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처럼 동물적인 욕망을 공공연히 주고받는 이 그룹은 표면상 제법 의식 있는 지식인을 자처하는 인간들이다. 자연히 이런 외연과 물밑의 욕망 사이에서 가식과 내숭이 교차하면서 보는 이들이 킥킥거릴 만한 상황이 벌어진다. 어디선가 들어본 듯 한 얘기라고? 어쩔 수 없다. 신인 이하 감독의 데뷔작 '여교수의 은밀한 매력'(16일 개봉)은 흡사 홍상수 감독의 냉소적 유머감각을 이어받은 듯한 영화다.
주인공 은숙(문소리)은 지방대학의 염색과 교수이자, 지역 환경단체의 열성회원이다. 환경문제에 대한 관심을 계기로 빈번히 그 주변을 맴도는 방송사PD.교수.교사 같은 남자들은 새로 은숙에게 구애를 펼치거나, 이미 관계를 맺었거나, 왜 나만 기회를 안 주느냐고 징징대는 중이다. 여기에 만화가 출신으로 새로 교수가 된 석규(지진희)가 가세하면서 은숙의 치명적인 매력의 역사가 드러난다. 우아하고 도도한 교수를 자처하는 은숙은 중학생 시절 속된 말로 '발랑 까진'날라리였다. 은숙을 탐내는 어린 남학생들의 신경전은 당시 우발적인 비극을 한차례 불러온 터다.
영화는 독특한 기법으로 인물의 과거와 내면을 냉소적인 거리를 두고 묘사한다. 영화 속 인물들은 곧잘 스크린을 정면으로 바라보며 대사를 읊조리고, 카메라는 여간해서는 초점을 옮기지 않은 채 여러 인물을 평면적인 느낌이 나도록 화면 안에 담는다. 은숙은 극중에서 전라에 가까운 노출을 빈번히 보여주는데, 이런 장면 역시 그 노출의 강도에도 불구하고 여간해서는 관객에게 욕정을 불러일으키지 않는 방식으로 그려진다.
은숙을 둘러싼 우스꽝스러운 소동극처럼 보이던 영화는 또 한차례 치명적인 사건을 고비로 파국으로 치닫는다. 사건 직후 석규와 마주한 은숙이 가식을 집어치우고 상소리를 내뱉다가 곧바로 어처구니없는 자작시를 낭송하는 장면은 이 영화가 보여주는 유머의 절정이다.
이처럼 영화의 의도가 뚜렷하게 표현되는 장점에도 불구하고 일방적인 호평을 보내기는 망설여진다. 그 쌉싸름한 웃음의 맛은 상업영화시장에서 흔치 않은 미덕이지만, 이미 6편의 홍상수 영화를 접한 관객들에게 기시감 이상의 기대감까지 만족시켜 줄지는 의문이다. 다만 '바른생활 사나이'지진희가 느물거리는 비딱한 인물을 썩 잘 그려낸 점은 이 영화의 확실한 수확이다.
이후남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