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롯데 쇼크에 ‘기업 패싱’ 논란까지 … 움츠러드는 재계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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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01면

안 그래도 우울한 재계에 롯데 쇼크가 전해졌다.

신동빈 회장 법정 구속에 뒤숭숭 #고용·투자 확대 부정적 영향 우려 #평창올림픽에 후원금 1조 냈지만 #‘최순실 트라우마’로 마케팅 자제 #개막 전 리셉션에 기업인 초대 안돼 #“30년 만에 찾아온 기회 놓치는 셈”

서울중앙지법이 13일 신동빈 롯데그룹 회장에 대해 징역 2년6개월에 법정 구속을 선고하자 재계의 분위기는 더욱 뒤숭숭해졌다. 재계는 법원이 K스포츠재단에 70억원을 지원한 혐의가 있던 신 회장에 대해, 집행유예를 선고한 이재용 부회장 항소심과 비슷한 논리로 처리될 것으로 예상해 왔다.

익명을 요구한 재계의 한 관계자는 “이 부회장과 신 회장 사건은 최순실 일당의 겁박으로 기업이 자금을 지원한 사건이란 점에서 비슷했다”며 “두 사람의 판결이 엇갈리면서 기업을 둘러싼 정치적·사법적 불확실성이 커졌다”고 설명했다. 배상근 전국경제인연합회 전무도 “법원 판결을 존중하지만 롯데는 ‘사드 보복’ 등 어려운 상황에서도 최근 5년간 고용을 30% 늘린 일자리 모범 기업”이라며 “신 회장의 공백이 롯데 투자 확대와 일자리 창출에 부정적 영향을 미치지 않을까 우려된다”고 말했다.

또 다른 재계 관계자는 “기업을 죄는 각종 정책이 쏟아져 나오는 상황에서 심리적으로 더욱 위축되게 만드는 판결”이라고 털어놨다.

안 그래도 사상 처음 국내에서 치러지는 겨울올림픽 와중에서도 ‘기업 패싱(Passing)’ 논란이 나오던 판이었다.

지난 10일 강원도 강릉의 알리바바 홍보관엔 중국의 대표적인 정보기술(IT) 기업 알리바바의 마윈 회장이 이날 직접 홍보관 개소식에 참석했다. 알리바바는 국제올림픽위원회(IOC)에 1000억원 이상을 후원하는 공식 월드와이드 파트너다. 마이크를 잡은 마윈 회장은 “알리바바의 장기적인 올림픽 파트너십 체결은 기업 철학과 기술력을 잘 보여주는 사례”라고 강조했다. 거액을 낸 만큼 본전 이상의 홍보 효과를 위해 기업 총수가 직접 올림픽 홍보 일선에 나선 것이다.

하루 전날인 9일 삼성전자도 강릉·평창 등지에 홍보관을 열었다. 삼성전자 역시 IOC에 1000억원 이상을 후원하는 국내에서 유일한 월드와이드 파트너다. 그러나 별도의 개관식은 생략됐다. 삼성전자 관계자는 “이재용 부회장이 집행유예로 석방된 뒤 악화한 여론을 의식해 ‘삼성’을 강조하지 않기로 했다”고 말했다.

‘64조9000억원’. 지난 2011년 7월 현대경제연구원이 추산한 평창 겨울올림픽의 경제 효과다. 올림픽 개최에 따른 직접적인 투자와 소비 효과가 21조1000억원, 브랜드 가치 상승에 따른 간접 효과가 43조8000억원에 달할 것이란 분석이었다. 그러나 정작 국내 기업들은 1조원이 넘는 후원금을 내고도 존재감을 드러내지 못했다.

이번 올림픽 행사장에 기업 홍보관을 열 자격이 있는 공식 파트너사는 대기업만 삼성과 LG·현대차·SK·롯데·KT·포스코 등 10곳이 넘는다. 그러나 이 중 홍보관을 차린 대기업은 삼성전자·현대자동차·KT·대한항공 4곳에 그친다. 2012년 여수엑스포의 대기업 홍보관 8곳이 평창올림픽에선 절반으로 줄어든 것이다.

뉴욕타임스도 지난 7일(현지시간) “한국에선 최근 (최순실) 스캔들로 기업들이 올림픽 경기장을 기업 로고로 장식하는 일이 어색해졌다”고 보도하기도 했다.

지난 9일 올림픽 개막식 직전 문재인 대통령과 200여 명의 저명인사가 초청받은 리셉션에도 기업인들은 초대받지 못했다. 이날 행사에 참석한 재계 인사는 전 평창 겨울올림픽 조직위원장 자격으로 참석한 조양호 한진그룹 회장뿐이었다. 개막식도 신동빈 롯데그룹 회장, 허창수 GS그룹 회장, 권오준 포스코 회장, 황창규 KT 회장만 스탠드석에서 지켜봤을 뿐, 삼성과 LG·SK·한화 등 주요 그룹 총수들은 아예 참석하지도 않았다.

최준선 성균관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나라에 큰 행사가 열리면 과거엔 전경련 주도로 기업인들의 참석을 독려했지만, 이런 소통 채널이 끊어지다 보니 재계 인사들이 소외되는 결과로 이어졌다”고 설명했다.

전 세계 20억 인구의 이목이 쏠리는 올림픽 도중에 기업인 ‘사정 정국’이 본격화되면서 당초 기대한 ‘올림픽 특수’도 반감될 것으로 보인다. 30년 만에 한 번 올까 말까 한 기회를 그냥 날려 버릴 수 있다고 우려하는 이유다. 주원 현대경제연구원 경제연구실장은 “한 기업의 브랜드 인지도가 1%포인트 오르면 1억 달러(약 1100억원)의 간접적 경제 효과가 발생한다”며 “기업들이 움츠러들어 올림픽 마케팅 기회를 놓치면 이런 효과를 포기하게 되는 셈”이라고 강조했다.

김도년·윤정민 기자 kim.donyu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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