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만 앞세우는 보사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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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2면

식품범죄 만큼 반사회적이고 반인간적인 범죄도 드물다. 부정식품으로 인한 직접적인 피해자가 불특정다수의 국민 일뿐 아니라 경우에 따라서는 인체에 치명적인 해독을 끼치기 때문이다.
요즘의 세태가 아무리 금전 만능주의에 물들여져 있고, 목적을 위해서는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 세상이라 하더라도 자기가 만든 식품이 선량한 고객을, 그것도 존엄한 인간 생명까지 해치는 범죄는 양심과 인륜에도 반하는 최악의 범죄행위다. 다른 범죄는 수법이 아무리 지능적이고 잔인성을 띠었다고 해도 피해자가 극소수에 한정되어 있다.
그러나 식품이나 의약품 등은 전국민이 이용자이고 제조와 가공과정에서 인체에 위 해를 주는 첨가물을 넣거나 엉터리로 만들면 국민보건은 물론 우수한 식품과 의약품에 대한 신뢰마저 떨어뜨리게 된다. 소비자가 국산품을 외면하고 외제만 선호하고 의존하는 경향이 짙어진다면 개방화 시대에 국익의 손실도 이만저만이 아닐 것이다.
지난번 유해 콩나물이 적발되자 제대로 키운 콩나물도 팔리지 않아 콩나물을 트럭으로 실어다 내다 버린 사태가 벌어졌었다.
보사부는 부정식품이 최근 부쩍 쏟아져 나오자 근절대책을 마련, 원료구입에서 유통과정에 이르기까지 단속을 강화할 모양이다.
또 현행 최고 무기형에 처하도록 되어 있는 보건범죄에 관한 특별조치 법을 손질해 사형까지 처할 수 있도록 법개정을 법무부에 요청한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이번 단속이 어느 만큼 효과를 거두고 법개정으로 식품·보건범죄가 얼마가 줄어들지 알 수 없으나 구태의연한 단속과 법개정만으로는 소기의 목적은 거둘 수 없을 것이다.
정부는 부정식품이 검찰에 의해 적발되거나 매스컴에서 떠들썩할 때마다「근절」과「뿌리 뽑겠다」를 되풀이 해 왔다. 처음엔 서슬이 퍼렇게 덤비는 것처럼 보이다 얼마쯤 지나면 흐지부지 되어 왔다.
지난번 유해 콩나물 적발도 식품위생 행정의 주무부서인 보사부가 한 게 아니고 검찰의 수사였다는 것만 봐도 그동안 보사부의 단속이 어떠했는가를 익히 알 수 있다.
보사부는 이번 단속에서 전국 시-도의 15개 반 등 모두 80명의 감시원을 동원하겠다고 밝히고 있으나 단속이 성공하자면 경찰까지 동원시켜야 한다. 관내 사정, 다시 말해 무허가 업소가 어디에 얼마가 있는지는 경찰이 가장 잘 파악하고 있다.
경찰이 일반 범죄 말고도 식품범죄에 관심을 갖고 근절하기로 마음만 먹는다면 식품범죄는 한결 줄일 수 있다. 손발도 없는 검찰이 식품범죄를 적발하는데 보사부가 모르고 있었다는 것도 우습거니와 더구나 전국 곳곳에 상주하는 10여만 경찰이 손놓고 있었다는 것은 더욱 이해할 수 없다.
현행 보건범죄 단속법은 식품위생법 상 3년 이하의 징역으로 처벌할 수 있는 벌칙을 무기까지 가중처벌 케 하는 특별법이다. 69년에 제정된 이 특별법이 그동안 식품범죄 근절에 얼마나 기여했는지 알 수 없으나 사형으로 형량을 높인다고 해서 큰 효과를 기대할 수 없다.
문제는 효과적이고 지속적인 단속과 지도에 달려 있고 정책의 개발이 긴요하다.
우리나라 전체 식품 제조업체의 95%가 영세 가내 제조업체고 5%만이 대기업이라는 현실에서는 전반적인 식품 품질의 향상은 기대하기 어렵다. 영세업체의 기술지원과 시설투자 등 정책적 뒷받침이 강구되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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