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합법적 연명의료 중단 오늘(4일) 시작됐지만...의료진 "소송당할까 우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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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의 한 대학병원 중환자실.[중앙포토]

서울의 한 대학병원 중환자실.[중앙포토]

4일 '호스피스·완화의료 및 임종 과정임종 과정에 있는 환자의 연명의료 결정에 관한 법률(이하 연명의료결정법)'이 시행되면서 합법적으로 연명의료를 중단할 수 있는 길이 열렸다. 1997년 서울 보라매병원 사건(말기환자의 퇴원을 도운 의사가 처벌된 사건) 이후 치열한 윤리 논쟁 끝에 21년 만에 존엄사가 시행된다.

 임종 과정임종 과정에 있는 환자가 연명 의료를 중단하거나 시작하지 않아도 가족이나 의사가 처벌받지 않는다. 연명의료란 심폐소생술·인공호흡기·혈액투석·항암제투여 등의 네 가지 행위를 말한다.

병원 옮겨 존엄사할 판

 어렵게 출발했지만 준비가 미흡해 '문을 열고 버스가 달리는 격'이 됐다. 존엄사를 하려면 의료기관 윤리위원회가 설치돼 있어야 한다. 위원회는 병원 외부인 포함해 5명 이상으로 구성해 연명의료중단 관련 심의·상담을 맡는다. 4일 현재 60곳 병의원에만 설치돼 이 곳 환자만 연명의료를 중단할 수 있다.

 상급종합병원 42곳 중 서울아산·서울대·신촌세브란스·서울성모 등 23개 병원만 설치했다. 삼성서울·고대안암·한양대·부산대 등 큰 병원 20곳은 설치하지 않았다. 종합병원 301곳 중 30곳만 등록했다. 종합병원급 이상 큰 병원의 15%에서만 연명의료 중단이 가능하다. 삼성서울병원 관계자는 "내부적으로 연명의료 중단 절차와 기준을 정해야 하는데 이런 걸 아직 확정하지 못했다"고 말했다. 의원급 중에는 경기도 시흥의 새오름가정의원이 유일하게 연명의료중단 기관으로 등록했다.

연명의료결정법의 내년 시행을 앞두고 시범사업 실시 첫날인 23일 오후 서울 중구 을지로 국립의료원에서 한 부부가 사전의료의향서를 작성하고 있다.

연명의료결정법의 내년 시행을 앞두고 시범사업 실시 첫날인 23일 오후 서울 중구 을지로 국립의료원에서 한 부부가 사전의료의향서를 작성하고 있다.

 연명의료 중단의 핵심 장치가 사전연명의료의향서다. 건강할 때 미리 작성하는 문서다. 아무 데서나 작성하면 안 된다. 요건을 갖춰 정부에 등록한 기관을 찾아야 한다. 4일 현재 49개만 등록했다. 광주·세종·제주에는 한 곳도 없다. 제주도민이 의향서를 작성하려면 뭍으로 나와야 할 판이다.

현장 혼란 여전

혹시 법 위반으로 걸릴까봐 의료진이 극도로 긴장하고 있다. 응급실에서 관행적으로 사용하던 심폐소생술 금지요청서(DNRㆍDo Not Resuscitate)는 연명의료결정법에서 인정하지 않는다. 하지만 상당수 응급실에서 사용하고 있다. 복지부는 "연명의료결정법과 관계없이 응급상황 등 의료기관 판단 하에 DNR 사용의 가능성은 있겠으나 법의 보호를 받을 수 있는 건 아니다"고 애매한 입장이다.

서울의 대형병원 응급의학과 전문의는 4일 응급환자에게 DNR을 적용했다. 그는 “법 시행 전에는 응급 상황에서 죽음을 앞둔 환자 가족이 DNR을 작성하면 심정지가 와도 심폐소생술을 하지 않았다”며 “이제부터 혹시 가족이 소송을 걸면 처벌받을 수 있어 걱정이 태산"이라고 말했다.

 4일 서울의 한 대형병원 중환자실. 폐암 말기환자인 A(48)씨가 임종과정에 접어들었다는 판정을 받았다. 곧 인공호흡기를 달아야 할 상황이다. 환자는 평소 연명의료 견해를 밝힌 적이 없다. 의료진은 A씨 부인과 장모에게 "인공호흡기·심폐소생술 등 연명의료를 시작할지말지 결정할 때"라고 설명했고 심폐소생술 금지를 요청했다.

 그런데도 의료진이 가족 전원의 동의가 필요하다고 해서 지방의 7남매가 급히 상경했다. 법대로라면 배우자·자녀·부모가 전원 합의하면 중단할 수 있는데 형제·자매까지 모았다. 의사는 “법 시행 초기라 조심하는게 좋을 것 같다”고 설명했다.

 존엄사 세부 사항을 문답으로 풀어본다.

임종환자란.

"회생 가능성이 없고, 치료에도 불구하고 회복되지 않으며 급속도로 증상이 악화되어 사망에 임박한 상태를 말한다. 담당의사와 전문의 1명이 판단한다."

모든 임종환자가 존엄사 대상인가. 

"그렇지 않다. 환자의 의사를 확인해야 한다. 말기가 됐을 때 환자가 의사의 충분한 설명을 듣고 연명의료계획서에 서명하면 된다. 사전연명의료의향서를 미리 작성해두면 된다. 이 문서는 정부 전산망에 등록돼 유사시에 실시간으로 조회해서 활용할 수 있다."

이런 서류가 없으면.

"환자가 의식이 없거나 의사를 표현하기 곤란할 때 가족 2명이 '부모님이 연명의료를 원하지 않았다'고 일관되게 진술하면 된다. 환자의 뜻을 모를 때 가족 전원이 합의하면 된다. 가족은 배우자·자녀·부모를 말한다. "

집에 있는 환자도 해당하나.

"응급 상황에 처한 응급환자, 집에서 사망하는 환자 등은 적용받지 않는다."

인공호흡기 등 네 가지 행위만 중단 가능하나.

"그렇다. 물·영양·산소 공급은 중단해서는 안 된다. 에크모(체외심장기능장치)·승압제(혈압 올리는 약)도 마찬가지다. 연명의료중단은 환자의 고통을 덜어주기 위해 생명을 인위적으로 종결시키는 안락사(euthanasia)와 다르다."

식물인간도 해당하나.

"지속적 식물인간이나 뇌사 환자는 존엄사 대상이 아니다."

종전에 민간기관에서 작성한 사전의료지시서는 효력이 있나. 

"없다. 전국 49개 기관에서 새로 작성해야 한다. 종전 서류는 환자가 의사를 표현할 수 없는 상태에 있을 때 가족이 환자 의사를 전할 때 활용하면 된다. 사전의향서나 연명의료계획서는 언제든지 변경하거나 철회할 수 있다. 연명계획서는 나중에 다시 입원해서도 쓸 수 있다."

법에 따라 연명의료를 유보 또는 중단한 경우 보험금 청구에 불이익을 받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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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지 않다. 보험금 또는 연금급여 지급 시 불리하게 대우하여서는 안 된다." =

그래픽=김영옥 기자 yesok@joongang.co.kr

그래픽=김영옥 기자 yesok@joongang.co.kr

연명의료결정법 제정으로 정말 안락사와 존엄사가 합법화된 것인가.  

"그렇지 않다. 이 법에서 규정하고 있는 “연명의료중단등결정”이란 임종 과정에 있는 환자에 대하여 치료 효과 없이 임종기간만을 연장하는 의학적 시술을 시행하지 아니하거나 중단하기로 하는 결정을 의미하며, 환자의 생명을 단축하는 시술을 시행하거나 물·영양·산소의 단순 공급을 중단하는 것은 허용되지 않는다. 연명의료를 유보 또는 중단하기 위해서는 반드시 환자가 임종 과정에 있다는 의사 2인의 의학적 판단이 선행되어야 하며, 단순히 환자 스스로 임종을 선택하는 것만으로는 연명의료의 유보 또는 중단을 할 수 없다."

연명의료중단등결정의 이행(연명의료 중단 또는 유보)과 안락사·존엄사·웰다잉이 혼동된다. 용어 간 어떤 차이점이 있나.

"안락사(安樂死, euthanasia)는 환자의 고통을 덜어주기 위해 생명을 인위적으로 종결시키는 모든 행위를 의미하는 용어로서, 사망을 위한 방법과 시기를 제한하지 않는다는 점에서 연명 의료중단 등 결정의 이행과 다다. 존엄사(尊嚴死, death with dignity)는 사망하는 사람의 존엄성 확보를 목적으로 환자의 자기결정권을 강조하는 용어다. 법적 용어는 아니다. 엄밀히 말하면 ‘임종 과정’에 있다는 의학적 판단이 전제된 환자에 대하여 제한적으로 환자의 자기 결정을 인정하는 연명의료중단등결정의 이행과는 구별되지만, 국내에서는 같은 의미로 통용된다. 행복한 죽음이라는 뜻을 지닌 웰다잉(well-dying)은 유언작성, 장례절차 준비, 유산의 상속 및 기부 등을 포함하여 임종 문화에 관한 포괄적 용어로 정확한 정의 없이 사용되고 있다."

연명의료결정법 시행 이전 민간 기관을 통해 작성된 유사서식(사전의료지시서 등)은 법적 효력이 있나.

"연명의료결정법 시행 이전에 작성된 사전의료지시서나 시범사업 기간(2017년 10월 22일~2018년 1월 15일)에 보건복지부가 지정한 시범사업 기관이 아닌 곳에서 작성된 사전의료지시서는 법적 효력을 갖지 않는다. 다만 환자가 의사를 표현할 수 없는 의학적 상태에 있는 경우 환자 가족 2인 이상이 환자의 의사를 진술할 때 그 증거자료로 쓰일 수는 있다."

연명의료결정법이 시행되는 2018년 2월 4일 이후에는 모든 의료기관에서 연명의료계획서를 작성할 수 있나.

"그렇지 않다. 의료기관 윤리위원회가 등록된 의료기관에서만 연명의료계획서를 작성할 수 있다. 연명의료결정법 제14조에 따라 연명의료중단 결정 및 그 이행에 관한 업무를 수행하려는 의료기관은 의료기관 윤리위원회를 설치하고 보건복지부에 등록하여야 한다. 이때 다른 의료기관 윤리위원회와 업무수행 위탁에 관한 협약을 체결하거나, 보건복지부가 지정한 공용윤리위원회에 해당 업무를 위탁하고 이를 등록하면 윤리위원회를 설치한 것과 동일한 효력이 발생한다."

사전연명의료의향서를 작성·보관에 돈이 드나.

"그렇지 않다."

사전연명의료의향서는 꼭 본인만 작성해야 하나.

"그렇다. 이 문서는 작성자가 임종 과정에 있는 환자가 되기 전이라도 미리 연명의료중단결정을 할 수 있도록 마련된 제도다. 적법하게 작성된 문서는 향후 특정 요건 아래에서 본인의 의사로 간주하여 실제 연명의료 중단 및 유보의 근거가 될 수 있으므로 반드시 본인이 충분한 설명을 듣고 작성해야 한다."

사전연명의료의향서 작성을 위해 전화로 상담한 후 작성자가 집에서 작성하여 우편으로 등록기관에 보내도 되나.

"상담은 유선으로도 가능하다. 하지만 본인 여부를 확인하고 설명을 잘 이해하는지를 확인하려면 상담원과 대면해서 작성해야 한다.

사전연명의료의향서와연명의료계획서를 작성하면 변경하거나 철회할 수 없나.

"그렇지 않다. 작성자 또는 환자 본인의 의사에 따라 언제든지 변경하거나 철회할 수 있으며, 이런 요청을 받으면 등록기관 및 담당 의사는 관리기관의 정보처리시스템에 변경 또는 철회 여부가 반영되도록 조치하여야 한다.

연명의료계획서 작성 후 퇴원한 환자가 수개월 후 다시 입원하면 기존에 작성한 연명의료계획서의 효력이 유지 되나.

"그렇다. 연명의료계획서는 국립 정보처리시스템에 등록되어 있는 경우 환자의 입원 및 퇴원 여부와 관계없이 효력이 발생한다."

환자가족 2인 이상의 진술, 환자가족 전원의 합의에 따른 결정에서 환자가족의 범위는 어떻게 되나.

"배우자와 부모, 조부모, 자녀와 손자녀이며, 이에 해당하는 사람이 모두 없는 경우 형제·자매가 포함된다."

환자가 의식이 있는데 가족이 환자에게 질병이나 임종 과정 여부를 알리지 않고 연명의료를 중단 또는 유보할 수 있나.

"그렇지 않다. 연명의료결정법의 입법 취지는 환자가 자신의 질병을 파악하고, 임종 과정이 예측되는 시점에 미리 환자 스스로 연명의료중단을 결정하여 존엄성을 유지하게 돕고 환자의 최선의 이익을 보장하는 데 있다. 따라서 환자가 의식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환자에게 알리지 않고 가족이 대신 연명의료중단 의사결정을 하여서는 안된다. 담당 의사도 환자가 임종 과정에 있다는 의학적 판단 및 환자의사의 확인 없이 무조건적으로 가족의 의사결정을 수용하여서는 안된다."

환자가족이 없는 환자도 연명의료를 중단하거나 유보할 수 있나.

"무연고자나 독거노인 등 환자가족이 없는 경우라면 사전연명의료의향서나연명의료계획서로 스스로 의사표시를 한 경우에만 중단 또는 유보할 수 있다. 만일 환자가족이 없는 환자가 의사표현을 할 수 없는 의학적 상태라면 연명의료를 유보하거나 중단할 수 없다."

환자가족 일부가 해외에 있거나 몸이 불편하여 나머지 환자가족과 한 공간에 모일 수 없는 경우에도 환자가족 전원의 합의에 의한 연명 의료중단 결정이 가능한가.

"현행 법률에는 환자의 의사를 확인할 수 없고 환자가 의사표현을 할 수 없는 의학적 상태인 경우 ‘환자가족 전원의 합의’를 통해서 환자를 위한 연명의료중단 결정을 할 수 있다고 하고 있으나, 합의의 방법은 구체적으로 규정하고 있지 않다. 따라서 환자가족의 범위 내 본인임을 확인할 수 있고 그에 해당하는 사람들의 합의가 확인된다면 모든 구성원이 한 날 한 시에 한 자리에 모일 필요는 없으며, 녹음 또는 녹취 등에 의한 확인도 인정할 수 있다."

연명의료결정법 시행 이후 심폐소생술 금지요청서(DNR)의 효력은 어떻게 되나.

"DNR(Do Not Resuscitate·심폐소생술 금지)은 의료 현장에서 많이 활용하고 있는 문서이기는 하다. 그러나 의료기관에서 자체적으로 활용하여 오던 임의 서식이며 작성 주체 및 작성 방법 등도 통일되어 있지 않다. 또한 DNR은 ‘임종 과정’이라는 의학적 판단을 전제하기보다 ‘심정지’라는 특수 상황에 대하여 활용되는 서식이다. 특히 환자의 의사능력에 대한 확인 없이 가족 또는 불특정 대리인에 의해 환자에 대한 연명의료 유보 또는 중단을 결정하는 경우는 환자의 자기결정을 존중하고 대리결정을 허용하지 않은 연명의료결정법의입법취지에 부합한다고 보기 어렵다. 따라서 연명의료결정법과 관계없이 응급상황 등 의료기관 판단 하에 DNR 사용의 가능성은 있겠으나 연명의료결정법에 따라 보호받을 수 있는 결정은 아니라는 게 정부 입장이다."

신성식 복지전문기자·이에스더 기자ssshi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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