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백원·5백엔짜리 크기·무게 비슷|한-일 "쌍동이 동전" 말썽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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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6면

크기와 무게가 같은 동전을 놓고 한국과 일본 두 나라 중앙은행이 요즘 미묘한 관계로 빠져들었다.
작년부터 일본내 자동판매기와 전자오락기계에서 간간이 나타나던 우리나라 5백원짜리 동전이 최근 들어 부쩍 늘어나고 있기 때문에 일본측에서 이를 문제삼고 나선 것이다. 일본동전 5백엔짜리와 우리나라 5백원짜리의 무게와 크기가 거의 같아 대부분의 일본자동판매기들이 양국 동전의 차이를 식별해내지 못하는 데서 비롯된 일이다.
실제 5백원짜리와 5백엔짜리는 지름이 26.5mm로 똑같고 두께는 눈으로 구분이 잘 안될 정도. 다만 우리 것이 조금 두꺼워 5백원짜리의 무게는 7.7g, 5백엔짜리는 7.2g으로 우리 것이 0.5g 무겁다. 그러나 이 정도의 차이는 너무 미미해 오락기계 등이 제대로 감지하지 못해 5백원동전을 넣어도 5백엔 동전을 넣은 경우와 똑같이 작동된다는 것. 요즘 원화의 대엔 환율이 1백엔에 6백원 안팎이므로 이 경우 약 6배의 이득을 볼 수 있다는 얘기다.
일본은행은 처음엔 몇몇 한국관광객이나 호기심에 찬 자국인들이 장난삼아 쓰는 것으로 알고 대단찮게 여겼으나 최근 이런 일들이 잦아지자 발권은행으로서 몹시 곤혹스러워 하고 있다.
그렇다고 이를 내놓고 떠들수도 없는 것은 자칫하면 모르던 사람들에게도 알려져 사태를 더욱 악화시킬 수도 있기 때문. 그래서 일본은행은 이달 들어 각종 비공식통로를 통해 한은동경사무소와 한은본점에 항의조의 푸념을 늘어놓고 있다는 것.
최근 일본에 출장갔다 돌아온 한은의 한 관계자는 일본은행에 들렀다가 불평을 많이 들었다고 털어놓았다.
특히 날이 갈수록 자동판매기와 오락기계는 늘어나는데다 최근 일본성인오락장(빠찡꼬) 에서는 자체 제작한 코인을 쓰지 않고 주화를 쓰는 추세여서 문제가 더욱 어려워지고 있다는 것.
그렇다고 이제 와서 동전크기를 달리하고자 해도 문제는 간단치 않다. 동전을 바꾸는 것도 어렵지만 이미 만들어진「동전먹는 기계」들을 모두 거둬들여 다시 제작해야 하기 때문이다.
두 동전의 탄생시기를 보면 5백엔짜리가 82년 4월이고 우리나라의 5백원짜리가 82년 6월이니 우리동전이 두달쯤 늦다. 하지만 그것만으로 일본은행이 한국은행에 대해 시비를 걸 수는 없는 일. 왜냐하면 엄격히 따져 두 동전은 무게가 분명히 다르고 표면그림과 도안도 틀리기 때문이다.
일본은행측은 현재 사용되고 있는 5백원짜리 동전이 한국관광객이나 교포들의 주머니에서 나온 것으로 보고 있다고 한다. 그러나 일본을 드나드는 한국사람 못지 않게 한국을 여행하는 일본사람들도 많아 그렇게 단정지을 수는 없는 문제.
아직까지는 이 문제가 그렇게 심각하지는 않아 양국 중앙은행은 그저「미묘한 관계」에 있다하나 일본내에서 우리나라 동전사용이 계속 늘어날 경우 일본은행과 한국은행은 자칫 불편한 관계로까지 발전할 수 있다고 관계자들은 우려하고 있다.<심상복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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