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쟁의 아픔, 태권도로 날린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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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6면

"암울한 조국의 상황에 희망이 되고 싶다."

67kg급에서 동메달을 획득한 이라크 선수 자만 알리(25)는 눈물을 글썽였다. 제4회 아랍 태권도 선수권대회가 시작된 지난달 29일. 이집트 수도 카이로의 경찰연합체육관은 응원 열기로 터져나갈 것 같았다.

그러나 관중석 한 구석에 자리잡은 이라크 선수들의 표정은 어두웠다. 4체급 예선전이 한창 진행되는 이날 오후 선수단은 이라크 나자프에서 발생한 테러소식을 접했다.

선수단 대부분이 바그다드 및 주변 도시 출신이어서 나자프에 친인척이 있는 선수나 임원은 없었지만 80여명이 사망하고 수백명이 부상한 대규모 테러에 대표단은 서로 할 말을 잃었다.

전후 이라크는 아직 혼란지대다. 선수단은 버스를 이용해 바그다드에서 약 1천km 떨어진 시리아의 수도 다마스쿠스에 도착, 그곳에서 항공기편으로 암만을 경유해 카이로에 도착했다.

오는 길은 험했지만 선수들의 눈매는 초롱초롱했다. "너무 지쳐 발차기도 잘 안됐지만 지금은 배운다는 입장에서 다른 선수들의 경기를 관찰하고 있다." 1회전에서 예선탈락한 알리 수프(27)는 뚫어져라 경기장을 지켜본다.

84kg급으로 선수단 중 가장 큰 몸집을 가진 수프는 시아파 밀집거주 지역인 사담 시티 출신이다. 이번 테러로 사망한 시아파 지도자 무하마드 바키르 알하킴을 존경한다고 말했다. 그는 또 "이같은 사태로 이라크 국민이 분열되지 않았으면 좋겠다"고 걱정했다.

지난달 31일 3일간의 대회는 막을 내렸다. 이라크는 동메달 하나에 만족해야 했다. 그러나 "전쟁 중에도 적극적으로 훈련에 참여한 선수들이 대견스럽다"라고 단장인 자말 알카림(37)은 선수들을 격려했다.

카이로=서정민 특파원(중동전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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