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속의 군인이야기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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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8면

「군인이야기를 소설로 써서는 안된다」는 명문화된 규제조항이 있는 것은 아닌데도 우리문단에서 군인 혹은 군대를 소설소재로 삼는 것은 금기에 가까운 일이었다. 소설가들 자신에게 있어서나 소설을 다루는 신문· 잡지 편집자들에게 있어서나 「군대이야기」는 자기검열 혹은 내부검열의제1조에 해당하는 것이었고, 그것은 당사자들의「몸조심」을 위해서는 부득이하다는 것이 문단의 공공연한 양해사항이었다.
물론 우리나라만의 특수한 상황탓으로 군대나 군인이야기 가운데는 비록소설이라도 써서는 안될 대목이 있기는 하겠지만 소설속의 「군대이야기」가 그처럼 불문율의 금기사항으로까지 발전하게된 것은 군에 의해 정치가 장악된 5·16쿠데타이후 우리나라의 현실상황과 무관하지 않다. 말하자면 군이 정치의 주역으로 등장하고 은연중 군우위의식이 팽배하게 되면서 군내부의 이런저런 실상이 활자화되어 대중에게 전달되는 것은 용납할 수가 없었던 것이다. 현실상황이나 체제문제에 관해서는 곧잘 「표현의 자유」문제가 거론되면서도 군에 관해서는 말조차 꺼내지 못할 분위기였다.
제5공화국과 그 이전에 있었던 보도되지 않았던 몇 개의 「사건」들은 그에 관한 당국의 경직성을 잘 보여주고 있다. 문제가 된 소설속의 「군대이야기」들은 군인을 희화적으로 묘사했다든가 현실에 대해 비판적인 태도를 가진 군인을 등장시켰다든가 하는 극히 사소한 내용들이 주종이었다.
군대라는 특수한 사회가 소설의 훌륭한 소재로 되어왔음은 전쟁문학의 차원에서만이 아니라「레마르크」 의 『서부전선이상없다』 라든가 「헤밍웨이」 의 『무기여 잘있거라』와 같은 무수한 세계명작들에 의해 여실히 입증되고 있다. 그런점에서라면 「군대이야기」를 제대로 쓰지못한 우리나라소설가들은 그만큼 소재제약에 묶여있던 셈이 되고, 좀더 비약한다면 금기된 소설속의 「군대이야기」는 그만큼 우리나라의 소설문학발전을 저해하는 요소로 작용해온 셈이 된다.
최근 출간된 신예작가복거일의 전작 장편소설『높은 땅 낮은 이야기』는 변화해가는 시대의 흐름에 때맞춰 선보인 「군대이야기」를 소재로 한 작품이라는 점에서 우리의 관심을 모은다.
이 작품의 주인공은 대학을 졸업하고 장교로 입대한 지식인 청년이다. 그는 자신이 속해있는 군대가 「국민을 억압하는 조직」이 되었다는 생각으로 괴로와하는 대한민국의 장교이며, 동시에 어느 봄날 밭에서 나물캐는 여인에게 문득 강한성욕을 느껴 범하려는 생각까지 갖게 되는 이 땅의 평범한 젊은이다. 그러나 그는 비인간화로 치닫는 군대사회의 온갖 비리를 체험하면서도 미래를 긍정적으로 바라보는 지식인 청년장교라는 점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비록 작품의 시대적 배경이 60년대라고는 하지만 이 작품을 통해 우리는 「먼 세계」에 존재하는 것으로 인식할 수 밖에 없었던 대한민국의 군대사회가 실상은 우리의 바로 곁에 존재할수도 있다는 것, 우리와 똑같이 생각하고 똑같이 행동하는「보통사람들」의 사회라는 것을 새삼 실감할 수 있게 된다. 「군인」들의 이야기가 아니라 「사람」들의 이야기이기 때문이다. 작품자체에 대한 평가는 다른 자리에서 이뤄져야하겠지만 그것이 문학의 기능이요, 소설의 힘이다.『군인과 사람은 구별돼야 한다』는 농담조의 표현은 자취를 감춰야 할때다. 군인은 높은 곳에 있지도, 먼 곳에 있지도 않다. 군인사회와 일반사회사이에 높고 두텁게 세워져 있는 견고한 담을 허물어버리기 위해서도 소설속에 더 많은 「군대이야기」가 등장해야 한다.
정규웅<중앙일보출판기획위원· 문학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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