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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사설

정현의 꿈은 계속된다

중앙일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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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6면

아쉽지만 지금부터가 시작이다.

정현이 호주오픈 남자 단식 4강전에서 메이저 타이틀만 19개인 ‘테니스 황제’ 로저 페더러와 경기 도중 발바닥 부상으로 기권했다. 통증 탓에 전 세계 팬들이 기대했던 명승부는 펼치지 못했지만 정현은 이번 대회 내내 돌풍을 일으키며 국내뿐 아니라 세계 테니스계에 깊은 인상을 심어줬다.

남자프로테니스(ATP)는 2002년 2월 이후 지금까지 줄곧 라파엘 나달과 로저 페더러, 노박 조코비치, 앤디 머리 단 4명에게만 랭킹 1위 자리를 허락했다. 이런 와중에 세계 랭킹 58위에 불과한 22세 정현이 무려 16년을 지배해온 이들 4대 천왕 가운데 조코비치를 16강전에서 꺾고 준결승에서 페더러와 만나자 세계 테니스 팬들이 환호했다. 정현은 2010년 이후 메이저 대회 준결승에 오른 선수 가운데 세계랭킹이 가장 낮다. 나이 어린 무명의 선수, 그것도 테니스 불모지에 가까운 한국의 신예가 이번 대회에서 세계 최상위 선수를 잇따라 꺾는 모습은 비단 한국뿐 아니라 전 세계 팬들에게 희망과 용기를 주기에 충분했다.

사실 정현은 이미 19세에 세계 랭킹 51위에 오른 유망주였다. 그러나 불안한 서브와 약한 포핸드 탓에 점차 승리보다 패배가 더 많아졌고 100위권 밖으로 밀려났다. 급기야 2016년 4개월간 투어를 중단하자 “소리 소문 없이 사라지는 테니스 유망주 중 하나”라는 조롱까지 들었다. 포기할 수도 있었다. 그러나 그 대신 ‘지독한 연습벌레’라는 말을 들을 정도로 엄청난 땀을 흘린 끝에 서구인에 비해 불리한 체격 조건과 일찍 찾아온 슬럼프를 극복할 수 있었다. 코트 위에서 흔들리지 않는 강한 정신력과 코트 밖에서의 당당하고 여유 넘치는 태도 역시 타고났다기보다 좌절을 딛고 노력한 결과다. 2018 호주오픈 도전은 일단 4강에서 멈췄지만 정현의 꿈은 계속된다. 한국 테니스의 역사를 써 가는 그를 응원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