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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에 대한 ‘의심’은 왜 합리적인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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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이 새해 세계를 향해 ‘당근’ 하나를 던졌다. 지난 23~26일 스위스 휴양지 다보스에서 열린 세계경제포럼(WEF·다보스 포럼)에서다. 포럼의 중국 대표인 류허(劉鶴·66) 중국 중앙재경영도소조 판공실 주임이 특별 연설을 통해 밝혔는데 올해 국제 사회가 기대하는 이상의 개방을 하겠다는 게 핵심이다. 그의 연설 내용 일부다.

다보스 포럼에 참석한 류허 주임 [사진 shanghai.xinmin.cn]

다보스 포럼에 참석한 류허 주임 [사진 shanghai.xinmin.cn]

“올해가 중국의 개혁 개방 40주 년이다. 5가지 부문에서 국제 사회의 기대를 넘는 개방을 하겠다. 제조업과 서비스업, 금융업, 생산권, 그리고 지적 재산권 보호다. 경제가 양적 성장이 아니라 질적 성장을 이어가기 위해서다. 물론 중국 경제가 갖고 있는 과다 부채와 과잉생산도 해소하겠다. 경제 세계화는 보다 개방적이고 포용적이며 균형적이어야 한다. 중국은 모든 형태의 보호무역주의에 반대하며 금융시장 접근을 확대하고 수입 증대를 선도해왔다.새해 보다 적극적으로 일대일로를 추진하겠다.”

다보스포럼 류허 "국제사회 기대 이상 개방할 것" #중국식 해결 아닌 국제 규범 따를 지 여전히 의문

미국의 보호무역주의를 에둘러 비판하면서 중국이 자유 무역을 주도하겠다는 얘기다. 지난해 이 포럼에 참석한 시진핑(習近平) 주석 역시 미국의 보호주의를 맹비난했었다. 무역으로 먹고사는 한국에겐 단비 같은 소식이다. 한국뿐인가. 5개 부문에서 국제 규범에 맞게 중국 시장이 개방된다면 세계 모든 국가가 중국의 광팬이 될 거다. 한데 류 주임의 말을 그대로 믿어도 되는 걸까. 평소의 중국 같지 않아 뭔가 꺼림칙하지 않나.

개혁 영도소조 회의를 주재하는 시진핑 주석(중앙) [사진 신화망]

개혁 영도소조 회의를 주재하는 시진핑 주석(중앙) [사진 신화망]

류허의 다보스 포럼 특별 연설 하루 전(23일) 중국에서는 중앙전면심화 개혁영도소조 회의가 열렸다. 올 들어 두 번째로 열렸는데 회의는 소조의 조장인 시진핑(習近平) 국가 주석이 직접 주재했다. 소조(小組) 자체가 중국의 모든 주요 정책을 총괄하는 사령탑이다.

이날 회의를 통과한 핵심 안건 중 ‘일대일로 분쟁 해결 시스템 및 기구에 대한 의견’이 포함돼 있다. 중국에 들어오는 모든 외국 기업에게 법과 서비스 등 다양한 도움을 주고 양호한 투자환경을 조성하겠다는 취지다. 그러나 이면에는 (해외 기업이)투자나 무역 등 중국 시장에 접근하는 과정에서 유발되는 모든 문제를 세계 무역 기구(WTO)로 가기 전 중국 내에서 조정을 거쳐 해결하도록 하겠다는 의도가 숨어있다. 중국 시장은 현재 일대일로(육해상 실크로드)를 통하지 않고 접근하기가 갈수록 어려워지는 상황이다. 중국 정부가 외국의 투자든 무역이든 거의 모든 분야의 대외 업무를 일대일로 추진과 연계시키고 있기 때문이다.

이쯤 되면 중국의 속셈은 거의 분명해 보인다. 류허가 말한 대로 세계가 놀랄만한 시장 개방은 하되 중국에 불리한 문제가 발생하면 국제 규범이 아닌 중국 식으로 해결하겠다는 얘기다. 예컨대 반도체 가격이 비싸다고 삼성을 불러 윽박지른 것처럼 말이다. 중국이 중심이고 정의이며 법이다. 이런 식의 개방이라면 개방 하나 마나다.

중화부흥을 꿈꾸는 시진핑 주석 [사진 신화망]

중화부흥을 꿈꾸는 시진핑 주석 [사진 신화망]

모든 게 중국 중심으로 이뤄지는 ‘차이나 퍼스트(China First)’의 실례는 또 있다. 미국 전략국제문제 연구소(CSIS)가 최근 공개한 자료를 보면 중국이 (일대일로를 위해) 자금을 지원해 아시아와 유럽 34개국에서 추진하는 교통 인프라 사업의 89%를 중국 기업들이 차지했다. 중국이 밝힌 일대일로 추진의 3원칙은 “같이 논의하고(共商), 같이 건설하며(共建), 같이 누린다(共享)”는 것이다. 말 따로 행동 따로의 중국이다. 오히려 세계은행과 아시아개발은행(ADB)의 자금 지원을 받아 유라시아 지역에서 추진되는 다른 교통 인프라 사업들이 일대일로 3원칙에 더 부합한다. 실제로 지난 2006년부터 최근까지 진행된 총 178개 사업 가운데 41%는 인프라가 건설될 국가의 기업들이 시공사로 선정됐고 29%는 중국, 나머지 30%는 제3국 기업들에 돌아갔다. 이러니 일대일로에 대한 우려 목소리가 끊이지 않고 있는 거다. 그리고 중국에 대한 ‘합리적 의심’이라는 말이 나오는 거다.

세계 거의 모든 선진국이 우려하는 중국의 지적 재산권 침해 문제는 어떨까. 류 주임의 말대로  ‘베끼고 오리발 내미는‘ 중국의 행태가 사라진다면 그것은 인류의 축복이다. 특히 최대 피해자 중 한 나라인 한국 경제엔 이보다 더 반가운 소식이 없을 거다. 그러나 모든 게 관성이 있는 법인데 중국의 선언을 액면대로 믿을 수 있을까. 미국 정부가 곧 중국의 지적 재산권 침해 조사 결과를 발표하고 중국에 천문학적인 벌금을 부과할 것이라는 보도가 나오고 있다. 현재 중국의 지적 재산권 침해가 어느 정도인지 곧 밝혀질 것이다. 미국의 지적 재산권 조사와 발표 예고에 놀란 중국이 류허 주임을 통해 마음에 없는 지적 재산권 문제 해결 입장을 밝혔을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중국 정부의 지적재산권국 로고 [사진 바이두 백과]

중국 정부의 지적재산권국 로고 [사진 바이두 백과]

윌버 로스 미국 상무장관은 이번 다보스 포럼에서 ‘중국 제조 2025’ 계획을 거론하며 중국의 지적 재산권 침해를 비판했다. 이 계획은 중국 국무원이 2025년까지 로봇과 자율주행차 등 10개 미래 핵심 산업에서 세계적인 중국 기업을 육성하겠다 게 골자다. 로스 장관은 “이 계획은 기술 이전과 지식 재산권에 대한 무시, 산업 스파이 등 모든 종류의 나쁜 수단이 동원돼 실행되는 것으로 (전 세계에)직접적인 위협이 될 것”이라고 날을 세웠다. 최소한 향후 7년간 중국은 지적 재산권을 침해해서라도 ‘중국 제조 2025 계획’을 완수하려 할 것이라는 주장이다. 중국은 아직도 선진국 기술에 목을 매고 있다. 그래서 단시일 내 해외 지적 재산권을 보장하고 관련 시장을 개방한다는 중국의 약속은 현실적으로 쉽지 않을 것이다.

중국의 지적재산권 침해를 비판하는 로스 미 상무장관 [사진 바이두 백과]

중국의 지적재산권 침해를 비판하는 로스 미 상무장관 [사진 바이두 백과]

참고로 중국 대표단 136명을 이끌고 다보스포럼에 참석 중인 류허는 누구인가. 시진핑의 경제 책사다. 실제로 중국 거시 경제 정책은 거의 그의 머리에서 나온다고 보면 틀리지 않다. 시 주석이 2013년 5월 당시 중국을 방문한 톰 도닐런 미 백악관 국가 안보 보좌관에게 “나에게 매우 중요한 사람”이라고 소개했던 인물이다. 시 주석의 그에 대한 신뢰는 거의 절대적이다. 중국 경제의 향방을 알려면 그의 발언에 주목해야 한다는 뜻이다.

시 주석이 경제까지 총괄하면서 그의 경제 권력은 리커창(李克强) 현 총리보다 세다는 말이 나온다. 시 주석 취임 전에는 총리가 경제를 총괄했다. 류허는 올 3월 열릴 예정인 전인대(국회 격)에서 현 마카이(馬凱) 부총리 후임을 맡아 금융과 거시 경제를 총괄할 것이 거의 확실하다.

이번 포럼 대표단에는 진리췬(金立群) 아시아 인프라 투자은행(AIIB) 총재, 샤오야칭(肖亞慶) 국유자산관리 위원회 주임, 팡싱하이(方星海) 증권감독관리위원회 부주석, 마윈(馬雲) 알리바바 회장, 류창둥(劉强東) 징둥(京東)닷컴 최고경영자(CEO) 등이 포함됐다. 류허와 함께 중국 경제를 쥐락펴락하는 거물들이다.

베이징=차이나랩 최형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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