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등주의 해로운 것 아니다 성취욕 살리고 질투심 없애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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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1면

[사진=김상선]

송호근(50.사진) 서울대 사회학과 교수가 오해받기 딱 좋은 제목의 책을 펴냈다. '한국의 평등주의, 그 마음의 습관'(삼성경제연구소). 보수 색채의 신문 칼럼을 많이 쓴다고 진보 진영으로부터 곱지않은 시선을 받고 있는 그다. 송 교수의 전공은 진보 성향의 노동사회학. 1990년대 후반까지 그 자신도 사회민주주의에 희망을 걸고 있었다고 말한다. 그를 만나 평등주의의 문제가 무엇인지 견해를 들어봤다.

"평등주의는 해로운 것이 아니다." 책 제목이 주는 오해를 의식했음인지 송 교수는 이 말을 되풀이했다. 그가 지향하는 것은 국민소득 2만 달러 시대를 앞둔 우리 사회도 이제 품격과 교양을 갖춘 제대로 된 민주주의를 해보자는 것이다.

송 교수는 평등주의의 양면성을 지적했다. 우선 평등주의란 개개인이 무엇인가 이루고자 하는 '성취 열망'이라고 긍정적으로 정의했다. 나보다 잘난 사람과 같아지려는 소망은 평등주의의 좋은 측면이다. 한국인 특유의 활기는 이런 평등주의에서 비롯됐다. 그것은 우리 사회 발전의 원동력이다. "세계에서 유례가 없는 한국의 고속성장은 단기간에 선진국과의 거리를 좁힐 수 있다는 성취 열망 없이는 불가능했을 거예요."

평등주의의 부정적 측면은 무엇일까. "평등주의적 심성은 어느 국가나 존재하지요. 하지만 한국과 같이 강한 불만과 분노로 표출되는 국가는 거의 없어요. 고학력, 전문직, 부자 등에 대한 선망은 높은데 그들에 대한 신뢰는 낮지요. 인정하지 않는 겁니다. 그들과 같은 기회가 주어졌다면 나도 성공했으리라는 평등주의의 가정이 깔려 있어요. 기회의 평등과 결과의 평등이 심하게 혼동되고 있어요."

이렇게 불신이 팽배한 이유를 송 교수가 모를 리 없다. "역사적으로 오랫동안 누적돼 온 평등주의적 심성을 누그러뜨리지 못했어요. 고도성장 기간 중 불법.연고.투기.부정부패 등으로 인한 부의 편중 현상이 심화하면서 평등주의적 심성은 적개심으로까지 분출되는 것이죠."

그런 불신의 사회적.경제적 비용을 앞으로 더 치러야 할 것인가. 송 교수는 보수와 진보의 대립 등으로 표출된 반목의 비용을 치를 만큼 치렀다고 보는 입장이다. 이제 '질투의 시대'를 넘어 '인정의 시대'로 진입하기 위해 대안을 마련할 때라고 했다. 그의 대안은 평등주의의 긍정적 측면을 강화하는 것. 활력은 살리되 분열 요인은 제거하자는 논리다.

그는 '획일적 평등'이 아니라 '다원적 평등'을 제도화시켜가야 한다고 주장한다. '다원적 평등'이란 한 영역에서 성공했다고 해서 그 힘을 다른 영역으로까지 확대하지 못하게 하는 것이다. 기회의 평등을 많은 이가 공유할 수 있는 여건을 만들어 내자는 것이다. 이 대목에서 사회 계층 간 합의가 필요하다고 했다. 선진국 진입 문턱에서 우리에게 절실한 것은 '협약 정치'라고 말한다. 그러기 위해선 사회 계층 간 양보의 기억을 조금씩이라도 쌓아가는 것이 긴요하다고 했다.

송 교수는 성공한 중산층들의 도덕성 강화를 강조했다. '교양 있는 중산층'이야말로 자유주의와 시민사회의 지지기반이기 때문이다. "자유는 교양의 다른 이름입니다. 유럽 근대사에서 교양이란 품위, 절제, 윤리, 도덕, 양심 등의 덕목을 가리키지요." 그 같은 교양이 평등주의의 부정적 측면을 견제할 때 민주주의는 건강하게 발전한다는 것이 송 교수의 주장이자 바람이다. 그가 보는 바람직한 민주주의는 자유와 평등의 양 날개가 모두 건강하게 작동하는 시스템이다.

글=배영대 기자 <balance@joongang.co.kr>
사진=김상선 기자 <sskim@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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