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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오래] 일본 홀린 마시는 감자칩, 건더기 없는 라면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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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09면

김인권과 노다쇼의 일본 엿보기(1)

수십 년간 식상하지만 바뀌지 않았던 수식어인 ‘가깝지만 먼 나라’에 일본에 대한 연구와 고찰이 정책이나 산업을 떠나 우리 생활 구석구석에서부터 자연스럽게 진행되고 있다. 국내 기업들도 앞서가고 있는 일본의 유통 트랜드들을 읽고 적용하느라 분주하다.

日 히트상품 트렌드 3가지 #음식물에 손 안대고 먹기 #포장지에 부정적 단어 숨기기 #국물 맛 해치는 건더기 빼기

‘일본 엿보기’에서는 대학 때부터 수십년간 일본을 계속 ‘엿보고’ 있는 라이프스타일업계 대기업 임원 김인권 상무와 일본 기업을 다니다 한국에 들어와 일본어 강사와 번역 일을 하는 일본인 노다 쇼 두 사람의 ‘수다’를 통해 일본의 최신 트랜드들을 재미있게 고찰해본다.

김인권(아래 김) : 오늘은 제가 일본 미디어를 보다가 눈에 띈 히트상품 트랜드 3가지를 갖고 얘기 나누고 싶은데요, 먼저 '손이 더러워지지 않는 시리즈'입니다. 한국 관광객들의 필수 코스인 돈키호테에서 판매하는 '마시는 포테이토 칩'이 그중에 하나입니다. 이 제품을 내놓은 후 큰 반향을 얻고 있다는데 무슨 얘기지요?

일본의 종합유통업체인 동키호테에서 발매한 마시는 형태의 감자칩 '원핸드 포테이토 칩' 포장지 전면 사진. [출처 imgrum.org]

일본의 종합유통업체인 동키호테에서 발매한 마시는 형태의 감자칩 '원핸드 포테이토 칩' 포장지 전면 사진. [출처 imgrum.org]

노다 쇼(아래 노다) : '원 핸드 포테이토 칩'이라는 상품인데요. 감자 칩을 먹을 때  손을 더럽히고 싶지 않은 젊은 세대들의 니즈를 반영한 아이템으로 포장지 모양을 병의 주둥이가 달려 있게 개발해 그대로 음료를 마시듯이 부어 넣을 수 있는 상품입니다.

김 : 과자를 먹으며 스마트폰을 볼 때 기름 묻은 손가락을 번번이 닦아야 하거나 새끼손가락을 이용해야 하는 불편함이 있었는데 귀가 솔깃하네요.

노다 : 감자 칩의 모양도 동그라미가 아니라 성냥처럼 가늘게 해 바로 한 손으로 마시는 스타일로 개발돼 무섭게 인기를 얻고 있어 바야흐로 '마시는 포테이토 칩 시대'가 열렸다고 봐도 좋을 것 같습니다. 감자 칩을 손으로 집을 필요가 없어서 한 통을 다 먹어도 손은 깨끗하다는 게 마케팅 포인트죠. 실제로 먹어 보면 점점 포테이토 칩이 입으로 흘러들어 먹기 편했어요.

김 : 비슷한 컨셉으로 개발된 '흔들어 마시는 조각 케이크'라는 제품도 눈에 띄더군요. 이건 아마도 조각 케이크를 아무 데서나 먹고는 싶은데 손에 가루나 크림이 묻는 불안감을 해소해주는 제품으로 보입니다. 포장 디자인은 조각 케이크를 연상시키게 연출을 하고 잔잔한 내용물의 음료를 흔들면 젤리 스타일로 바뀌면서 마실 때는 조각 케이크 맛을 최대한 재현한다는 얘긴데 이 또한 소비자 심리를 세심하게 연구한 일본 제조업체의 고심을 엿볼 수 있습니다.

작년 11월에 일본 음료회사인 다이도 드링크사에서 출시한 '흔들어 마시는 조각 케익' 제품 사진. [출처 weekly.ascii.jp]

작년 11월에 일본 음료회사인 다이도 드링크사에서 출시한 '흔들어 마시는 조각 케익' 제품 사진. [출처 weekly.ascii.jp]

흔들면 흔들수록 젤리처럼 변하고 음료처럼 마시면 케익맛을 그대로 느낄 수 있는 획기적인 제품이다.

흔들면 흔들수록 젤리처럼 변하고 음료처럼 마시면 케익맛을 그대로 느낄 수 있는 획기적인 제품이다.

노다 : 최근에는 '감자칩 전용 집게'도 출시돼 잘 팔릴 정도로 '손가락 청결' 관련 상품들이 주목을 받고 있는데요. 이런 현상들은 아마도 수년 전부터 24시간 생활필수품이 돼버린 스마트폰 사용 패턴과 사무실이나 특정 공간에서의 지문인식기 사용 증가에 따른 사회적 현상과 직접 연관성이 있다는 게 중론입니다.  

일본의 다카라토미사가 작년 6월에 출시한 감자칩 전용집게 '포테이토 칩의 손'. '감자칩을 먹을 때 사용하는 매직 핸드'라고 어필하고 있다.

일본의 다카라토미사가 작년 6월에 출시한 감자칩 전용집게 '포테이토 칩의 손'. '감자칩을 먹을 때 사용하는 매직 핸드'라고 어필하고 있다.

김 : 기름 묻은 손가락으로는 지문 인식도 안 되고 스마트폰 사용도 잘 안 되던데 이런 세세한 불편도 신제품 개발 발상의 소재로 쓰인다는 게 놀라울 따름이네요. 이어서 오늘 두 번째로 이야기 나눌 테마인데요. 제품의 주요 기능을 최대한 숨겼더니 매출이 7.5배나 튀어 오른 독특한 아이템이 있다고 하는데 어떤 거죠?

노다 : 한국에서는 주로 특정 브랜드인 ‘페브리즈’로 일컬어 불리는 ‘탈취제’ 이야긴데요, 일본에서는 탈취제가 아니라 ‘소취제’로 불리는데 대표 브랜드로는 ‘리셋슈’가 있습니다. 그런데 이 리셋슈가 작년에 생활용품 인터넷 쇼핑몰인 ‘LOHACO’에서 신제품 출시 8개월 만에 기본 매출의 7.5배 신장을 하는 대기록을 세웠어요. 근데 그 신제품의 비결이 내용물은 그대로이고 포장 디자인만 교체했다는데 놀랐습니다.

제균 기능을 전면에 크게 강조한 일본의 대표 탈취제인 리셋슈(오프라인 유통용). [출처 kabi-yearlife.com]

제균 기능을 전면에 크게 강조한 일본의 대표 탈취제인 리셋슈(오프라인 유통용). [출처 kabi-yearlife.com]

김 : 저도 그 내용을 좀 들여다봤는데요, 저도 모르게 무릎을 탁 칠 정도로 공감이 가는 이야기들이 숨겨져 있더라고요. 내용인즉슨 ‘제대로 탈취’라던가 살균·항균 등과 같은 제품의 메인 기능들을 최대한 작은 글자로 숨기고 대신에 제품 전면을 스트라이프, 체크무늬 등 실내 인테리어 소품으로 활용해도 훌륭할 정도의 디자인으로 교체했을 뿐이었어요. 

제균 기능은 물론 브랜드 이름까지 하단의 작은 글씨로 숨기고 대신에 전면 스트라이프 디자인으로 재탄생 시킨 리셋슈(온라인 판매전용). [출처 kabi-yearlife.com]

제균 기능은 물론 브랜드 이름까지 하단의 작은 글씨로 숨기고 대신에 전면 스트라이프 디자인으로 재탄생 시킨 리셋슈(온라인 판매전용). [출처 kabi-yearlife.com]

그런데 그 포인트가 소비자들의 폭발적 반응을 일으켰다는 점입니다. 사실 우리 집에도 탈취제가 있긴 하지만 눈에 띄지 않는 집안 어딘가에 숨겨져 있을 거라고 상상해보니 이 작은 변화를 통해 소비자 심리를 여덟 배 가까이 움직인 성공 사례에 생활문화 기업에 임원으로 근무하는 저로서는 뼈저린 반성을 안 할 수가 없었습니다.

노다 : 제품개발 뒷얘기도 인상적인데요. 영업 사원이 한 레스토랑에서 본 광경에서 시작했다더군요. 모처럼 맛있게 식사하러 온 손님들에게 왠지 입맛을 떨어뜨릴 수 있는 ‘탈취’라던가 ‘항균’이라는 단어가 보이지 않게 하기 위해서 제품을 돌려놓거나 아예 포장 필름을 벗겨 놓은 집이 더러 있는 것을 보고 착안했다고 하는데요. 이렇듯 부정적 단어가 포함된 기능과 설명들을 부드럽게 바꿔서 출시하는 것도 새로운 트랜드입니다.

김 : 기능을 눈에 띄지 않으려고 하는 제품이 또 있는데요. 바로 ‘살충제’입니다. 일본 아스제약이 ‘살충제’라는 호칭 대신, ‘벌레 케어 용품’으로 부르기로 헸다는데요. 살충제라는 말 자체가 “뭔가 위험하겠는데”라는 생각이 들지 않겠느냐 라는데서 착안했으며, 벌레를 꼭 죽이는 게 아니라 쫓기만 해도 고객이 만족할 수 있다고 보고 성분도 화학 합성 성분이 아니라 천연 허브를 이용하고 있다고 합니다. 일본 살충제 관련 시장이 1200억엔이라는데, 아스제약은 ‘벌레 케어 용품’으로 변경해 100억엔의 시장 확대를 노린다는데요. 기대됩니다. 

‘탈취’나 ‘살충’이라는 기존 단어를 바꿔서 소비자의 심리를 어떻게 변화시킬 것인가가 이번 프로젝트의 관건이라고 봅니다. 단어의 이미지는 시대에 의해서 바뀌기 때문에 같은 상품이라도 어필하는 단어들을 트랜드에 맞게 바꾸지 않으면 혁신하지 못한다고 생각됩니다. 문득 아주 어렸을 때부터 뜻도 모르고 사용했던 ‘XX 킬라’라는 브랜드에 대해 나중에 영어 의미를 알고 “무시무시한 성분이 들어있겠구나”하는 생각을 했던 일도 떠올려지네요.

오늘 마지막으로 얘기 나눌 테마가 일본에서는 자주 쓰이는 한자인 ‘具(도구,건더기,속)’가 없는 아이템들입니다. 예를 들면 ‘건더기 없는 라면’, ‘도구 없는 호텔’ 등인데 대체 어떤 내용인지요?

노다 : ‘정말 여기까지 왔는가?’ 할 정도의 경이로운 상품 전략으로도 볼 수 있습니다. 우선 파 조차 없는 궁극의 심플 라멘이 인기인데요. 아키하바라의 한 식당에서 시작했는데 비주얼 적으로는 면과 국물밖에 없는 것으로 보입니다. 

기본적으로 라멘에 들어가는 토핑 재료인 파, 차슈, 숙주 등 건더기들을 완전히 배제시키고 고급 해산물로 8시간 우려낸 국물과 면으로만 구성된 라멘으로서, 아키하바라 한 식당에서 판매하고 있으며 여름에만 잡히는 이세지역 새우를 사용하는 계절 한정품. [출처 news.livedoor.com]

기본적으로 라멘에 들어가는 토핑 재료인 파, 차슈, 숙주 등 건더기들을 완전히 배제시키고 고급 해산물로 8시간 우려낸 국물과 면으로만 구성된 라멘으로서, 아키하바라 한 식당에서 판매하고 있으며 여름에만 잡히는 이세지역 새우를 사용하는 계절 한정품. [출처 news.livedoor.com]

그런데 국물은 이세 지역의 특산새우와 전복과 소라로 8시간 동안 끓여 오히려 파·차슈 등 흔한 토핑들이 고급스러운 국물 맛을 해칠 것을 대비해 건더기를 완전히 없앴다고 하네요. 라멘 치고는 고가인 한 그릇 1000엔에 파는데 1시간 만에 매진될 정도로 인기가 있답니다. 아쉽게도 이세 새우가 계절 특산품으로 여름에만 판매하고 있습니다

김 : 이번에는 독특하게 인기를 끌고 있는 도구 없는 호텔 이야기입니다. 메리어트 호텔 체인에서 전개하는 도쿄의 새 호텔 브랜드인 모쿠시 호텔에서 시작했는데요. 세탁 서비스, 미니 바, 체크인 카운터는 물론 개별 룸의 옷장과 냉장고, 테이블까지 없앴다고 합니다. 대신에 웨스틴, 쉐라톤 등의 고급 브랜드 호텔과 같은 등급의 매트리스와 침구, 느낌이 기가 막힌 나뭇결의 최고급 마루를 설치하는 등 ‘잠’을 자는 호텔 서비스 본질에만 매우 충실한 겁니다. 

옷장, 냉장고 미니바, 테이블 등 기존 호텔룸에 있던 도구들을 배제하고 온전히 고급베드와 침구 그리고 고급 마루로만 꾸며진 도쿄의 모쿠시 호텔룸 모습. [출처 4travel.jp]

옷장, 냉장고 미니바, 테이블 등 기존 호텔룸에 있던 도구들을 배제하고 온전히 고급베드와 침구 그리고 고급 마루로만 꾸며진 도쿄의 모쿠시 호텔룸 모습. [출처 4travel.jp]


대신 1층과 지하에 바 카운터와 비즈니스 데스크, 무료 헬스클럽 등이 있어서 특별히 불편한 점은 없어 보이는데요. 가격은 일반 호텔보다 절대로 싸지 않다는 게 특징입니다. 이러한 ‘도구’들이 없는 상품들이 고가에도 히트하는 현상은 어떻게 보시는지요?

노다 : 지금은 뭐든지 갖추어진 시대지 않습니까? 그러니까 오히려 ‘본질에 집중’하는 서비스나 상품에 열광하는 것 같습니다. 궁극을 구한 결과 그 정도 수준이 됐다고 하는 상품 개발자들의 고집과 그것을 고가에도 경험해보려는 니즈가  맞아 떨어져 고객들의 발을 옮겨놓지 않았나 생각됩니다. 한국에도 훌륭한 ‘고집’을 가진 장인들이 많이 계실 테니까 이러한 사회적 현상들이 곧 일어날 것이 분명하죠.

김 : 오늘 여러 가지 히트상품들을 통해 ‘최신 일본’에 대한 이야기를 나눠 봤고요. 다음 시간에는 좀 더 일본다운 유니크한 주제로 만나보겠습니다.

김인권 (주) LF 상무 digitalk67@gmail.com

우리 집 주변 요양병원, 어디가 더 좋은지 비교해보고 싶다면? (http:www.joongang.co.kr/Digitalspecial/2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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