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책과주말을] 사군자 찾아 삼천리 … 사생여행 15년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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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8면

새로 그린 매란국죽 1, 2
문봉선 지음, 학고재
각 204쪽·180쪽, 각 2만원

우리 땅에서 나고 자랐고, 그래서 우리 정신을 담고 있는, 제대로 된 사군자 그림을 그리고 싶다-. '새로 그린 매란국죽'은 한 중진 화가의 이러한 바람에서 출발했다. 그는 사군자의 정확한 모습을 담기 위해 전국 곳곳을 떠돌았다. 매화의 청초함을 담기 위해 전남 승주 선암사와 섬진강변의 매원을 내 집처럼 드나들었고, 난초의 고결함을 살리기 위해 안면도와 제주 난원을 찾아가 춘란과 한란의 차이를 익혔다.

눈과 비를 맞으며 현장 사생에 매달린 세월이 장장 15년. 두 권의 책에 담긴 그림이 15년간 그린 사군자의 5분의 1에 못 미친다고 하니, 그 성실함만으로도 박수를 받기에 충분하다. 이 집념의 화가는 우리 화단의 대표적 중견으로 꼽히는 문봉선(45) 홍익대 교수다. 그는 책 서문에서 '껍데기를 그리고 뼈대는 그려도 정신을 그리기는 어렵다'는 명나라 화가 동기창의 말을 인용한다.

기나긴 사생여행이 결국 정신을 그리기 위한 기초 작업이었다는 얘기다. 사군자를 한국화 입문 때 잠깐 그리고 지나가는 정도로 여기는 학생들에 대한 안타까움도 함께 내비친다. 얼핏 보기에 그런 학생들을 대상으로 한 사군자 작법서 같지만, 일반인이 사군자의 아취를 눈으로 즐기는 데도 별 무리 없는 고급 교양서이기도 하다.

기선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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