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 번째 음반 '러버스' 낸 DJ 소울스케이프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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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내에서 DJ가 발표하는 음반이 자리잡기 훨씬 전인 2000년, 스물 한 살의 나이에 데뷔앨범 '180g 비츠'(180g beats)를 발표한 청년이 있었다. 이름은 DJ 소울스케이프.

그는 음반을 내고 별다른 활동을 하지 않았지만 소수의 음악팬 사이에서 그의 앨범은 지금도 회자되고 있을 정도로 화제가 됐다. 이 음반은 홍콩.대만에서 라이선스로 발매됐고, 일본 음악 잡지에 소개되는 등 해외에서 먼저 인정을 받았다. 그가 돌아왔다. 데뷔 앨범을 발표한 지 3년 만이다.

소울스케이프의 본명은 박민준. 군복무를 마치고 올해 초 복학한 연세대 전기전자공학과 학생이다. 고등학교 시절 용돈만 생기면 LP 가게를 찾아 다니며 음반을 사모으던 소년이 어느새 자신이 모은 LP에서 다양한 사운드를 찾아내 새로운 음악을 만드는 주인공이 된 것이다.

기성세대는 'DJ' 하면 흔히 음악다방이나 나이트 클럽에서 음악을 틀어주는 사람을 떠올리지만 요즘 DJ는 창조자로서의 역할이 크다. 클럽에서 음악을 틀기도 하지만 기존 음악과 음악을 섞고(믹싱), 샘플링하고(일부분만을 떼내 들려주는 것), 각종 사운드를 재배치하거나 변조해 전혀 새로운 음악을 만들어내는 것이다. 일종의 '신개념' '신경향'의 음악이다. 유럽에서는 유명한 DJ들이 톱가수 못잖은 인기를 누리고 있다.

'러버스(Lovers)'란 제목의 이번 앨범에 담긴 곡은 10곡의 연주곡과 3곡의 보컬 곡 등 모두 13곡. 멜로디와 리듬은 모두 그가 가진 LP에서 찾아낸 소리를 샘플러를 이용해 재구성한 것이다. 한 곡에 보통 12~13곡의 곡이 차용된 셈인데 한 곡 한 곡의 작은 부분을 가져다 쓰고 이를 변조했기 때문에 듣는 이로서는 원곡이 무엇인지 가늠하기 어렵다.

"어머니가 베리 화이트 등 솔 뮤직을 특히 좋아하세요. 덕분에 고등학교 때부터 솔.재즈 등의 음반을 사 모을 수 있었죠. 95~96년 께에는 중고 LP시장이 전성기였기 때문에 3천~4천원 정도에 좋은 음반을 구입할 수 있었어요." 이렇게 해서 모은 LP가 3천여장. 고등학교 3학년 때 용산전자상가에서 구입한 DJ용 턴테이블은 그에게 새로운 세계를 열어주었다.

그의 음반에는 자신이 즐겨 듣던 솔.펑크.재즈.보사노바 등의 다양한 음악적 요소가 녹아 있다. 기계로 소리를 재조합 했다는 사실을 잊을 만큼 친근하면서도 신선하게 들리는 게 신기할 정도다.

여성보컬 홍보람이 노래한 '원더풀', 또다른 여성 보컬 청안이 참여한 '자스민' 등은 그 자신이 샘플링해 재구성한 리듬에 멜로디를 더한 곡으로 그의 작곡 실력과 남다른 재치를 엿보게 한다.

"연주자의 손길이 닿지 않은 음악이라고 이런 음악 방법 자체에 대해 반감을 가진 분들이 계세요. 음악을 시작하면서 이 주제를 놓고 어머니(작곡 전공)와 많은 토론을 벌이기도 했죠. 샘플링을 하지만 창작자의 입장에서 책임감을 가져야 한다고 생각해요. 다만 이런 음악도 다양한 음악의 하나쯤으로 인정해주면 어떨까요? "

그는 "가장 좋은 음악은 많은 사람들이 쉽게 공감할 수 있고 이해할 수 있는 음악"이라며 "샘플링 음악을 통해서도 듣는 이의 가슴을 울릴 수 있다고 믿는다"고 말했다.

이은주 기자

사진=신인섭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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