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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포츠로 만난 남북, '환한 미소'로 답했다

중앙일보

입력

평창 올림픽에 출전하는 북한의 피겨 간판 염대옥 등 북한 선수단이 1일 오후 강원도 강릉선수촌으로 입촌하고 있다. [연합뉴스]

평창 올림픽에 출전하는 북한의 피겨 간판 염대옥 등 북한 선수단이 1일 오후 강원도 강릉선수촌으로 입촌하고 있다. [연합뉴스]

환한 미소는 사람의 마음을 움직이는 훌륭한 무기다. 평창 겨울올림픽에 참가하는 북한 선수단 32명이 지난 1일 전세기를 타고 양양국제공항을 통해 한국 땅을 밟았다. 단연 눈에 띈 건 피겨스케이팅 페어종목에 출전하는 염대옥(19)이었다. 그는 양양공항을 빠져나오면서 취재진의 플래시 세례에 수줍은 미소로 화답했다. 올림픽선수촌으로 향하는 버스에 오른 뒤엔 오른손을 흔드는 등 적극적인 모습을 보이기도 했다.  취재진의 카메라를 바라보는 북한 선수들은 대개 굳은 표정을 짓지만 염대옥은 달랐다.

미소짓는 렴대옥  [강릉=연합뉴스]

미소짓는 렴대옥 [강릉=연합뉴스]

1m51㎝의 작은 체구를 지닌 열아홉 소녀의 미소는 큰 화제가 됐다. 2일 염대옥이 아침 식사를 하는 장면부터 피겨스케이팅 경기가 열리는 강릉아이스아레나에서 훈련하는 모습까지, 그의 일거수 일투족이 관심 대상이 됐다.

염대옥은 피겨 페어 파트너인 김주식(26)과 함께 여러 차례 국제대회 참가하면서 미디어를 경험한 선수다. 또 지난해 여름 캐나다 몬트리올 전지훈련에서 한국 피겨 페어 김규은-감강찬 조와 우정을 나누기도 했다. 지난해 여름 캐나다 몬트리올에선 브루노 마르코트(캐나다) 코치의 지도를 함께 받기도 했다. 김치를 나눠먹고 덕담을 주고받으며 자연스럽게 친해졌다. 당시 기념사진을 찍으며 추억거리를 남겼다. 사진 속 남북 선수들도 환하게 웃었다.

염대옥은 평창 겨울올림픽에 출전하는 북한 선수들 중 가장 좋은 성적을 기대할 수 있는 선수다. 염대옥은 파트너 김주식과 함께 지난해 일본 삿포로 겨울아시안게임 페어 동메달을 차지했고, 최근 열린 국제빙상경기연맹(ISU) 4대륙 대회에서도 동메달을 목에 걸었다.

지난 2016년 리우 올림픽에 출전한 여자 기계체조 이은주 선수가 북한 홍은정 선수와 셀카를 찍고 있다. [중앙포토]

지난 2016년 리우 올림픽에 출전한 여자 기계체조 이은주 선수가 북한 홍은정 선수와 셀카를 찍고 있다. [중앙포토]

스포츠 현장에서 남북 선수들은 정치적·이념적 대립을 떠나 기회 있을 때마다 대화를 나누며 한민족의 정을 나눈다. 사진 속 환한 미소를 통해 그들의 마음을 읽을 수 있다. 지난해 리우 올림픽에서 여자 기계체조에 출전한 이은주(18)는 북한의 홍은정(28)에게 다가가 휴대전화로 셀카를 찍었다. 이은주는 당시 천진난만하게 홍은정에게 다가가 "언니! 사진 찍어요"라고 말했다. 토마스 바흐(64) 국제올림픽위원회(IOC) 위원장은 두 선수의 셀카 사진을 보고 "위대한 몸짓(Great gesture)"이라고 찬사를 보냈다. AP통신은 12일 "한국과 북한은 핵 문제로 경계를 늦추지 않으면서도 리우에서는 소통하고 있다"고 전했다.

1991년 남북 단일팀 당시 현정화(왼쪽)-이분희. [사진 현정화]

1991년 남북 단일팀 당시 현정화(왼쪽)-이분희. [사진 현정화]

1991년에도 그랬다. 지바 세계선수권대회에 단일팀을 이뤄 출전한 여자탁구 현정화(49)와 이분희(50)는 최고의 호흡을 자랑하며 중국을 꺾고 단체전 우승을 차지했다. 대회 기간 친자매처럼 붙어다닌 둘이 환하게 웃으며 찍은 사진은 27년이 지난 지금도 여전히 감동적이다. 북한 조선장애자체육협회 서기장을 맡고 있는 이분희가 평창 패럴림픽에 한국을 방문할 가능성이 높다. 27년 만에 둘의 환한 미소를 다시 보게 될지도 모른다.

[사진 문화체육관광부]

[사진 문화체육관광부]

은퇴한 스포츠 스타들은 국제대회에서 만난 북한 선수들과의 에피소드를 무용담처럼 이야기한다. 관계자를 따돌리고 함께 술을 마시고, 대화를 나누고, 선물을 주고 받으며 정을 쌓았다. 평창올림픽에 출전하는 여자 아이스하키 남북 단일팀에서도 훈훈한 미소가 새어나오고 있다. 단일팀 선수들은 지난 28~29일 북한 선수 진옥과 최은경의 생일파티를 했다. 단일팀 선수들과 코칭스태프가 한데 모여 웃는 모습이 사진에 담겼다. 남북 선수들의 환한 미소는 갈라선 한민족의 상처를 치유하는 희망이다.

김원 기자 kim.wo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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