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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분수대

한목소리 방송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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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1면

고정애 기자 중앙일보
고정애 중앙SUNDAY 정치에디터

고정애 중앙SUNDAY 정치에디터

1987년 영국 BBC방송의 시트콤 ‘Yes, Prime Minster’ 중 한 장면이다.

“데일리 미러(노동계급 대상)는 나라를 운영한다고 생각하는 이들이 읽고, 가디언(진보 성향)은 운영해야 한다는 이들이 읽지. 더 타임스(보수)는 실제로 운영하는 사람들이 보고, 데일리 메일(보수 대중지)은 그 부인들이, 파이낸셜타임스(경제지)는 나라를 소유한 사람들이 읽지. 모닝스타(좌파)는 다른 나라에 의해 이 나라가 운영돼야 한다는 사람들이 읽는 데 비해 데일리 텔레그래프(보수) 독자는 그러고 있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야.”

내각 차관이 “언론은 독자들의 편견에 영합한다는 걸 이해해야 한다”고 하자 총리가 한 답변이다. 그러자 “더 선(대중지)은 누가 읽지?”란 질문에 비서가 불쑥 말했다. “누가 운영하든 개의치 않는 사람들이요. 여성의 가슴이 크기만 하다면 말이죠.” 더 선의 3면에 여성의 상반신 누드 사진이 실렸던 걸 꼬집은 게다.

30년 전 풍자지만 지금도 인용될 정도로 현실과 부합하는 면이 있다. 하지만 당시와 다른 게 있는데 루퍼트 머독의 존재다. 더 선 소유주인 그는 81년 마거릿 대처와의 비밀 회동을 계기로 권력자가 됐다.

대처의 참모였다가 쫓겨난 이가 쓴 소설 『하우스 오브 카드』엔 머독형 인물(벤저민 랜들리스)이 신임 총리에게 버림받고 쏟아낸 독설이 있다. “(총리가 됐다고) 뚱뚱한 자본주의자를 희생양으로 삼으면 퍽 좋겠지. 내 경고하지. 수단과 방법을 안 가리고 매 순간 네놈과 맞서 싸울 것이다.”

현실은 정반대였다. 총리는 오고 가도 머독은 건재했다. 테리사 메이 현 총리도 총리관저의 주인이 되곤 석 달 만에 머독을 만났다. 심지어 머독의 반유럽연합(EU) 감정 때문에 브렉시트(영국의 EU 탈퇴)가 일어났다는 얘기가 나올 정도다.

그런 머독이 한 방 먹었다. 영국의 공정경쟁 당국(CMA)이 최근 머독이 소유한 미국 법인 21세기폭스가 영국의 방송인 스카이 지분 61%를 인수해 100% 자회사로 두는 데 반대한 것이다. “스카이에 대한 21세기폭스의 완전 지배는 미디어 다양성 우려 때문에 공익에 맞지 않다”고 발표했다. 민주주의를 위해 다양한 목소리를 낼 수 있는 미디어 환경이 돼야 한다는 의미다. 당연할 수도 있는 결정이 박수받는 걸 보면 머독이 세긴 센 모양이다.

우린 요새 어디로 채널을 돌리든 비슷한 얘기를 한다. 거의 한목소리다. 정권 출범 초기에 반복되는 코드 인사와 ‘물갈이’ 여파일 터다. 덜해질 것이라고, 나아질 것이라고 기대했는데 순진했다.

고정애 중앙SUNDAY 정치에디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