의 집을 팔고 여기에 현금을 보태 마련해줬다. 아들 내외는 세 들어 있던 강남의 병원임대료가 오르자 최근 송파구에 조성된 위례신도시 상업지구로 옮겼다고 했다. S씨는 “아들에게 서초동 아파트는 팔지 말라고 했다”며 “요즘 주변의 돈 있는 사람들이 자식들에게 강남에 집 한 채는 마련해줘야 한다는 소리를 많이 한다”고 말했다.

최근 청와대 국민청원 게시판에 올라온 ‘김현미 장관님사퇴하세요’란 청원 글에는 “정부는 다주택자만 적폐고 채찍질하면 ‘똘똘한 한 채’로 초양극화되는 현상이 예측되지않았나 보다”고 지적하는 내용이 있다. 정부의 규제가 강화될수록 강남 집중과 서울과 지방의 집값 양극화가 심해지고있다는 주장이다.

셋째, 강남 집값은 사교육의 온실인 학원, 학군과 연동된다. 부동산 전문가들에 따르면 한국에서 대학입시, 교육문제는 강남 집값과 불가분의 관계를 갖는데, 최근 자사고(자립형 사립학교) 폐지 등 정부 교육정책 변화에 따라 강남학군선호 심리가 더 강화됐다는 것이다. 서울 소재 상위권 대학들은 그동안 자사고나 외고·과학고 출신 수험생들을 수시전형으로 선발해왔다. 수시전형이 마무리된 뒤에는 수능시험 고득점자들이 주로 합격했다. 하지만 문재인 정부가 자사고 폐지 방침을 밝히면서 상황이 달라졌다. H고 등 명문 사립고가 가까이 있는 대치동이 학부모들에게 다시 부각되기시작했다.

"정부가 그간 분당, 판교, 위례 등 강남대체지를 부지런히 공급했는데도 강남집값은 계속 올랐다는 점에서 공급만이전가의 보도는 아니다. 정치권에서는결국 정부가 집값 잡기에 골몰하다 보면종합부동산세 카드를 쓸 수밖에 없을것으로 본다."

자사고 폐지 방침에 대치동 다시 ‘들썩’ 

대치동의 효과는 실제 학부모들의 사례로도 확인된다. 국내 기업체 간부인 Y씨(54)의 경우가 그렇다. 그는 자녀교육을 위해 5년간 강남으로 이사해 살았다. 애초 신도시 아파트에 살았던 그는 아들의 H고 진학을 계기로 강남으로 이주했다. 신도시 아파트를 팔고 대치동에 전세로 들어갔다. Y씨의아내가 부업을 그만두고 학교와 학원을 오가는 아들을 뒷바라지했다. 아들은 재수한 끝에 명문 K대 경영학과에 합격했다. 이후 Y씨 부부는 강남의 전세 비용을 빼내 마포 합정동인근에 아파트를 구했다. 서울의 중산층 부모들이 ‘교육 유목민’이 되는 익숙한 사례다. 자녀교육을 위해 초등학교는 거주하는 아파트 인근에서 다니더라도 중학교 과정은 대치동과 목동의 학원가로 보내 사교육을 시키는 게 보통이다.서울에 또 다른 강남 8학군을 만들지 않는 이상 대치동 주변의 집값이 내려가지 않는 이유다.

넷째, 기존 거주자들도 강남을 떠나려 하지 않고 있다. 잠원동에 사는K씨(61)는 수도권 한 대학교의 겸임교수다. 그가 살고 있는 아파트는재건축을 앞두고 있다. 거래가는 20억원이 넘는다. 아파트에서 서초IC와 고속터미널이 지척이다. 강남성모병원이 가깝고, 신세계백화점과 JW메리어트호텔 등 생활편의시설이 잘 돼 있다. 딸만 둘을 두고 있는 그는 자녀들을출가시킨 뒤에도 강남에서 살 생각이다. 조합원으로 추가 분담금을 부담할 만한 여윳돈도 있다. 그의 지인들 중에는 노후생활을 위해 용인 동백지구 등으로 이주했다가 다시 강남으로 유턴하기도 했다. 서울에 병원·학교가 몰려 있어서 자녀들을 만나기에도 서울이 편하다는 것이다. 부동산 전문가G씨는 “강남에 거주하는 사람들이 화성·동탄 등 수도권 지역으로 이동하는 경우 취득세나 양도세를 감면해서 이주시키는 것도 강남 집값을 떨어뜨리는 하나의 방법이 될 수 있다”고 말했다. 하지만 이 방법도 주민들의 이 같은 강남 선호심리를 고려할 때 그 효과는 제한적일 수밖에 없다.

강남은 이제 서울의 강남이 아니다. 국내를 넘어서 국내를 넘어서 이미세계적인 브랜드가 됐다. ‘똘똘한 한 채’ 심리가 되레 강남 집중을 가속화하면서 서울 중산층과 지방의 부자는 물론 기존강남 주민들까지 똘똘 뭉쳐 강남을 철옹성으로 만들어가고있다. 물론 여기에는 정부 관료들에 대한 불신도 한몫한다.다섯째, 서울시의 주택정책이 강남 선호심리를 더 강화시켰다는 지적이 나온다. 우상호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최근 강남 집값 상승 원인을 두고 박원순 서울시장의 책임론을 거론했다. 그는 “지난해 집중적으로 강남 4구 재건축아파트들에대한 (재건축) 허가가 났다. 서울시장은 재건축을 허가해주더라도 순차적으로 나눠서 천천히 간격을 두고 허가해줘야했다”고 지적했다. 이른바 ‘강남 집값 박원순 책임론’이다.

부동산 전문가들에 따르면 서울시가 지난해 발표한 ‘영동대로 지하공간 복합개발사업’도 강남 선호심리와 집값에영향을 줬다고 했다. 지난해 6월 서울시가 발표한 기본계획에 따르면 서울시는 2023년 2호선 삼성역에서 9호선 봉은사역 사이 영동대로 하부에 복합환승센터와 대규모 지하시설을 조성한다고 밝혔다. 삼성역에 들어설 수도권 광역급행철도(GTX)를 계기로 지하 6층의 다목적 공간을 조성한다. 지상에는 105층 규모의 초대형 현대차 글로벌비즈니스센터(GBC)와 옛 한전 부지부터 코엑스에 이르는 대형 광장이 조성된다. 2019년 5월경 기공식을 할 예정으로 1조원이넘게 들어가는 대규모 프로젝트다. 강남 주민들은 영동대로지하 개발에 대해 대부분 환영일색이다. 강남구 대로변에는“<경축> 영동대로 ‘천지개벽’ 수준 개발계획 확정. 지하, 잠실야구장 30배 ‘지하도시’. 지상, 서울광장 2.5배 크기의 대형광장”이라는 플래카드가 걸려 있다.

역삼동에 살고 있는 50대 주부 P씨는 “지하도시가 개발되면 강남이 더 잘살게 될 거라는 사람이 많다. 집값이 더 오를것이라고 한다”고 말했다. 실제 외국계 로펌의 한 국내 대행사는 현대차 글로벌비즈니스센터와 마주 보게 될 인근 오피스텔로 사무실을 옮겼다. 강남의 확장 가능성을 보고 발빠르게 선점한 것이다. 국제적인 비즈니스 도시로 성장한 서울에서 강남은 글로벌 기업인들이 선호하는 오피스빌딩이자고급 주거지다.

그렇다면 ‘강남 집값’을 잡기 위한 방법은 없는 것일까?전문가들은 강남 집값은 일시적인 정책으로는 잡지 못한다고 본다. 정부가 개입할수록 시장이왜곡돼 시세만 폭등하는 결과만 초래한다는 것이다. 실제 지난 연말을거치면서 강남 재건축아파트를 중심으로 가격이 급등, 서울의 고가주택과 저가주택 간 아파트값 양극화가 더 심화된 것이 사실이다. 이 때문에 정부가 강남 재건축을 규제하지 말고 당분간시장의 원리에 맡겨두는 것도 방법이라고 말한다. 강남 집값폭등을 주도하는 것은 거주 환경이 좋은 새 아파트이거나몇 년 뒤 신축이 예정된 재건축 대상 아파트들이다. 도곡동등 과거에 요란했던 노른자위 아파트들은 몇 년의 조정기를거치면서 비교적 안정된 가격을 유지하고 있다.

강남 대체할 고급 주거지 공급해야 

공급을 늘려야 한다는 논리도 여전하다. 강남 집값을 억누르는 대신 강남 주변 농지나 농지의 효율성을 다하지 못하고 있는 지역, 서울의 강북 지역에 ‘제2의 강남’이나 강남 대체지를 만들어 공급해야 한다는 주장이다. 국토 균형발전을말하기 전에 우선 강남·북 균형발전을 위한 대책부터 내놓아야 한다는 주장도 같은 맥락이다. 하지만 정부가 그간 분당, 판교, 위례 등 강남 대체지를 부지런히 공급했는데도 강남 집값은 계속 올랐다는 점에서 공급만이 전가의 보도는아니다. 정치권에서는 결국 정부가 집값 잡기에 골몰하다 보면 종합부동산세 카드를 쓸 수밖에 없을 것으로 본다. 더불어민주당은 1가구 1주택인 경우에는 12억원, 다주택자는 9억원이 넘는 경우 1%의 종합부동산세 부과로 가닥을 잡은상태다. 하지만 정부여당이 선거를 앞두고 민심 악화가 우려되는 종합부동산세를 단행할지는 알 수 없다. 이와 관련해다주택자를 적폐나 사회악으로 보는 정부 일부 인사들의 이분법적 발상의 변화를 촉구하는 이들도 있다. 여의도 정치권에서 잔뼈가 굵은 50대 인사는 “권력은 이미 시장으로 넘어갔다. 문재인 정부가 혁명정부가 아닌 이상 (부동산) 시장을이길 순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정부가 원하는 정책적인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서는 결국정공법으로 가야 한다. 전문가들과 머리를 맞대고 실제 현실에 맞는 부동산 정책, 실수요자들을 겨냥한 정교한 정책을만들어 공급 부족 문제를 해결해 나가고 다양한 수요 분산대책을 강구해야 한다는 것이다. 강남 집값은 당분간 크게오르기는 어려울 것이라는 전망이다.

KB국민은행의 부동산 전문가 P씨는 “이제부터는 돈 싸움, 지키기 싸움이 벌어질 것이다. 경매에서 빼앗기지 않으려는 심리와 비슷하다”고 말했다. 강남불패를 지키려는 세력과 강남 집값을 잡으려는 정부 간의 기 싸움이 시작됐다는것이다. 과연 문재인 정부는 강남불패 신화를 깨뜨릴 수 있을까?

나권일 월간중앙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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