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C 1세기에 이미 「국가」 형성"|「의창 다호 고분」 발굴 (삼성 문화 재단 지원)이 뜻하는 것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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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8면

경남 의창군 동면 다호리 고분은 그 발굴 결과 국내 최고의 칠기와 완전한 형태의 각종 철제 농기구·철제 무기, 그리고 국내에서 가장 오래되고 완전한 형태의 목관들이 쏟아져 나옴으로써 고고 학계에 중요한 성과를 안겨주었다.
삼한 시대 (원삼국)의 왕릉으로 추정되는 다호리 고분 발굴은 우선 우리 「고대 국가 성립의 시기」를 결정적으로 앞당기는 유물을 제공하고 있다.
정교한 형태로 만들어진 칠기와 각종 철제 농기구가 그것이다. 또 원형과 방형의 칠기는 고도의 칠기 기술이 있었음을 보여주고 있고 쇠괭이·쇠자귀 등 농기구는 이 지역에 농경 문화가 정착되고 있었음을 확인시키고 있다.
이같은 사실은 부의 축척에 따른 지배 계급의 형성이 있었으며 칠기 등의 수준으로 보아 전문적인 장인이 존재한 국가 형태를 갖추었다고 보여진다.
다호리 발굴에는 삼성 문화 재단이 발굴 비를 지원, 재벌의 최초 고고학 발굴 지원 선례를 남겼다.
한병삼 국립 중앙 박물 관장은 『지금까지 BC1세기는 삼한 시대 혹은 원 삼국 시대로 구분되어 「부족 집단」이 군집해 있었다고 학계에서 생각해 왔는데 이번의 발굴로 그 시기 의창 지방에는 이미 국가 형태가 갖추어졌음을 알 수 있다』 면서 『우리 고대 국가 형성사의 시기를 앞당기는 역사 편년의 변화를 가져올 결정적 자료를 갖게 되었다』고 발굴의 의의를 강조했다.
칠기에 나타난 문화 수준도 높은 것이었다. 방형의 칠기 고배는 그 모양이 뛰어났고 그것이 일상생활의 주된 용기로 쓰였을 때 생활 문화의 수준이 높았다고 보아야한다.
특히 칠기에서 그만한 장인을 낳을 만큼 기술적으로 분화된 사회였다면 국가 형태를 갖추기에 무리가 없을 것으로 발굴단은 보고 있다.
목관의 발굴은 당시의 장제를 알 수 있게 하고 있다. 목관은 지름 75cm, 길이 2백31cm의 참나무로 된 원형 통나무를 반으로 쪼갠 후 내부를 구유처럼 파내어 각각 관과 뚜껑으로 사용했다. 목관의 주위에 각종 칠기가 배치되었으며 관의 아랫부분에는 큰 대나무로 만든 바구니를 놓고 그 속에 청동 거울·청동 검 등을 가득 담아놓았다.
현재까지 조사된 목관 묘에서는 적은 양의 유물만 출토되었으며 무덤구조의 실체인 목관은 형태가 완전 부식되어 파악하기 어려웠다. 이번 조사결과 이 목관은 한반도에서 발견된 가장 오래된 것이며 목관 묘의 실체를 알려주고 있다.
다호리 고분에서 목관 묘의 실체가 확인된 것은 이 묘가 습지에 있어 묘의 내부 유물이 물 속에 잠겨 그대로 남아 있었기 때문에 가능했다.
다량의 청동 유물과 철제 유물이 함께 반출된 출토 상황은 이 지역에서 청동과 철기의 두 금속 도구가 동시에 쓰이면서 본격적인 철기 사용 시기로 넘어가는 양태를 보여주고 있다. 이는 과도기적 현상으로 고고학의 편년 작업에 중요한 자료를 제공한다.
이 무덤의 출토품 중에서 전한 대의 동전인 오수전과 청동거울인 성운경이 나옴으로써 이 무덤이 BC1세기의 것임을 확인시켜 주고 있다. <임재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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