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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이프 트렌드] "이젠 살충제 계란 없고 무정란도 영양가 듬뿍"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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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6면

남기훈 계란자조금관리위원장
‘살충제 계란’이 아직도 유통된다? 유정란이 무정란보다 영양이 더 풍부하다? 계란에 대한 소문이 무성하다. 이렇게 계란에 대한 관심이 큰 이유는 어쩌면 계란이 우리 식탁에서 빠져선 안 될 만큼 영향력 있는 국민 식품이기 때문은 아닐까. 지난해 8월 살충제 계란 파동 이후 계란에 대한 소비자의 신뢰는 완전히 회복되지 않은 상태다. 8일 계란자조금관리위원회 남기훈(사진) 위원장에게 계란에 대한 자초지종을 들었다.

산란 일자 표기 의무화보다 #콜드체인 시스템 갖추는 게 #계란 신선도 유지에 효과적

‘살충제 계란’은 이제 하나도 없나.
“없다. 자세한 설명에 앞서 계란자조금관리위원회는 전국의 계란 생산 농가를 대변하는 단체로서 지난해 살충제 계란 파동으로 계란 안전에 대해 소비자에게 깊은 불신을 안겨드린 것에 대해 죄송하게 생각한다. 향후 농가의 살충제·농약 살포에 대해 엄격히 지도·관리할 것을 약속한다. 현재 시중에 유통되는 계란은 잔류 물질 검사를 모두 통과해 안심하고 먹어도 된다. 당시 문제가 된 계란의 경우 잔류 성분이 기준치를 초과한 것으로 파악됐다. 잔류 성분 기준치는 필요 없는 화학물질이 인체에 과하게 들어오지 못하도록 하는 수치로서 굉장히 낮게 설정한다. 사실 이 기준치는 ‘소비자’를 위해 만든 게 아니다. 농약에 자주 노출되는 ‘농민’을 위해 만든 것이다. 이 잔류 물질은 체내에 들어와도 일정 기간이 지나면 몸 밖으로 배출된다. 계란의 잔류 농약 허용치는 다른 농산물보다 현저히 낮다. 살충제 계란 파동 때 문제가 된 비펜트린 성분의 경우 계란의 잔류 물질 기준치는 1㎏당 0.01㎎ 정도다. 반면 들깻잎은 10㎎으로 계란보다 1000배나 높다. 또 네덜란드는 계란의 잔류 물질 기준치가 우리의 10배인 0.1㎎이다. 잣대가 엄격하면 장점도 있지만 단점도 만만치 않다. 정부가 과학적 근거를 기반으로 계란의 잔류 성분 허용치를 재조정할 필요가 있다고 본다.”
내년부터 산란 일자가 표기된다는데.
“그렇다. 지난해 12월 정부는 ‘식품안전개선 종합대책’을 발표하며 2019년부터 국내에서 생산·유통되는 모든 계란의 껍데기에 ‘산란 일자(닭이 계란을 낳은 날짜)’를 의무적으로 표기해야 한다고 발표했다. 계란에 산란 일자를 표기하는 건 세계에서 우리나라가 처음이다. 조류인플루엔자(AI)와 살충제 계란 파동에 따른 소비자의 불신을 줄이겠다는 취지다. 하지만 계란 생산 농가와 관련 단체는 산란 일자 표기 의무화는 ‘불합리한 제도’라고 생각한다. 산란 일자를 표기하게 되면 소비자는 마트에서 최근에 생산된 계란부터 집어들 것이다. 상대적으로 앞서 생산된 계란은 팔리지 않아 시중에 유통되는 계란의 20%가량이 폐기될 것으로 예상된다. 전국에서 하루에 계란 4000만 개가 생산되니 무려 800만 개가 버려지는 셈이다. 문제는 이 버려지는 계란도 ‘신선하다는 것’이다. 이로 인해 불필요한 비용이 발생하면 또다시 계란 한 판(30구 기준) 값이 1만원을 웃돌 수 있다. 산란 일자 표기가 소비자에게 결코 이득될 게 없다는 얘기다. 계란의 신선도를 좌우하는 건 산란 일자가 아니라 콜드체인 시스템(저온 유통 방식)이다. 하지만 우리나라는 콜드체인 시스템이 갖춰져 있지 않아 계란을 상온에서 유통한다. 콜드체인 시스템 구축 없이 산란 일자만 표기하면 시장 불안만 가중될 것이다.” 
계란이 상온에서 유통된다는 건가.
“계란은 무정란(암탉의 난자)과 유정란(수정란)으로 구분되는데 모두 공기가 통하는 구멍(기공)이 있다. 다시 말해 살아 숨 쉬는 생명체다. 계란의 신선도를 유지하려면 콜드체인 시스템이 필수다. 농가에서 오늘 생산된 계란이 소비자의 집에 오는 데는 평균 일주일이 소요된다. 이때 대부분 ‘상온’에서 보관되다가 마트 냉장 쇼케이스에 진열될 때만 15도 정도에서 보관한다. 이렇게 유통된 계란을 가정에서 냉장고(2~4도)에 보관할 경우 신선하게 먹을 수 있는 기간은 평균 한 달(30일)이다. 특히 여름철 30도 이상 고온에서 유통될 경우 계란은 일주일도 채 못 가서 변질될 수 있다. 하지만 콜드체인 시스템으로 계란을 15도 이하로 유지하면 평균 기간의 두 배인 60일 동안 먹을 수 있다. 수출용 계란의 유통기한은 3~6개월 정도로 더 길다. 이는 2~4도에서 장기 보관하기 때문이다. 정부는 산란 일자 표기를 의무화하기보다 차라리 계란의 신선도를 높이는 콜드체인 시스템부터 구축해야 한다. ‘GP(계란 유통센터)’ 구축 의무화도 절실하다. GP란 농가에서 나온 계란을 한데 모으는 집하장의 개념이다. GP에선 위생 처리는 물론 농가의 계란이 시중에 유통되기 전까지 최적의 환경에서 계란을 보관하게 된다. 미국·일본 등 선진국은 계란이 생산된 순간부터 마트에서 판매되기까지 계란 보관 온도를 15도 이하로 유지한다. 우리 정부의 노력이 절실한 이유다.”
유정란을 선호하는 소비자도 많은데.
“계란에 대한 소비자의 대표적인 오해가 바로 ‘유정란이 무정란보다 영양가가 높을 것’이란 것이다. 유정란을 생산하려면 암탉과 수탉을 한 축사에서 사육해야 한다. 이 경우 암탉은 자외선과 비바람에 그대로 노출되는데다 수탉과의 접촉 탓에 스트레스를 많이 받게 된다. 반면 무정란은 보통 암탉 6마리가 한 축사에 모여 살며 24.5시간마다 한 번씩 산란한다. 이때 배출된 알이 무정란이다. 무정란을 배출하는 암탉은 온도·습도가 일정하고 수탉이 없는 곳에서 머물러 스트레스를 거의 받지 않는다. 시중에 유통되는 계란의 상당수는 무정란이다. 정자 없이 생산된 계란이라고 해서 유정란보다 영양가가 떨어지는 건 아니다. 오히려 무정란이 유정란보다 더 위생적일 수 있다. 일본·미국 같은 선진국의 경우 무정란이 더 많이 생산된다. 무정란에 대한 편견이 사라지길 바란다.”

글=정심교 기자(simkyo@joongang.co.kr), 사진=프리랜서 김동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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