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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무 아팠던 정현 발, 박수 쳐주자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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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기에도 안쓰러운 그의 발바닥. 정현(22·한국체대·세계 58위)은 참고 참다가 결국 돌아설 수밖에 없었다. 양발바닥 모두 서 있을 수가 없는 상태였다. 응원해주는 국민들을 위해서 경기에 나섰지만 돌아서는 그 마음은 오죽했을까.

호주오픈 4강전 도중 메디컬 타임아웃을 불러 발바닥 치료를 받고 있는 정현. 오른쪽 사진은 정현의 오른쪽 발바닥 상태. 왼쪽 발바닥은 더 심하다. [사진 JTBC]

호주오픈 4강전 도중 메디컬 타임아웃을 불러 발바닥 치료를 받고 있는 정현. 오른쪽 사진은 정현의 오른쪽 발바닥 상태. 왼쪽 발바닥은 더 심하다. [사진 JTBC]

정현이 26일 호주 멜버른의 로드 레이버 아레나(센터 코트)에서 열린 호주오픈 테니스대회 남자단식 준결승전에서 로저 페더러(37·스위스·2위)에 기권패했다. 2세트 도중 심해진 발바닥 부상 탓이었다. 1세트를 1-6으로 내준 정현은 2세트 게임스코어 2-5로 뒤진 상황에서 경기를 포기했다. 정현은 2세트 1-4에서 메디컬 타임아웃을 불렀다. 정현은 테니스화 끈을 풀고 양말을 벗었다. 테이핑한 왼발 발바닥이 드러났다. 굳은살 위로 물집이 반복해 잡히던 자리는 여러 번 벗겨내 붉었다.

정현은 테이핑을 다시 하고 코트로 돌아갔다. 전열을 가다듬은 정현은 자신의 서브게임을 따며 분위기를 전환했다. 하지만 페더러의 각도 깊고 강한 서브는 속수무책이었다. 왼발마저 불편했던 정현은 내리 네 포인트를 뺏겼고, 게임스코어는 2-5로 벌어졌다. 결국 2세트 8번째 게임 30-30에서 정현은 주심에게 다가가 기권 의사를 밝혔다. 라켓 가방을 메고 떠나는 정현에게 1만5000여 관중은 기립박수를 보냈다. 이로써 정현의 메이저 최고 성적은 4강이 됐다. 물론 한국 테니스 사상 최고 기록이다.

정현 선수

정현 선수

정현은 경기 후 "경기 전 오른발은 이미 진통제를 맞은 상태였다. 더 이상 손을 쓸 수 있는 상황이 아니었다. 그래서 경기 중에는 왼발에만 메디컬 타임아웃을 요청했다"고 전했다. 테이핑을 벗긴 정현의 양발바닥은 처참했다. 일반인은 물론 운동선수들조차도 그의 발을 보고 걷는 것도 쉽지 않았을 것이라고 했다.

정현은 "안 좋은 몸 상태로 계속 뛰어 팬들에게 제대로 된 경기를 보여주지 못하는 게 더 안 좋은 일이라고 생각해 기권했다. 너무 아팠고 걸을 수조차 없었다. 준결승에 올라 행복했고 특히 페더러를 만나 영광이었다”고 말했다.

발바닥 부상을 안고 뛴 정현. 호주오픈 준결승전에서 메디컬 타임아웃을 요청하고 치료를 받고 있다. [사진 JTBC3 FOX Sports]

발바닥 부상을 안고 뛴 정현. 호주오픈 준결승전에서 메디컬 타임아웃을 요청하고 치료를 받고 있다. [사진 JTBC3 FOX Sports]

정현의 발바닥 상태가 악화된 건 노박 조코비치(31·세르비아·14위)와 만난22일 16강전이었다. 조코비치가 전후좌우 구석구석 공을 꽂아 넣었고, 정현은 발바닥에 불이 나도록 뛰어다녔다. 경기 시간 3시간21분. 손승리 코치는 “물집이 터져 굳은살이 박인 곳에 또 물집이 생기면서 피멍까지 들었다. 의사에게 치료를 받고 진통제까지 맞았지만 사실 뛰기 힘든 상태였다”고 전했다. 평소 아프다는 소리도 안 하던 정현마저 의사에게 통증을 호소했다.

주원홍 전 대한테니스협회장은 “정현이 그간 뛰었던 투어대회는 3세트 중 2세트를 따면 되는 대회였다. 5세트 중 3세트를 따야 이기는 메이저 대회를 6경기나 하면서 체력적으로 힘들어 했다”며 "이것도 경험이다. 이제 메이저 대회에서 어떻게 몸을 관리하면서 나서는 게 좋을지 배웠을 것이다"고 말했다.

26일(현지시간) 호주 멜버른에서 열린 호주오픈 테니스대회 남자단식 4강전에서 기권패한 정현(58위·오른쪽)이 로저 페더러(2위·스위스)의 승리를 축하하고 있다. [AP 연합뉴스]

26일(현지시간) 호주 멜버른에서 열린 호주오픈 테니스대회 남자단식 4강전에서 기권패한 정현(58위·오른쪽)이 로저 페더러(2위·스위스)의 승리를 축하하고 있다. [AP 연합뉴스]

2014년에 프로에 데뷔한 정현은 이번 대회 전까지는 지난해 프랑스오픈에서 32강전(3회전)까지 오른게 메이저 대회 최고 성적이었다. 이번 대회에서는 지난 16일부터 26일까지 단식 6경기, 복식 2경기를 더해 8경기를 뛰었다. 하루에 연습시간이 30분 정도 주어져 경기력을 끌어올리기 위해, 지난 17일과 19일에는 복식에도 참가했다. 그 노력으로 상위 랭커들을 꺾고 4강까지 올랐지만, 결국 아쉽게 코트를 떠날 수밖에 없었다.

페더러는 “기권승으로 결승에 올라 아쉽다. 정현의 몸 상태가 안 좋다는 걸 2세트 시작부터 느꼈다. 나도 부상을 안고 뛰어봐서 그 아픔을 잘 안다. 그래서 정현의 결정을 이해할 수 있다”고 말했다. 테니스는 몸에 경련이 일거나 플레이를 계속하는 것이 불가능 할 때는 깨끗이 기권하는 편이다. 상대 선수나 관중들이 이해해주는 문화가 있다. 앞서 세계 1위 라파엘 나달(32·스페인)도 8강전에서 허벅지 통증으로 경기 도중 기권했다.

박소영 기자 psy0914@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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