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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굿모닝 내셔널]“이제 빼빼가족 아닌 빼빼부부” 세계여행 그 후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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울산 울주군 자택에서 만난 빼빼부부 최동익(왼쪽)·박미진씨. 최은경 기자

울산 울주군 자택에서 만난 빼빼부부 최동익(왼쪽)·박미진씨. 최은경 기자

가족이 모두 빼빼 말랐다고 붙은 별명. 3년 전 25인승 미니버스로 348일 동안 25개국, 163개 도시를 여행해 화제가 된 ‘빼빼가족’이다. 이들이 여행 베스트셀러 『빼빼가족, 버스 몰고 세계여행』을 낸 지 3년 만에 두 번째 책 『빼빼가족 세계여행-러시아&북유럽 편』을 출간했다.

2013년 다섯 식구 버스 타고 25개국 여행 #50평 아파트 팔고 20평 나무집 지어 살아 #여행작가 변신, 자녀들은 성인 돼 각자 삶 #“여행은 가장 잘한 선택, 가족의 기쁨 알아”

전시 디자이너였던 최동익(54)씨와 주부 박미진(50)씨, 첫째 다윤(23)씨, 둘째 진영(21)씨, 셋째 진우(20)씨는 직접 개조한 미니버스를 타고 2013년 6월 3일 울산 간절곶을 출발, 포르투갈 호카곶을 돌아 2014년 5월 16일 울산에 돌아왔다.

3년 전 세계여행 당시 빼빼가족. [사진 최동익씨 제공]

3년 전 세계여행 당시 빼빼가족. [사진 최동익씨 제공]

최씨는 직장을 그만두고 아이들은 휴학하거나 자퇴했다. 전 재산인 50평대 아파트를 팔고 여행에서 돌아와 살 20평 나무집을 직접 지었다. 여행이 끝나고 최씨는 여행작가가 됐다. 여행을 다녀온 지 3년 8개월, 그들은 어떻게 살고 있을까. 1월 30일 울산 울주군 언양읍 자택에서 부부를 만났다.

3년 만에 새 책을 냈다. 소개해달라.

최동익(이하 최): 초등학생을 주 독자로 한 지리 이야기 책이다. 흔히 국경을 넘으면 뭔가 크게 바뀐다고 생각하는데 그보다는 큰 산맥을 넘을 때 문화나 음식이 많이 달라진다. 지리를 알면 사회·역사·문화를 알기 쉽다.

박미진(이하 박): 직접 25개국을 다닌 경험을 담았다. QR코드로 현지 동영상도 볼 수 있다. 남편이 글, 큰딸이 영상, 둘째 아들이 목소리, 막내아들이 사진, 내가 그림을 맡았다.

울산 울주군 빼빼가족의 집. 여행을 떠나기 전 1년 동안 온 가족이 직접 지었다. 최은경 기자

울산 울주군 빼빼가족의 집. 여행을 떠나기 전 1년 동안 온 가족이 직접 지었다. 최은경 기자

세계여행에서 돌아온 지 3년 정도 지났다. 뭐가 달라졌나.

최: 가족 5명의 공통 관심사가 생겼다. 가령 TV에 러시아 전통 수프인 보르시가 나오면 모두 그 냄새를 아는 거다. 얼마나 좋나. 여행 전에는 내가 팀의 감독인 줄 알았다. 이제는 모두 같은 선수다. 감독에서 선수가 되니 행복하더라. 여행 가기 전 내가 지금 내 꼴을 보면 ‘추하다’ 했을지 모른다. 그래도 살면서 가장 잘한 선택이다.

박: 여행 전에는 엄마로서 역할이 부담됐다. 여행을 다녀온 뒤로는 아이들이 나를 엄마가 아닌 인간 박미진으로 봐준다. 몰랐던 나 자신을 발견했다.

최: 부부 사이도 더 좋아졌다. 늘 신혼 같다. 여행 전에도 아내에게 존댓말을 썼지만 마음속에 존대가 없었다. 여행하며 진심으로 아내를 존경하게 됐다.

부부가 시간을 가장 많이 보내는 거실 겸 부엌. 최은경 기자

부부가 시간을 가장 많이 보내는 거실 겸 부엌. 최은경 기자

생활은 어떻게 달라졌나.

박: 경제적인 면은 훨씬 안 좋아졌다. 남편은 가끔 강의를 하고 매일 글을 쓴다. 나는 하루 4시간씩 아르바이트를 한다. 여행을 안 가고 이런 상황이 됐으면 굉장히 힘들 텐데 지금은 별로 안 힘들다. 마음이 달라졌으니까. 나를 알고 나니 외부 조건과 관계없이 사는 게 늘 행복하다.

최: 여행 전에는 아이들 대학 등록금, 결혼 자금 모으느라 바빴다. 이젠 우린 둘이 잘 살 궁리만 한다. 아이들이 여행하며 독립심을 키웠다.

당시에는 떠나기 힘들었을 것 같은데.

최: 한 발만 떼면 되는데 그게 힘들었다. 25년 동안 쌓아온 작은 기득권으로 앞으로 10년은 편하게 살 수 있는데 그걸 놓고 가야 하지 않나. 돌아오면 뭐할지 고민도 했다. 생활 반경을 좀 줄이면 다섯 식구야 어떻게든 살겠지 싶더라. 자식이 대학, 좋은 직장 들어갈 때까지 기다리면 ‘효도관광’ 된다.

25개국을 함께 한 미니버스 ‘무탈이’. 버스 곳곳에 다양한 언어로 응원 글이 적혀 있다. 최은경 기자

25개국을 함께 한 미니버스 ‘무탈이’. 버스 곳곳에 다양한 언어로 응원 글이 적혀 있다. 최은경 기자

왜 세계여행이었나. 그것도 버스 여행.

최: 20년 넘게 전시 디자이너로 일하다가 울산시청에서 3년 정도 근무했다. 조직생활을 하며 디자이너도, 월급쟁이도 아닌 것 같아 나를 돌아봤다. 나, 아이들 모두 새벽에 나가 밤늦게 오더라. 가족을 위해 직장에 다닌다고 했지만 그게 아니었던 거다. 아내와 함께 하는 시간이 별로 없는 데다 아이들의 고민이 뭔지 몰랐다. 가족을 위해 시간을 쓸 수 있는 마지막 기회 같았다. 유목민처럼 매일 집을 옮기며 떠돌아다니고 싶었다.

박: 남편은 변화를 추구하고 싶어했다. 기존의 것과 단절할 수 있는 게 여행이었다.

최: 왜 여행이었는지 떠나기 전에는 몰랐다. 4평 남짓 되는 버스에서 와이파이, TV도 없이 다섯 식구가 매일 24시간을 함께 보냈다. 싸웠을 때 문 닫고 들어갈 방도 없다. 나가면 시베리아 벌판이다. 이런 환경에서 싸우면 지옥이다. 가족과 공통의 관심사를 만들고 싶었던 것 같다. 태양의 서커스, 미야자키 하야오 음악을 함께 들었을 때 행복했다. 물론 일상에서 공통의 관심사가 이미 축적돼 있다면 굳이 여행 갈 필요 없다.

2층 다락방은 부부가 쓰는 방, 1층은 삼남매의 방이다. 성인 5명이 쓰기에 좁을 듯도 하지만 최씨는 4평 짜리 미니버스와 비교하면 넓다고 했다. 최은경 기자

2층 다락방은 부부가 쓰는 방, 1층은 삼남매의 방이다. 성인 5명이 쓰기에 좁을 듯도 하지만 최씨는 4평 짜리 미니버스와 비교하면 넓다고 했다. 최은경 기자

자녀들이 독립적인 것 같다. 남다른 교육 방식이 있나.

(원래 다섯 식구 모두를 인터뷰하려 했다. 하지만 최 작가가 “이제 모두 스무 살이 넘어 각자 바쁘기 때문에 불가능하다”고 딱 잘라 불발됐다.)

박: 김장할 때나 아플 때는 학교에 안 보냈다. 아프다고 거짓말해도 안 보낸다. 본인이 쉬고 싶으니 거짓말한 것 아니겠나. 충분히 쉬면 알아서 간다. 여행을 결정할 때도 아이들 교육문제가 걱정됐지만 내가 결정할 부분이 아니었다. 아이들이 간다고 하면 가는 거다. 막내아들이 중학교 1학년 마치고 여행 다녀와서 검정고시로 1년 늦게 고등학교에 들어갔다. 여행하며 다큐멘터리 사진작가라는 목표가 생겼는데 교수가 가르치는 사진이 아닌 자신만의 사진을 찍고 싶다면서 대학에 안 갔다. 첫째 딸은 급식이 맛있다는 이유로 집에서 먼 고등학교에 다녔다. 그러라고 했다. 중요한 건 영어 교육이 아니라 아이들이 어떤 사회에서 살아가는지 살피는 거다.

최: 여행 전에는 아이들을 가르치려 했다. 스웨덴 한 섬에서 낚시할 때 아이들이 빵을 미끼로 쓰더라. ‘내가 해 봐서 아는데’, ‘너희는 아직 어리니까’ 이러면서 지렁이를 끼우라고 시켰다. 아이들이 여기서는 물고기도 빵을 먹는다면서 그대로 하더니 한 시간 만에 12마리를 잡았다. 어른으로서 경험치가 산산이 무너진 순간이었다.

거실 바닥에 집 지을 때 쓴 공구들을 그려놓았다. 세계여행 때 찍은 사진들도 전시했다. 최은경 기자

거실 바닥에 집 지을 때 쓴 공구들을 그려놓았다. 세계여행 때 찍은 사진들도 전시했다. 최은경 기자

다음 여행 계획은.

최: 이제 아이들과는 안 간다. 이별 준비를 슬슬 해야 한다. 돈이 좀 생길 때마다 아내와 제주도에 간다. ‘제주 올레, 큐슈 올레(가제)’ 라는 책을 준비하고 있다. 올해는 이탈리아·스페인 등에 다녀와서 ‘지중해를 걷다(가제)’라는 책을 쓸 계획이다. 지중해가 보이는 카페에서 아내와 커피 한 잔 마시는 것이 새해 목표다.

울산=최은경 기자 chin1chuk@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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