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준별 이동수업' 현장을 가보니 …

서울 성수중학교 3학년 학생들이 15일 수준별 영어 수업을 받기 위해 다른 교실로 이동하고 있다. 김태성 기자

'참조:교장…교육부가 강제하는 '우열반 편성 이동수업을 반대하며, 조합원들은 반대 서명을 해 서울시교육청에 팩스로 보냅시다'.

서울 남부 지역의 E고 교장 A씨는 최근 전교조 지부가 보낸 공문을 보여줬다. A교장은 "우리 학교 교사의 전교조 가입비율이 50%가 넘는데 수준별 교육이 되겠느냐"며 답답해 했다. 이 학교는 지난해 2학기 고1 학생을 대상으로 영어 수업만 수준별 이동수업을 했다. 그나마 영어과목 중에서도 듣기평가(한 달에 한 차례)만 '상.하반'을 나눠 이동수업을 한 것이다. 수학은 아예 엄두도 못 냈다. 주변 S고는 수준별 이동수업을 5월 중간고사 이후로 미뤘다. 이 학교 관계자는 "교육부나 시교육청이 생각하고 있는 것보다 교사들의 반대가 심하다"고 말했다.

교육인적자원부가 올해부터 전국 중.고교의 절반 이상(53%)으로 확대 실시하려던 수준별 이동수업이 학교 현장에서 교사들의 극심한 반발에 부닥쳤다. 또 학력 평가 결과를 바탕으로 수준별 분반을 하는 과정에서 학생과 학부모의 반발도 일어나고 있다. 수준별 이동수업은 학생을 학력수준에 따라 상.중.하로 구분해 영어.수학 수업을 진행하는 것이다.

◆ 전교조의 반대 서명=지난주 대부분 중.고교 교무실에는 전교조가 보낸 수준별 이동수업 반대 서명 용지가 도착했다. 서명 용지 외에 '성적으로 등급을 매겨 수업과 생활을 따로 하게 하는 것은 가축에게나 하는 짓'이란 인쇄물도 학교에서 눈에 띄었다. 서울 Y고의 한 교사는 "수준별 교육이 필요하다는 생각은 들지만 반대 서명했다"고 말했다. 추가 업무부담 때문에 이동수업을 반대하는 교사도 적지 않다. 이동수업을 하려면 학생 수준에 맞게 교재를 개발하고, 수업지도안을 만들어야 하기 때문이다. K고 교장은 "교사들에게 한번 해보자고 달래는 게 요즘 가장 큰 일"이라고 말했다.

◆ "우리 아이가 왜 열반◆ "=서울 Y고는 학부모의 반발 때문에 영어.수학 과목의 수준별 이동수업을 2학기로 미뤘다. 지난해 중간.기말 고사에서 하급반 학생이 접하지 않은 '심화형'문제가 출제됐다. 자녀가 하급반인 학부모들은 내신에서 불이익을 받았다는 항의가 올해까지 이어지고 있다. 이 학교 박모 교사는 "배운 것이 다른데, 출제는 같이 하려니 어렵다. 문제를 상급 수준에 맞추면 하급반이 내신에 직격타를 맞는다며 불만이고, 문제를 하급 수준에 맞추면 상급 학생들이 변별력이 없다고 불평한다"고 말했다.

S중은 최근 분반을 위해 실시한 진단평가 때문에 학부모들의 항의를 받았다. 평가에서 100점을 받은 학생이 23명, 95점이 10명 나왔는데 95점 받은 학생 중 일부를 상.중.하 학급 가운데 중반에 넣었기 때문이다. 학교 측은 "'상.중.하'학급이 아니라 '상.상.중' 학급"이라고 해명하는 소동을 빚었다.

◆ 학부모들의 부담=강남 D중 등 상당수 학교가 학부모들의 반발을 의식해 학생들의 수준을 '상.중.하' 세 단계에서 '상.중' 등 두 단계로 나눠 이동수업을 하고 있다. 강남 D중의 설모군은 "공부를 열심히 하려다가도 반을 이동하면 오히려 의욕이 사라진다"고 힘들어했다. 상급반에 들어가려는 학생뿐 아니라 학부모들도 사교육을 통해 안간힘을 쓰고 있었다.

J여고 김모(고1)양의 어머니(51)는 "학교의 수준별 수업을 따라가기 위해 개인적으로 과외를 받는 경우까지 있다"고 불만을 털어놨다. 교육부와 각 시.도 교육청은 반을 나눌 때 성적뿐 아니라 학생의 희망을 반영할 것을 학교 측에 권고하고 있다.

강홍준.이원진 기자<kanghj@joongang.co.kr>
사진=김태성 기자 <tskim@joongang.co.kr>

◆ 수준별 이동수업=1974년 평준화 체제 이후 학력 격차가 큰 학생들이 한 학급에서 수업을 하게 됐다. 학생들의 격차는 수업효율을 떨어뜨렸다. 교육부는 2004년부터 '평준화 보완책'으로 영어와 수학 두 과목에 한해 학생을 수준별로 나눠 수업하는 방안을 도입했다. 학기 초 진단평가나 중간고사 등의 성적을 가지고 상.중.하로 학급을 나눠 이동하고 다른 시간엔 자기 반으로 되돌아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