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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순실, 판결문 2시간 넘자 하얗게 질려…"고통스럽다" 휴정 요구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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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2면

최순실, 재판장 좋아했다는데 … 법조계 “최씨 배신당한 날”

“재판장님, 피고인 최서원(최순실)씨가 신체적으로 고통스러워 합니다. 시간을 좀 주시는 게 어떤가요.”

김세윤 판사, 최씨 요구 잘 들어줘 #“우리 부장님”이라 부를 정도 #작년 12월 재판선 “무한한 감사” #판결문 2시간 넘자 하얗게 질려 #“고통스럽다, 시간 좀” 휴식 요구

13일 오후 4시 10분 서울중앙지법 417호 법정. 갑자기 최씨 측 이경재 변호사가 입을 열었다. 형사합의22부 재판장인 김세윤 부장판사가 최씨와 안종범 전 정책조정수석, 신동빈 롯데그룹 회장에 대한 판결문을 읽은지 2시간쯤 지나 최종 형량을 선고하기 직전이었다. 선고를 듣는 동안 바닥을 보거나, 입술을 내밀거나, 넋이 나간 듯 앞을 쳐다보곤 하던 최씨의 얼굴이 어느새 하얗게 질려 있었다. 김 부장판사는 변호사의 요청에 잠시 말을 멈추더니 “그러면 다른 피고인들 양형 이유를 먼저 설명할테니 잠깐 쉬었다가 오라”고 하고는 준비해온 종이를 꺼내 읽기 시작했다. 평소 구속 피고인이 드나드는 문을 통해 잠시 나갔던 최씨는 5분 뒤 피고인석에 돌아와 앉았다. 최씨는 두 달 전 검찰과 특검이 징역 25년형을 구형하던 결심공판 때 1시간마다 휴정을 요청하거나 대기실에서 소리를 지르기도 했다.

[그래픽=차준홍 기자 cha.junhong@joongang.co.kr]

[그래픽=차준홍 기자 cha.junhong@joongang.co.kr]

최씨는 이날 김 부장판사가 “최씨가 취득한 이익의 규모, 초래된 국정 혼란과 그로 인한 국민들의 실망감에 비춰보면 죄책이 대단히 무겁다”고 말하자 굳은 얼굴로 앞만 쳐다봤다. 이어 김 부장판사가 “피고인 최순실을 징역 20년과 벌금 180억원에 처한다”라며 주문을 읽자 방청석 곳곳에서 ‘헉’하는 소리가 터져나왔다. 최씨는 별다른 표정을 보이지 않았다. 한 방청객은 “충격이 너무 클 때 비명도 나오지 않는 그런 상황이었던 듯 싶다”고 전했다.

이런 결론이 나오자 서울중앙지법 일부 판사들 사이에서는 “오늘은 최순실이 배신당한 날”이라는 말들이 오갔다고 한다. K부장판사는 “김세윤 부장판사는 겉은 부드럽지만 선고 형량은 센 이른바 외유내강형”이라며 “평소 재판 과정에서 최씨의 요구사항을 잘 들어줘 최씨가 ‘우리 부장님’이라고 할 정도로 좋아했다고 한다”고 전했다. 이어 “그런 상황에서 중형이 선고돼 최씨가 받은 충격이 적지 않았을 것”이라며 “이 때문에 그같은 분석이 나온 것”이라고 설명했다. 실제로 최씨는 지난해 12월 결심 재판에서 “구속된 지 1년이 지났는데 오늘 여기까지 버틸 수 있게 해 준 것에 대해 재판장님께 무한한 감사를 드린다”며 고마움을 표시하기도 했다.

이날 김 부장판사는 징역형·벌금액·추징액이 얼마인지를 선고하는 주문을 두 번씩 읽었다. 징역형과 함께 최씨는 벌금 180억원과 추징금 72억 9447만원을, 신동빈 회장은 추징금 70억원을 각각 선고받았다. 숫자들이 크고 복잡했다. 이날 별도 통역 없이 2시간 20분동안 선고를 들었던 신 회장은 처음엔 이해를 못하다가 변호인과 대화를 하고 나더니 고개를 끄덕였다. 재판장은 신 회장을 법정구속하기 전 “마지막으로 하고 싶은 얘기 없습니까”라고 물었다. 신 회장은 굳은 얼굴로 작게 “없습니다”라고 말했다. 이날 방청객과 취재진 등이 몰려 150석 규모의 대법정이 가득 찼다. 법정 안팎으로 30명 넘는 보안관리대원이 투입됐다. 김 부장판사가 “판결 선고를 모두 마친다”고 하자마자 앞 줄의 한 중년 여성이 “김세윤 만세! 이게 무슨 재판이야! 대통령이 무슨…”이라고 소란을 피웠다가 법정 경위에게 끌려나갔다.

◆김세윤(51·사법연수원 25기) 부장판사=1999년 서울지법 동부지원에서 법관 생활을 시작해 대법원 재판연구관, 법원행정처 윤리감사관 등을 지냈다. 2016년 2월부터 서울중앙지법에서 부패전담재판부인 형사합의 22부의 재판장을 맡고 있다. 수원지법 안산지원 부장판사로 근무하던 2014년 경기지역 변호사들이 뽑은 ‘베스트 법관’ 6인에 선정됐다. 증인이나 피고인 등 사건관계인들에게 진행상황을 쉽게 설명해주고 말을 끝까지 들어주는 친절한 진행으로 유명하다.

문현경 기자 moon.hk@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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