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옴부즈맨칼럼

기사 믿고 영화 봤다가 실망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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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3면

그런데 신문의 비평기사를 읽다 보면 이런 독자들의 필요를 충족시켜 주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미사여구로 독자의 호기심을 한참 자극해 놓고는 마지막 즈음에 가서야 '지루함을 참고 보면 재미있다'거나 '감독의 상상력을 즐겨야 한다'는 등의 아리송한 결론을 내린다. 독자들로서는 기자가 감히 대놓고 작품을 비난할 수 없으리라는 저간의 사정을 막연히 짐작하면서도, 수수께끼를 풀듯이 그 비평의 행간을 읽고 무엇을 암시하는 것인지 애써 추측해 내야만 한다.

문제는 호의적인 비평일수록 독자들의 작품에 대한 기대가 높아지게 되고, 결과적으로 그 작품에 대한 불만과 실망이 더 커질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이러한 실망을 경험한 독자들은 신문 비평에 대해 부정적 태도를 갖게 되게 마련이다. 개중에는 실망으로 인한 스트레스를 피하기 위해 그래도 좋은 점이 있었다고 작품을 실제보다 좋게 평가해 주는 착한 독자들도 있겠지만, 대부분은 신문 비평을 곧이곧대로 믿지 못하게 된다.

독자들은 신문의 비평기사가 적어도 담당기자의 개인적인 취향이나 불만, 친소 관계에 기하지 아니하고 객관적 가치평가에 의해 이뤄질 것을 요구할 권리가 있다. 그러한 비평은 독자들의 문화적 소비의 선택과 향유에 중요한 영향을 미치기 때문이다.

과거 좋은 비평을 위해 주고받던 촌지 관행은 이미 없어졌다고 믿고 있지만 들리는 바로는 영화사들이 영화담당기자들을 현지 시사라는 명목으로 외국으로 초대해 체재비.숙박비를 제공하거나, 소위 현장스케치라는 이름 하에 숙박과 술자리를 제공하는 관행은 아직 남아 있다고 한다. 또 출판사들이 추천도서나 소개도서 선정을 위해 담당기자들을 잘 모신다는 것도 사실인 것 같다. 과연 과분한 대접을 받고 난 기자들에게 냉정한 비판정신을 기대할 수 있는지 다시 한번 생각해 봐야 한다. 기자들은 영화에 과분한 찬사를 바치고, 영화사들이 그 찬사를 다시 광고에 이용하는 것은 독자를 조롱하는 것이다. 공짜 취재 관행으로 비판적 기자정신이 거세돼서는 안 된다. 남을 평가하고 판단하는 것은 외롭고 힘든 투쟁이어야 한다. 우리나라의 과거 역대 대법원장들이 매일 점심을 구내식당에서 시켜 당신 방에서 외롭게 혼자 먹었던 이유를 생각해봐야 한다. 뉴욕타임스의 도서비평이 오랫동안 독자들의 절대적인 신뢰를 받아온 이유를 되새겨볼 때이다.

최정환 변호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