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VERTISEMENT

왜 북극에서까지 ‘중국 위협론’이 불거지나?

중앙일보

입력

차이나랩

차이나랩’ 외 더 많은 상품도 함께 구독해보세요.

도 함께 구독하시겠어요?

‘3000㎞’
중국에서 북극까지 직선거리다. 중국이 일대일로(육해상 실크로드)를 그곳까지 확대하겠다고 선언했다. 북극 진군의 나팔에 걸린 여섯 글자는 ‘빙상 실크로드.’ 북극에 묻혀있는 어마어마한 자원을 미국과 러시아 등 (북극) 주변 국가들이 독차지하도록 그냥 두지 않겠다는 거다. 하기야 1만㎞가 넘는 유럽과 아프리카까지 실크로드를 연장하고 있는 중국이 3000㎞밖에 있는 북극에 눈독을 안 들일 리 있겠나. 결국 2018년은 미국과 러시아·중국이 주도하는 ‘북극 대전’의 원년으로 기록될 것 같다. 북극 항로 개척에 목을 매고 있는 한국의 신북방정책이 정신 안 차리면 찬밥 신세 면치 못하게 생겼다.

북극 정책 백서를 발표하는 중국 국무원 [사진 봉황망]

북극 정책 백서를 발표하는 중국 국무원 [사진 봉황망]

중국 국무원(행정부)이 1월 26일  발표한 ‘중국의 북극 정책 백서’는 중국의 북극 진출 공식 선언이다. 동시에 2017년 7월 시진핑(習近平) 중국 국가 주석이 모스크바에서 밝힌 ‘빙상 실크로드’ 개념을 구체화하는 일종의 ‘알박기’다. 백서에는 중국의 단계적이고 집요한 북극 공략 전략이 담겨있다. 우선 백서는 중국을 ‘근(近) 북극 국가’로 규정했다. 북극 국가는 통상 영토가 북극해에 걸쳐 있는 러시아·미국·캐나다·덴마크·아이슬란드·노르웨이·스웨덴·핀란드를 가리킨다. 따라서 1순위는 아니지만 2순위로 북극에 대한 지분을 갖고 있다는 논리다. 북극에 있는 모든 자원을 8개국이 독식할 생각하지 말라는 것이다.

북극항로와 기존 항로 비교 [출처: 두산 백과]

북극항로와 기존 항로 비교 [출처: 두산 백과]

백서의 논리는 정교하다. 북극에 있는 자원 문제는 거론도 안 했다. 대신 중국이 북극과 가장 가까운 국가 중 하나로 북극의 자연 상황과 변화가 중국 기후와 생태계 환경에 직접적 영향을 미친다고 했다. 그러면서 북극 문제가 이미 북극권의 개별 국가 간 문제나 지역 현안 범주를 넘어서 북극 역외 국가의 이익과 국제사회의 전체 이익에도 관련되는 사안으로 변했다고 주장했다. 북극에서 무슨 문제가 생기면 중국에도 영향을 받으니 북극에 주주 권리를 행사하겠다는 얘기다. 대신 말은 절제하면서 자신들의 주장은 확실히 했다. 예컨대 백서 발표 기자회견에 참석한 쿵쉬안유(孔鉉佑) 중국 외교부 부부장이 북극 문제와 관련해 “넘보지도, 빠지지도 않겠다”고 했다.
북극 권리 주장에 무리는 안 하겠지만 무시당하면 가만히 있지 않겠다는 무언의 경고 같은 거다.

올해 미국·러시아·중국 주도하는 '북극 대전' 원년 #중국 북극 정책 백서, "넘보지도 빠지지도 않겠다" #

북극에 어떻게 접근하느냐는 구체적 전술에서 일대일로가 나왔다. 빙상을 뚫고 북극항로를 개척하겠다는 게 핵심이다. 이 항로의 중국 식 이름이 ‘빙상 실크로드’다. 구체적 전술이 바로 빙상 실크로드라는 이름의 북극항로 개발이다. 이미 한국이 관련 국가들과 함께 건설하자고 목이 터지도록 외쳤던 항로다. 한국 입장에서 보면 북극 항로는 부산에서 출발해 연해주 앞바다~베링해~북극~유럽으로 이어지는 1만 5000㎞의 항로다. 이는 부산~남중국해~인도양~수에즈 운하~유럽으로 이어지는 기존 항로(2만 2000㎞)보다 7000㎞가 짧아 운송비가 대폭 절감된다. 중국 역시 북극 항로를 이용하면 일대일로의 동진(東進)이 가능하고 중화 세력의 유럽 진출에 대한 또 다른 채널을 확보하는 전략적 이점이 있다.

중국의 북극 탐사선 쉐룽호 [사진참고소식망]

중국의 북극 탐사선 쉐룽호 [사진참고소식망]

사실 중국은 이번 백서 발표에 앞서 지난 수년간 소리 없이 북극 항로를 개척해왔다. 북극 항로는 동북 항로와 서북 항로, 중앙 항로로 나뉜다. 중국의 중위안(中遠) 해운이 2013년부터 동북항로에 10척의 선박을 파견해 14차례에 걸쳐 항로를 개척했다. 그 결과 2017년 5척의 화물선이 각종 철강재, 펄프 등 화물을 싣고 동북항로를 개척했고 상시 운항체제를 구축한 상태다. 중위안 해운 핀란드 지사 측은 현재 모든 북극 항로의 상시 운항 가능성을 연구 중이다. 특히 동북 항로의 경우 전통 항로보다 거리가 짧아 유럽의 새로운 항로와의 연결이 가능할 것으로 보고 있다. 빙상 실크로드가 열리면 발전 잠재력이 큰 중국 내 항구도 공개됐다. 21세기 경제보도에 따르면 다롄과 톈진, 칭다오, 상하이, 닝보, 샤먼,선전, 광저우, 홍콩, 가오슝, 타이베이 등이다. 앞으로 이들 11개 항구에 거점을 마련하면 유럽으로의 물류에 큰 덕을 볼 것이라는 신호다. 사실 백서 발표가 시작이 아니라 이미 다양하게 북극을 공략하고 있었던 중국이다.

시작 단계인지라 백서는 주변국과의 협력을 유난히 강조하고 있다. 주변국들과 협력 없이 독자적으로 북극 항로 개척이 어렵다는걸 충분히 알고 있는 중국이다. 특히 한국과 일본, 그리고 러시아를 중시하고 있다. 이미 2016년부터는 한중일 북극 고위급 대화채널을 구축했는데 이를 활성화해 3국 협력 체제를 강화하겠다는 입장을 백서는 분명히 하고 있다. 자오룽(趙隆) 상하이 국제문제 연구원 글로벌 거버넌스 소장 조리(助理)의 설명은 이렇다.
“환경 영향으로 북극 빙하의 해빙이 빨라지고 있다. 이에 따라 각국의 북극 개발이 빨라지고 있다. 환경보호에 대한 활동도 증가하고 있다. 중국도 쉐룽(雪龍) 호 보내 8차례에 걸쳐 관련 조사를 했다. 이후에도 정기적으로 관련 조사를 실시할 것이다. 중국은 비북극 국가 중 비교적 늦게 관련 정책을 내놨다. 이미 한국과 일본, 인도, 독일, 프랑스, 영국 등 비 북국 국가들이 관련 정책을 발표했다. 많은 국가가 중국의 북극 정책이 상호 협력과 발전에 도움이 될 것으로 믿고 있다. 중국은 북극 국가들의 권리와 원주민들의 문화를 존중하겠다. 동시에 북국의 변화는 중국 등 기타 국가들의 이해 관계가 직결돼 있다.”
빙상 실크로드가 한국과 일본을 부르는 형국이다. 한국이 잘하면 중국의 빙상 실크로드를 타고 부산에서 유럽으로 가는 북극 항로 개척이 순풍을 타겠지만 잘못하면 중국과 일본 러시아에 휘둘려 구경꾼 신세가 될 수도 있다는 얘기다. 정부가 중국의 백서를 철저히 분석하고 파악한 후 빙상 실크로드에 합류를 결정해야 한다는 의미다.

북극 항로를 개척하고 있는 중국 선박 [사진 상해 상보]

북극 항로를 개척하고 있는 중국 선박 [사진 상해 상보]

그럼 중국이 장기적으로 준비해온 북극 진출의 진짜 속셈은 뭔가. 우선 북극에 진출하려는 대부분 국가와 마찬가지로 에너지 자원에 관심이 많다. 북극은 미개발 상태이지만 자원의 보고라는 건 이미 알려진 사실이다. 원유와 천연가스는 각각 전 세계 매장량의 25%, 45%로 추정되고 니켈ㆍ아연 등 다른 광물자원의 매장량도 어마어마하다. 그뿐인가. 원양어업 기술의 발달로 2~3년 내에 북극 연안에서 전 세계 어획량의 37%가 확보될 것이란 예측도 나온다. 지구 온난화로 북극의 빙하가 녹으면서 항로 개척과 함께 북극의 어족 자원도 수면 위로 드러나고 있는 거다. 지속 가능한 발전을 담보하기 위해 각종 에너지 자원 확보에 올인하고 있는 중국에 북극은 전략적 요충지 이상의 의미를 가지고 있는 거다. 진찬룽(金燦榮) 인민대 국제관계학 교수는 “극지대·심해·우주·사이버공간 등 새로운 영역에 대한 중국의 관심이 경제규모의 확대, 국제 영향력 증대에 맞춰 커지고 있다. 전통 영역은 이미 서방 구세력에 의해 장악된 만큼 중국은 새로운 영역의 규칙을 만드는데 있어 주도적 역할을 하기를 원하고 있다. 중국은 이미 북극 개발에 참여할 기술적 역량과 국가적 관심을 갖고 있다“고 강조한다.

중국에 북극은 에너지 못지않게 군사 전략적 차원에서도 양보가 어려운 거점이다. 특히 미국과 러시아가 현재 북극 주변에 전력을 계속 강화하고 있는 상황이어서 중국은 속이 탄다. 러시아의 경우 전략핵 전력의 핵심인 탄도미사일 발사 잠수함의 주요 주둔지로 북극을 선택한 데 이어, 2015년에는 아예 북극 사령부를 설치했다. 지난해에는 북극지역 작전을 위한 4개 특수부대까지 창설했다. 북극해 전역에 활주로 14개와 항구 16곳, 쇄빙선 40척을 확보했으며 크루즈ㆍ대함미사일 발사 훈련 213회를 포함해 지난해에만 300회 이상의 군사훈련을 실시했다.

미국도 움직이고 있다. 현재 미 해군이 북극해에 배치한 쇄빙선은 2척인데 그나마 1척은 너무 낡아 운용이 불가능하다. 알래스카 북부에 배치된 소수의 해안경비대 외엔 별다른 군사시설도 없다. 때문에 제임스 매티스 국방장관은 북극을 핵심 전략 지형으로 지목하고, 국방부도 의회에 적극적인 북극 투자를 요청한 상황이다. 북대서양조약기구(NATOㆍ나토)도 지난해 11월 대서양 사령부의 작전 반경을 북극해까지 확대하는 방안을 논의했다.

중국은 북극 항로를 개척해 대양 해군의 꿈을이루려 한다 [사진 봉황망]

중국은 북극 항로를 개척해 대양 해군의 꿈을이루려 한다 [사진 봉황망]

실정이 이러니 중국은 좀이 쑤신다. 해양 실크로드를 구축하려는 목적이 대양해군 건설인데 북극에서 미국과 러시아, 유럽에 막히면 시진핑 주석이 노리는 ‘중화부흥’은 물 건너 가기 때문이다. 일부 서방 언론에서는  이미 ‘중국의 북극 위협론’이 거론되고 있다. 중국이 빙산 실크로드를 타고 북극에 들어와 전력을 강화하면 북극에서 다시 대국 간 긴장 국면이 야기될 수 있다는 것이다. 물론 중국은 손사래를 친다. 아예 백서에서 중국 위협론을 비판하며 중국의 입장을 담았다. 백서의 설명을 그대로 옮기면 이렇다. “중국의 북극 정책이 나오기 전에는 국제 사회가 일부 의심하거나 우려할 수 있다고 본다. 그러나 이제 서로 협력하고 윈윈하는 중국의 북극 정책이 공개됐다. 그런데도 일부에서는 아직도 중국을 음해하고 있다, 중국 자원 기근론, 중국 자원 유해론 등이다. 중국의 북극 정책의 목표는 북극을 더 알고 북극을 보호하며 북극을 이용하고 북극 경영에 참여하자는 것이다. 이를 위해 일대일로의 연장선인 빙상 실크로드 개척을 통해 공동 발전하고 윈윈하는 협력과 기회를 만들자는 것이다.” 물론 이런 중국의 해명을 신뢰할 수 있는지는 향후 빙상 실크로드의 향배에서 그대로 드러날 것이다.

베이징=차이나랩 최형규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