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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늘처럼 매운 의성 컬링 … 세계 1·2위 이어 중국도 쓸었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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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5면

경북 의성 출신이 주축을 이룬 한국대표팀 김초희·김은정·김경애·김선영 선수(왼쪽부터)가 18일 평창 겨울올림픽 여자컬링 예선 중국과의 경기에서 승리한 뒤 관중에게 인사하고 있다. [연합뉴스]

경북 의성 출신이 주축을 이룬 한국대표팀 김초희·김은정·김경애·김선영 선수(왼쪽부터)가 18일 평창 겨울올림픽 여자컬링 예선 중국과의 경기에서 승리한 뒤 관중에게 인사하고 있다. [연합뉴스]

‘의성 마늘처럼 작지만 매운 맛으로 도장깨기를 하고 있다.’

4승1패 4강 눈앞 … 여자대표팀 ‘팀 킴’

한 네티즌이 한국 여자컬링 대표팀을 향해 보낸 찬사다. 한국 여자컬링 대표팀은 팀원 다섯 명 중 네 명이 경북 의성군 출신이다. 의성은 인구가 5만3500명에 불과한 작은 시골. 마늘이 유일한 특산품이다. 한국 여자컬링은 이제 그 의성 마늘보다 더 유명해질 기세다.

17일 오후 강원 강릉컬링센터에서 열린 2018 평창동계올림픽 여자 컬링 예선 대한민국과 영국의 경기. 한국팀 선수들이 영국팀을 7대4로 꺾고 환호하고 있다.[강릉=연합뉴스]

17일 오후 강원 강릉컬링센터에서 열린 2018 평창동계올림픽 여자 컬링 예선 대한민국과 영국의 경기. 한국팀 선수들이 영국팀을 7대4로 꺾고 환호하고 있다.[강릉=연합뉴스]

5명 모두 ‘김씨’… 그 중 4명 의성 출신

한국(세계 8위)이 평창올림픽에서 세계 1위 캐나다, 세계 2위 스위스를 물리친 데 이어 세계 4위이자 컬링 종주국 영국마저 쓸어버렸기 때문이다. 한국은 17일 강릉컬링센터에서 열린 예선 5차전에선 중국(10위)마저 12-5로 대파했다. 4승1패를 기록하면서 평창올림픽에 출전한 10팀 중 공동 2위를 달리고 있다. 여자부는 10팀이 한 차례씩 맞붙어 4강 진출팀을 가리는데 한국은 초반 승승장구하면서 4강 진출에 청신호를 켰다.

말 그대로 개천에서 용 났다. 팀원 중 유일하게 의성 출신이 아닌 김초희(22)는 “언니들하고 시장에 가면 다 아는 사람이다. ‘안녕하세요. 팀 막내입니다’란 인사를 쉬지 않고 해야 한다. 택시를 타면 기사님이 ‘니 철파리에 살제’라면서 알아서 동네에 내려 준다”고 말했다. 그만큼 의성은 작은 마을이란 뜻이다. 한국은 주장 역할을 하는 스킵 김은정(26)과 리드 김영미(27), 세컨드 김선영(25), 서드 김경애(24), 후보 김초희로 구성됐다. 경북체육회 소속인 이들은 10년 넘게 같은 아파트에서 이층침대를 나눠 쓰며 동고동락하고 있다.

18일 오후 강원 강릉컬링센터에서 열린 2018 평창동계올림픽 여자 컬링 예선 대한민국과 중국의 경기. 한국 대표팀 김경애가 투구 후 소리치고 있다. [강릉=연합뉴스]

18일 오후 강원 강릉컬링센터에서 열린 2018 평창동계올림픽 여자 컬링 예선 대한민국과 중국의 경기. 한국 대표팀 김경애가 투구 후 소리치고 있다. [강릉=연합뉴스]

칠판에 ‘컬링할 사람’ … 전설 시작되다

경북 의성여중·고 출신인 대표팀 선수들은 처음엔 놀 게 없어 컬링을 시작했다고 한다. 김영미는 “2006년 의성에 국내 최초의 컬링경기장이 생겼다. 의성여고 1학년이던 2007년 친구 (김)은정이와 방과후 특기활동으로 컬링을 시작했다. 6개월 뒤 친동생 (김)경애가 물건을 갖다 주러 컬링장에 왔다가 얼떨결에 따라 하게 됐다. 의성여중 2학년이던 경애가 학교 칠판에 ‘컬링할 사람’이라고 적었는데 경애 친구 (김)선영이가 자원했다”고 말했다.

ESPN은 한국여자컬링 선수 5명과 감독의 성이 모두 김씨란 사실이 흥미롭다고 보도했다. 한국선수들 유니폼 뒤에 E.KIM, Y.KIM, S.KIM, K.KIM, C.KIM이라고 새겨진 사진도 함께 첨부했다. [ESPN 캡처]

ESPN은 한국여자컬링 선수 5명과 감독의 성이 모두 김씨란 사실이 흥미롭다고 보도했다. 한국선수들 유니폼 뒤에 E.KIM, Y.KIM, S.KIM, K.KIM, C.KIM이라고 새겨진 사진도 함께 첨부했다. [ESPN 캡처]

한국 여자컬링 대표팀은 성씨(姓氏)로도 화제가 됐다. 미국의 스포츠 전문매체 ESPN은 17일 “한국 여자컬링 선수들은 모두 똑같은 김(金)씨다”라고 소개하면서 한국 선수들 유니폼 뒤에 E.KIM, Y.KIM, S.KIM, K.KIM, C.KIM이라고 새겨진 사진을 첨부했다. ESPN은 “평창올림픽 한국 선수단 121명 중 34명이 김씨다. 김씨는 한국 인구의 약 5분의 1을 차지한다. 17세기까지만 해도 한국에서 성은 귀족의 특권이었는데, 이후 성을 갖게 됐을 때 명망 있는 성인 김·이·박씨를 선택했다”고 전했다.

“우리가 메달 따면 청소기 광고 찍니?” 

컬링은 보통 스킵의 성을 따서 팀명을 붙인다. 그래서 한국팀의 이름은 ‘팀 킴(Team Kim)’이다. 모두 한 가족이 아니냐는 오해를 받지만 김영미와 김경애 두 사람만 친자매다. 김경애는 “팀원 전원이 김씨라고 하면 외국인들이 어리둥절한 표정을 짓는다. 그래서 2013년 아침식사를 하다가 각자 음식 이름을 따 즉석에서 애칭을 만들었다”고 말했다. 그 결과 김경애의 애칭은 ‘스테이크’, 김영미는 ‘팬케이크’, 김선영은 계란요리 서니 사이드 업에서 따온 ‘써니’다. 또 김은정은 요구르트 이름에서 따온 ‘애니’, 막내 김초희는 과자 이름인 ‘쵸쵸’다.

의성의 ‘마늘 처녀’들이 세계 컬링계를 휩쓸자 인터넷 포털사이트에는 재미있는 댓글이 넘쳐난다. 마늘을 주재료로 하는 콘셉트의 레스토랑 ‘매드 포 갈릭’에 빗댄 ‘매드 포 컬링’, 스페인 프로축구 레알 마드리드의 별명인 갈락티코(은하수)에 빗댄 ‘갈릭티코’ 등이다.

한국여자컬링대표팀은 2006년 경북 의성에서 취미로 컬링을 시작했다. 가운데 김민정 감독을 중심으로 윗줄 왼쪽부터 시계방향으로 김영미·선영·은정·경애·초희. 영미와 경애는 자매고 영미-은정, 경애-선영은 의성여고 동기동창이다. [중앙포토]

한국여자컬링대표팀은 2006년 경북 의성에서 취미로 컬링을 시작했다. 가운데 김민정 감독을 중심으로 윗줄 왼쪽부터 시계방향으로 김영미·선영·은정·경애·초희. 영미와 경애는 자매고 영미-은정, 경애-선영은 의성여고 동기동창이다. [중앙포토]

선수들은 평창올림픽이 열리는 현재 국내에서 컬링이 어느 정도 관심을 받고 있는지 전혀 모른다. 행여 악플에 상처받을까 봐 휴대전화를 자진 반납한 뒤 인터넷과 담을 쌓고 있기 때문이다. 중국과의 경기를 마친 뒤 기자가 “인터넷을 통해 컬링팀이 유명해진 걸 아예 모르는가”라고 물었더니 김선영은 “전혀 몰랐다”고 대답했다. 그는 “선수촌 방에는 올림픽 주요 경기만 나온다. 컬링이 유명해진 줄은 몰랐다”고 했다.

이들은 평창올림픽 기간 경기를 마친 뒤 공식 인터뷰에서 긴장한 표정으로 말을 이어갔다. 하지만 이들의 원래 성격은 쾌활한 편이다. 평소엔 경상도 사투리를 쓰면서 왁자지껄한 분위기다. 김영미가 “빙판을 닦는 우리가 만약 메달을 딴다면 청소기 광고를 찍을 수 있을까”라고 하면 김은정이 “요즘엔 로봇청소기가 나와 틀렸어”라고 농담을 던지는 식이다.

일 오후 강릉컬링센터에서 열린 평창동계올림픽 여자컬링 대한민국과 스위스의 예선에서 한국 선수들이 스위핑을 하고 있다.[강릉=연합뉴스]

일 오후 강릉컬링센터에서 열린 평창동계올림픽 여자컬링 대한민국과 스위스의 예선에서 한국 선수들이 스위핑을 하고 있다.[강릉=연합뉴스]

‘갈릭티코’‘매드 포 컬링’ 애칭 등장

평창올림픽 개막 전 기자는 “의성에선 특산물인 마늘만큼 컬링 대표선수들이 유명 인사 아니냐”고 물었다. 그러자 김은정은 “저희가 평창에서 마늘보다 유명해질 수 있을까요”라며 웃었다. 그러나 요즘처럼 상승세를 타면서 진짜로 메달을 딴다면 마늘보다 유명해질 수도 있다.

강릉=박린 기자 rpark7@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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