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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도 100%의 귀여움, 이 곰을 어찌할 것인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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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1면

첫 직장에서 해고된 패딩턴은 북실북실한 털로 고층빌딩 등 창문닦기에 나선다. [사진 누리픽쳐스]

첫 직장에서 해고된 패딩턴은 북실북실한 털로 고층빌딩 등 창문닦기에 나선다. [사진 누리픽쳐스]

‘전편만한 속편은 없다’는 말은 역설적으로 전편을 능가하는 속편이 나올 때 빛을 발한다. 8일 개봉하는 영국산 가족영화 ‘패딩턴2’(감독 폴 킹)가 이런 경우다. 실사와 애니메이션의 경계를 넘나드는 정교한 표현력, 이를 한껏 활용한 극적인 전개는 성인 눈에도 충분히 매혹적이다. 페루 출신의 어린 곰 패딩턴(작은 사진)이 평범한 영국 가족 브라운네 식구가 되는 1편을 못 봤다 해도 쉽게 따라갈 수 있는 내용이란 것 역시 강점이다.

영국산 가족영화 ‘패딩턴2’

2편은 어느덧 영국에 익숙해진 패딩턴이 고향에 있는 루시 숙모의 100세 생일을 앞두고 완벽한 선물을 구하려 하는 이야기다. 마침 동네 골동품점에서 발견한 건 독특한 그림책, 페이지를 넘길 때마다 종이로 만든 런던의 곳곳의 모형이 입체로 펼쳐지는 팝업북이다. 평생 영국 방문을 꿈꿔온 숙모에게 최적의 선물 같다.

문제는 오래 전 단 한 권만 제작된 책이라 비싸다는 것. 팝업북을 사기 위해 패딩턴은 난생처음 구직 전선에 나서 한 푼 두 푼 돈을 모으기 시작한다. 그러던 어느 날, 골동품점에 도둑이 침입하는 걸 목격하고 뒤를 쫓다가 도둑 누명을 쓰고 감옥에 갇히는 신세가 된다.

패딩턴

패딩턴

패딩턴은 파란 더플코트에 빨간 모자를 쓴 생김새만 매력적인 게 아니다. 말솜씨는 완벽한데 비언어적 뉘앙스, 예컨대 상대의 말에 숨겨진 음흉한 의도나 위협 같은 것에 지독히 둔감하다. 이런 순진함과 어릴 적 숙모의 가르침대로, 상대에게 매너 있고 친절하게 대하면 상대도 그럴 것이라고 믿는 선량함은 단연 패딩턴의 매력이다. 패딩턴의 정직한 매너는 험상궂은 죄수들로 가득한 감방생활에도 통한다. 형편없는 음식을 강요하던 죄수 요리사 너클스(브렌단 글리슨 분)의 메뉴마저 달라지게 한다.

초반 서커스 축제 장면, 후반 증기기관차와 구식 기계장치를 이용한 추격전 등은 물론이고 패딩턴의 감방생활도 유쾌한 동화 같다. 세탁 담당인 패딩턴의 실수로 우락부락한 죄수들이 핑크빛 차림이 되는 장면은 웨스 앤더슨 감독의 ‘그랜드 부다페스트 호텔’ 같은 영화가 떠오른다.

최고의 장면이라면 패딩턴이 상상 속에서 숙모와 함께 팝업북 속 런던을 누비는 모습이다. 종이의 질감과 평면성, 책장 넘기는 느낌을 고스란히 살려 스크린에서 동화책이 움직이는 것 같다.

왕년에 로맨틱 코미디를 주름잡았던 배우 휴 그랜트가 악역을 맡은 것도 묘미다. 한때 스캔들로 비호감이 됐던 미남, 이제 환갑을 눈앞에 둔 휴 그랜트는 영화 속에서 자기애로 점철된 퇴물 배우 역을 맡아 패딩턴에게 누명을 씌우는 밉상 캐릭터를 능청스레 소화한다.

세상 어떤 먹거리보다 마멀레이드를 좋아하는 패딩턴은 영국 작가 마이클 본드(1926~2017)가 1958년 펴낸 동화 『패딩턴이라 불리는 곰』을 통해 탄생했다. 평생에 걸쳐 패딩턴 시리즈를 펴낸 본드는 지난해 91세로 세상을 떠나기에 앞서 ‘패딩턴’ 1편에 카메오로 출연하기도 했다. ‘패딩턴2’는 원작의 특정 에피소드를 곧이곧대로 옮기는 대신 1편부터 연출·각본을 맡은 폴 킹 감독과 1·2편에 잠시 나오는 배우 겸 작가 사이몬 파너비가 시나리오를 썼다. 브라운 가족과 이웃들이 생김새부터 이질적인 패딩턴을 공동체의 일원으로 여기는 모습은 이방인이 넘쳐나는 지금 시대를 위한 우화 같기도 하다.

‘패딩턴2’는 미국 비평사이트 로튼토마토에서 신선도 지수 100%를 기록한 것도 화제다. 이 사이트가 조사해 모은 180편 가량의 비평이 하나같이 긍정적 평가란 얘기다. 2월 중순 열릴 영국 아카데미상(BAFTA) 시상식에는 작품상, 각색상, 휴 그랜트의 남우조연상 등 3개 부문 후보로 올랐다. 영화의 마지막, 본편이 끝나도 바로 자리를 뜨기는 힘들다. 자막과 함께 휴 그랜트, 아니 극 중 배우 피닉스의 멋진 공연 장면이 펼쳐지기 때문이다.

이후남 기자 hoonam@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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