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VERTISEMENT
오피니언 취재일기

불효자방지법 진지하게 논의할 때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25면

신성식 기자 중앙일보 복지전문기자
신성식 복지전문기자

신성식 복지전문기자

어떡하든 끝까지 갖고 있어야 해. 자식에게 주지 말고…. 얼마 전 공원을 산책하던 어르신들 사이에서 이런 말이 흘러나왔다. 농담 같지는 않았다. 노후 준비 전문가들의 권고도 다를 바 없다.

2015년 더불어민주당 민병두 의원이 주최한 토론회에서 김모(87)씨가 자녀들을 성토했다. 김씨는 “둘째 딸이 ‘평생 모실 테니 집을 사서 같이 살자’고 해서 6000만원을 줬다. 그 후 연락을 끊었다. 아들은 ‘왜 나한테는 안 주냐’고 폭행했다”며 “이게 사기가 아니고 뭐냐”고 호소했다. 이후 딸을 상대로 소송을 냈지만 증여한 것으로 인정돼 패소했다. 1년 반 전 다시 통화했을 때 건강이 많이 악화돼 있었다. 기초연금과 주차관리 수입으로 근근이 생계를 잇고 있다고 했다. 이번에 전화를 걸었으나 연결되지 않았다.

더불어민주당 박완주 의원이 12일 김씨 같은 사례를 막으려고 민법개정안을 냈다. 부모한테서 재산을 증여 받고서 부양하지 않거나 패륜 범죄를 저지를 경우 증여한 재산을 되돌리는 내용을 담고 있다. 소위 ‘불효자 먹튀 방지법’이다.

[일러스트=김회룡 기자]

[일러스트=김회룡 기자]

불효자식 방지법은 민병두 의원이 원조다. 2015년 발의할 때 김씨의 호소가 더해지면서 큰 반향을 불러왔다. 20대 국회에서 민 의원을 비롯해 더민주당 서영교 의원, 자유한국당 이철규 의원도 비슷한 법안을 발의했다.

65세 이상 노인 중 부동산이 있는 사람이 59%다. 이들의 평균 재산가액은 약 1억2000만원이다. 노인에게 적지 않은 액수다. 자식한테 주지 말고 주택·농지 연금으로 돌리면 될 텐데, 눈앞의 자식의 곤궁을 보면 집문서를 내놓는 게 부모 마음이다.

우리 사회의 부모 봉양 의식은 점점 엷어진다. 평균수명은 점점 올라가고 노인은 증가한다. 연 200~300명의 부모가 자녀에게 부양비를 달라고 소송을 낸다. 지금보다 봉양 갈등이 더 증가할 것이다. 재산을 넘기고서 김씨 같은 일을 당하지 않으려면 ‘효도계약서’ 같은 대항력이 있는 문서를 쓰는 게 방법이다. 국회에 계류된 민법개정안이 통과하면 이럴 필요가 없다.

봉양 갈등을 효나 윤리로 해결할 일이지 법률이 웬 말이냐고 말할지도 모른다. 원론적으로야 맞는 말지만, 그것만으로 안 되는 세태다. 국회가 불효자식 방지법을 여러 개 쌓아두지 말고 진지하게 논의해야 한다. 부모를 모시는 자녀에게 재산이 더 가게 하는 방안도 논의했으면 좋겠다. 최소한의 법 규정이 효 확산에 도움이 될 수 있다. 재판부의 판결 기준도 이런 점을 고려할 필요가 있다.

신성식 복지전문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