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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장공모제 논란, '전교조 교장만들기'vs'유능한 교장만들기'

중앙일보

입력

청와대 분수 앞에서 하윤수 한국교원단체총연합회장 및 17개 시·도교원단체총연합회장들이 '무자격 교장공모제 전면 확대 규탄 및 철회 촉구' 기자회견을 열고 있다. [연합뉴스]

청와대 분수 앞에서 하윤수 한국교원단체총연합회장 및 17개 시·도교원단체총연합회장들이 '무자격 교장공모제 전면 확대 규탄 및 철회 촉구' 기자회견을 열고 있다. [연합뉴스]

"기존 승진체계 무력화하는 '무자격 교장 공모제'다."(한국교총 성명서)
"유능하고 민주적 소양이 풍부한 평교사 교장 기회가 넓어졌다."(전교조 논평)

교육부가 추진하는 내부형 교장공모제 확대를 두고 교육계 찬반 논쟁이 뜨겁다. 전국교직원노동조합(전교조)과 시민단체 사교육걱정없는세상 등은 정부 방침에 환영의 뜻을 보였지만 국내 최대 교원단체인 한국교총은 반대 의견을 내며 대정부 투쟁에 나서고 있다. 여기에 자유한국당, 국민의당, 바른정당 등 야당도 반대 목소리에 합세하며 정치권으로 논란이 확대되는 모양새다.

'사교육걱정없는세상' 회원들이 정부서울청사 앞에서 교장 공모제 확대 촉구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자격보다 실력을 보는 제도가 교장공모제라는 것이 이들의 주장이다. [연합뉴스]

'사교육걱정없는세상' 회원들이 정부서울청사 앞에서 교장 공모제 확대 촉구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자격보다 실력을 보는 제도가 교장공모제라는 것이 이들의 주장이다. [연합뉴스]

논란은 지난해 12월 26일, 교육부가 교육공무원 임용령 개정안을 입법예고하면서 불거졌다. 교장 자격이 없는 평교사도 15년 교사 경력만 있다면 교장이 될 수 있는 '내부형 교장공모제'의 비율 제한을 삭제한다는 내용이 담겼기 때문이다. 현재는 각 교육청별로 공모제를 시행하는 자율학교 중 최대 15%까지만 교장 자격 없이도 교장이 될 수 있게 제한한다. 개정안은 이 제한을 없애 모든 자율학교가 교장 자격이 없어도 교장이 될 수 있게 했다.

현행 내부형 교장공모제와 개선안의 비교

현행 내부형 교장공모제와 개선안의 비교

한국교총 등이 내건 반대론의 쟁점은 크게 두가지다. 첫번째는 지금껏 내부형 공모제가 사실상 특정 단체(전교조를 지칭)의 교장 진출 수단으로 활용됐다는 주장이다. 두번째는 이 제도가 기존 승진 체계를 완전히 무너뜨려 교사들의 기대를 저버렸다는 주장이다. 즉, 궂은 일을 도맡아 오면서 승진 점수를 쌓은 교사의 승진 기회를 차단하고 학교를 정치판으로 만든다는 것이다.

쟁점1. 전교조 교장 만들기인가

한국교총에 따르면 2012년부터 2017년까지 교장 자격 없이 공모제로 교장이 된 72명 중 53명(71%)이 전교조 출신인 것으로 나타났다. 전교조 교원이 전체 교원의 10% 미만임을 고려하면 상당히 높은 수치다.

교육계에선 이같은 결과가 오래 전부터 공모 교장 진출을 위한 전교조의 조직적 뒷받침이 있었기 때문이라는 해석이 나온다. 실제 2010년 전교조 경기지부의 내부 문건에는 "교장공모제 준비를 위한 작업"등의 표현이 등장한다. 문건은 양평 조현초, 세월초 등에 "거점학교 작업을 진행했다"고 설명한다. 실제 이들 학교에는 전교조 출신이 교장이 됐다.

전교조 경기지부가 2010년 작성한 '새로운학교 운동' 관련 문서의 일부분

전교조 경기지부가 2010년 작성한 '새로운학교 운동' 관련 문서의 일부분

지난 26일 자유한국당 조훈현 의원 주최로 열린 교장공모제 토론회에서도 이런 우려가 쏟아졌다. 이창희 서울 상도중 교사는 "교장 임용제도 개선 필요성에는 공감하지만 특정 노조에 유리하다는 의혹이 없어져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희범 전국학부모교육시민단체연합 운영위원장도 "특정 정파에 의해 좌지우지될 가능성이 농후한 '무자격 교장공모제'는 중단돼야 한다"고 밝혔다.

전교조는 "결과만으로 이유를 예단한 것"이라며 의혹을 일축했다. 송재혁 전교조 대변인은 "설령 전교조 출신 교장이 많다고 해도 이것이 학교 구성원들에게 그만큼 인정을 받았다는 의미로 해석돼야지 전교조 밀어주기로 해석되는 것은 이해할 수 없다"며 "공모제는 전교조 뿐 아니라 교총에게도 열려있는 제도"라고 말했다.

26일 국회에서 열린 교장공모제 관련 토론회. [중앙포토]

26일 국회에서 열린 교장공모제 관련 토론회. [중앙포토]

시민단체 사교육걱정없는세상도 기자회견문을 통해 "내부형 공모제로 교장이 된 이들은 전체 공립학교의 0.56%로 미미한 수준이다. 오히려 교장의 절대 다수가 한국교총 소속이므로 학교를 장악하고 있는 것은 전교조가 아닌 교총"이라고 비판했다.

쟁점2. 궂은일 도맡아온 교사의 승진기회 차단인가

한국교총이 교사 1645명을 대상으로 설문조사한 결과에 따르면 교장 자격 미소지자의 교장공모제 확대에 대한 반대 의견이 81.1%에 달했다. 반대 이유로 가장 많은 것이 '특정 노조 소속 조합원 내정 등 코드 인사'(38.4%)였고 두번째가 '오랜 기간 준비한 대다수 교원과 승진제도 무력화'(32.1%)였다.

지난 9일 서울 종로구 세종문화회관에서 열린 한국교원단체총연합회 교육계 신년교례회에서 김상곤 사회부총리 겸 교육부장관(왼쪽)이 김성태 자유한국당 원내대표와 악수하고 있다. 이날 김 원내대표는 축사를 통해 정부의 교장공모제 확대를 비판했다. [연합뉴스]

지난 9일 서울 종로구 세종문화회관에서 열린 한국교원단체총연합회 교육계 신년교례회에서 김상곤 사회부총리 겸 교육부장관(왼쪽)이 김성태 자유한국당 원내대표와 악수하고 있다. 이날 김 원내대표는 축사를 통해 정부의 교장공모제 확대를 비판했다. [연합뉴스]

평교사가 교장이 되려면 교감 자격과 교장 자격을 따야 한다. 자격 대상이 되게 위해 승진에 필요한 점수를 쌓아야 하는데, 도서벽지 근무나 교무부장과 같은 보직 등을 담당하면 가산점을 더 받을 수 있다. 그런데 교장 자격 없이도 교장이 될 수 있는 길이 넓어지면 그만큼 가산점 획득을 위한 노력을 덜하는 분위기가 될 것이란 예상이 나온다.

때문에 김동석 한국교총 정책본부장은 "남들이 기피하는 도서 벽지 근무나 담임 업무 등 궂은 일을 맡아하면서 승진 가산점을 쌓은 교사들의 신뢰를 저버리는 처사"라며 "무자격 공모제로 승진 가산점의 의미가 축소될수록 힘든 일을 기피하려는 풍토가 확산될 수 있다"고 우려했다.

하지만 전교조는 교사가 가산점때문에 일을 한다는 시각이 잘못됐다고 비판한다. 송재혁 전교조 대변인은 "가산점에 목매는 교사들이 아니더라도 교육적인 취지에서 궂은 일을 하려는 교사들이 많이 있다. 공모제때문에 도서벽지 교사가 없어진다는 해석은 과도하다"고 지적했다.

쟁점3. 교육부 정책 설득 노력 충분했나

내부형 교장공모제 확대는 문재인 정부의 공약이기도 했다. 하지만 지난해 연말 입법예고를 내놓기 전에 반대 의견을 내는 단체와의 의견 조율이 부족했다는 비판이 나온다. 김재철 한국교총 대변인은 "사전에 의견을 묻거나 토론할 기회가 없었다. 일방적으로 발표 일주일 전쯤 통보를 들었을 뿐"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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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교조도 교장공모제의 대표적인 찬성 단체로 비춰지는 시각이 불편하다는 의견이다. 송 대변인은 "교장공모제는 전교조가 주장한 정책이 아니다. 우리는 대학 총장처럼 교원들이 선출하는 '교장선출보직제'를 요구하고 있다"고 말했다. 그는 "제도를 둘러싼 진짜 교원들의 의견이 무엇인지 알기 위해 소속 단체를 초월한 설문조사를 해볼 계획을 갖고 있다"고 밝혔다.

전문가들은 정부가 보다 심사숙고해 추진할 필요가 있다고 지적한다. 류청산 경인교대 교수는 "교장으로서의 자격과 실력이 무엇인지 명확하고 구체적 정의 없이 추진되고 있다"며 "교장의 리더십에 대한 연구를 병행하면서 제도를 개선해야 한다"고 말했다.

남윤서 기자 nam.yoonseo1@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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