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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박보균 대기자의 퍼스펙티브

보복과 배신 논쟁 … 권력의 본질, 인간의 본성인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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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6면

박보균
박보균 기자 중앙일보

권력의 냉혹과 허망함

권력의 본능은 독점이다. 집권세력의 새 질서 구축은 거침없다. 옛 질서의 비리와 잔재는 청산 대상이다. 과거 정권은 그것을 정치 보복으로 파악한다. 사정(司正) 한파가 몰려온다. 검찰 수사는 배신과 변절을 유도하고 낚아챈다. 현재의 권력은 냉혹하다. 과거 권력은 허망하다. 두 개의 풍광은 엇갈리면서 마주친다.

MB 측 거래 구상의 오판 #박근혜 탄핵 공조로 #문재인 측과 제휴 기대했지만 #권력의 원한은 풀리지 않아 #신분 상승 의지, 복수심 강하면 #전통적 용인술에선 제외 #검찰 수사의 묘수는 배신감 자극 #문재인·MB의 평창 교류 주목 #‘대통령 문화’ 복원에 기여해야

검찰의 이명박(MB) 전 대통령 수사는 속도 조절 중이다. 문재인 대통령은 MB를 평창올림픽에 초청했다. 평창 유치는 MB 정권의 성취다. 그런 흐름은 한시적이다. 평창 이후는 긴박한 대치로 돌아갈 것이다. MB의 자세는 결연하다. “보수를 궤멸시키는 정치 공작, 노무현 대통령의 죽음에 대한 정치 보복···”(1월 17일 성명서). 문재인 대통령의 반박도 단호했다. “노무현 전 대통령의 죽음을 직접 거론하며 정치 보복 운운한 데 대해 분노의 마음을 금할 수 없다.”

‘궤멸’ 대상의 보수는 MB와 박근혜 세력이다. 하지만 MB는 박근혜 전 대통령을 비난조로 언급했다. “퇴임 후 5년 동안 4대 강 살리기… 등에 대한 수사로 많은 고통을 받았다”고 했다. 고통의 시기 대부분은 박근혜 정권 때다. 그 때문에 성명서의 언어는 결속력을 떨어뜨린다. 정치는 적과 동지를 선명하게 나눠야 한다. 소설가 복거일씨는 “정치적인 큰 대결을 하는 것인 만큼 문 대통령에게만 초점을 맞췄어야 했는데 분산됐다”고 했다.

그런 모습은 김영삼 전 대통령(YS)의 행적을 떠올린다. 김대중(DJ) 정권 초기 IMF 환란, 북풍 수사가 진행됐다. YS는 그것을 정치 보복으로 규정했다. 1999년 10월 부산민주공원 개원식. 현직 대통령 참석 행사였다. 그 자리에서 YS는 “독재의 망령이 되살아난다”고 했다. 전직 대통령의 축사는 거친 직설이었다. DJ는 YS의 민주화 공로를 기억했다. 그는 YS에게 악수를 청했다. 분위기가 다소 풀렸다. 부산 민주화의 간판인 송기인 신부와 문재인 변호사(현 대통령)도 그 현장에 있었다. 두 사람은 공원 건설에 앞장섰다.

신구 권력의 기세와 저항

신구 권력의 기세와 저항

그때는 집권 2년 차다. 살아 있는 권력의 위세가 넘쳤다. 하지만 전직 대통령은 그것을 뛰어넘었다. 그것은 선발제인(先發制人·기선 제압)의 기세다. YS의 이미지와 평판은 돌파와 정치 기습이다. 그는 평판을 바탕으로 공세적 방어에 나섰다. “평판은 정치적 자산이며 영향력의 근거다” (니콜로 마키아벨리). 그것으로 검찰의 포위망을 약화했다. 검찰은 그런 장면을 의식한다.

청 산과 보복은 정치 무대에서 익숙하다. 권력 세계에서 동지, 동류(同類)의식은 무의미하다. 거꾸로 비극은 커진다. 권력의 역설이 작동한다. 전두환 전 대통령의 파탄은 노태우 정권에서 시작됐다. 두 사람은 친구였다. 자유한국당은 여당의 ‘진보 20년 집권론’을 비난한다. 하지만 궤멸론 이전에 보수의 분열은 심각했다. MB와 박근혜의 공방 탓이다. DJ의 자부심은 6·15 남북 정상회담이다. 그 유산의 치명적 상처는 노무현 정부 때 났다. 대북 송금사건 수사 때문이었다. DJ와 노무현은 진보 정권이다.

2016년 말 MB의 친이계는 탄핵에 가세했다. 거기엔 박근혜 정권에 대한 원한이 섞였다. 박근혜 정권은 MB를 사자방(4대강+자원외교+방위산업)으로 압박했다. 친이계는 더불어민주당과 합세했다. 그 무렵 친이계 일각에선 탄핵 후 진보 세력과의 제휴를 기대했다. 하지만 그런 생각은 순진한 오판이었다. 어설픈 기대였다. 마키아벨리는 500년 전 이렇게 설파했다. “큰 인물들 사이에선 새로운 혜택을 베풂으로써 옛 상처를 잊도록 만들 수 있다고 믿는 것은 자기기만이다” (『군주론』). 마키아벨리는 권력과 인간성의 상관관계를 해부했다.

친이계의 탄핵 공조는 문재인 정권 탄생에 기여했다. 그것은 ‘새로운 혜택’이다. MB 세력의 마인드는 정치적 흥정이다. 하지만 지난날 피해(노무현의 죽음)는 거래 대상이 아니다. 권력의 원한은 잠재워지지 않는다. 이념 갈등이 섞인 복수의 열정은 식지 않는다. 문재인 정권의 시각에선 박근혜·MB 세력은 같은 적폐다.

마키아벨리의 시각은 노태우의 불행을 예견한다. 대통령 시절 노태우는 YS의 대선 승리에 기여했다. 하지만 김영삼 정권은 노태우·전두환 전직 대통령을 구속했다. 노태우 전 대통령은 “1992년 대통령 선거에서 김영삼 후보 측에 3000억원을 지원했다”고 주장했다. YS 측은 ‘비열한 정치 공작’이라고 부인했다. 그 폭로는 2011년 회고록 출간 때다. 구속 사건 16년 만이다. 95년 구속 무렵 노태우 측은 낭패감에 젖었다. 그런 뒤 YS의 정치자금을 약점으로 거론했다. 하지만 공개하지 못했다. 그것은 진흙탕 싸움에 나설 용기 부족 때문이었다. MB 측은 “우리에게 노무현 파일이 있다”고 한다. 그것을 폭로 형태로 내놓을지는 미지수다.

박근혜 권력의 작동 요소는 배신이다. 그것은 이념을 뛰어넘는다. 배신은 그에게 극복하지 못한 트라우마다. 집권 초 ‘전두환 추징법’은 대상자를 탈진시켰다. 박근혜의 전두환 인식은 아버지(박정희) 시대의 배반자다. 하지만 전두환 전 대통령은 반격한다. “나를 두고 박정희 대통령에 대한 ‘비판적 계승자’라고 할 수는 있겠지만, 배신은 얼토당토않은 얘기다.”

권력 드라마는 역전과 반전(反轉)으로 전개된다. 박근혜에게도 배신의 그림자가 덮쳤다. 문고리 3인방은 그의 상징적 측근이다. 그들은 국가정보원의 특별활동비를 실토했다. 그것은 자발적인 배반으로 비친다. 신복룡 전 건국대 명예교수는 “권력은 배반·변절과 공존한다. 『한비자』 『사기』를 보면 배신은 당한 사람의 책임”이라고 했다. 그것은 용인술의 실패다.

권 력 운영은 사람 쓰기다. 관중(管仲)의 통치술은 소인배 심리를 견제한다. “(소인배는 혜택만 바란다) 사랑은 미움의 시작이다. 덕은 원망의 바탕이다(愛者憎之始也, 德者怨之本也).”

문고리 3인방의 이탈은 그런 심정에서 확장됐을 것이다. 옛 시대의 용인술은 과도한 출세욕을 경계했다. 신분 상승 의지로 뭉친 사람은 승지(비서관)로 발탁하지 않는다. 그런 유형은 충성보다 자기방어를 우선하기 때문이다. 우병우 전 민정수석은 자기 보호에 주력한다. 박근혜의 몰락에 대해선 별로 신경 쓰지 않는다. 그것은 배신의 교묘한 수법이다.

김희중(전 청와대 제1부속실장)의 검찰 진술은 MB를 곤혹스럽게 한다. 그는 MB의 성골 집사였다. MB에 대한 그의 원한은 오래된 것으로 알려졌다. 미움의 방치는 변절을 낳는다. 박근혜 정권의 사람들은 자기 책임론을 꺼내지 않는다. 국민 다수는 “박근혜 정권 참여자는 비겁하다. 장세동 같은 사람이 없다”고 한다. 전두환의 용인술 분위기는 『수호지』의 양산박과 비슷하다. 장세동(전 국가안전기획부장)의 의리는 그런 속에서 단련됐다.

왕조의 용인술은 복수심도 억제했다. 그런 인상의 사람에게 사정 업무를 맡기지 않는다. 권력 행사의 절제를 위해서다. 백원우 청와대 민정비서관은 보복 논란의 대상이다. 백원우는 노무현 전 대통령 영결식장에서 현직 대통령 MB에게 항의했다. 정진석 자유한국당 의원은 “그는 지금도 대통령의 죽음에 분을 삭이지 못한다”고 주장한다. 백원우의 존재는 문재인 정권의 부담으로 돌아갈 것이다. 대중은 이미지로 상황을 파악하려 한다.

정책의 배신도 있다. 노무현의 매력적인 업적은 제주 해군기지다. 노무현은 ‘무장(武裝)평화론’을 내세웠다. 그것으로 무조건적 평화론에 맞섰다. 건설 반대 세력의 시위는 계속됐다. 제주기지 완성은 박근혜 정권 때다. 동북아 안보의 격랑 속에서 기지는 빛난다. 하지만 문재인 정권은 그 업적을 공개적으로 격찬한 적이 없다. 역사의 전당에 헌정(獻呈)하지 않은 것이다. 불법 시위자에게만 면죄부를 주었다.

검 찰의 국정원 특수활동비 포착은 절묘하다. 그것은 묘수다. 거기에 이헌수 전 국정원 기조실장(박근혜 정권)이 등장한다. 기조실장은 특활비를 관리한다. 예전엔 정권의 비자금이었다. 이헌수가 특활비의 은밀한 문을 열었다. 그것은 결정적 변절로 비친다. 그는 ‘내부자 고발’의 심리 속에 있을 것이다. 그는 구속되지 않았다. 그것은 플리바게닝의 의심을 받는다. 이헌수는 문고리 3인방과 갈등도 겪었다. 마키아벨리는 인간성의 불편한 진실을 파고든다. “인간은 배은망덕하고 변덕스럽고… 위험에선 빠지려 하고 이익엔 열정적이다.” 검찰은 인간의 그런 유약한 심리를 자극한다. 피의자는 무너진다. 변심과 배반의 유혹을 받는다.

검찰은 권력의 기대 수준에 맞추려 한다. 그 대가로 사정 기관의 압도적 지위를 누린다. 그 때문에 보복 논란은 증폭된다. DJ의 퇴임 후 지적은 실감 난다. “검찰은 너무나 보복적이고 정치적이며 지역 중심으로 뭉쳐 있었다. 권력에 복종하다가 약해지면 물어뜯었다.” 권력 행사의 신중함을 위해서도 수사권 분산이 필요하다.

보복과 배신 논쟁은 대통령 문화의 빈곤에서 비롯된다. 전·현직 대통령의 청와대 모임은 오래전 추억이다. 그런 만남은 박근혜 정권 이후 사라졌다. DJ 정권 시절 그 회동은 잦았다. 전두환은 “DJ 집권 시절엔 전직의 국정 경험을 평가했다”고 했다. 선진국의 리더십 문화는 공과(功過)를 나눠 다룬다. 공은 온고지신으로, 과는 반면교사는 삼는다. 문재인·MB의 평창 교류는 의미 있다. 그것은 대통령 문화의 복원에 기여할 것이다. 대통령 문화의 재구성이 청산과 보복 논란을 잠재운다.

박보균 중앙일보 칼럼니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