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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별별 마켓 랭킹] 차 색깔 줄곧 선두였던 회색, 2013년 흰색에 역전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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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06면

‘이렇게 초록 바닷속을 달리는 빨간 자동차를 타고….’(자우림 ‘매직 카펫 라이드’의 노랫말) 대중가요 노랫말엔 유독 빨간 자동차가 많이 등장한다. 일상에서 탈출하고픈 욕망을 ‘빨간 자동차’로 표현한 것이다. 하지만 현대자동차가 지난해 국내에서 판매한 자동차 중 빨간색 자동차 비중은 1%에 불과하다. 자동차 색상으로 개성을 표현하는 사람은 많지 않아 보이지만, 좀 더 자세히 살펴보면 무채색 사이에서의 치열한 주도권 싸움을 확인할 수 있다.

스마트폰과 ‘색깔 맞춤’ 영향인 듯 #흰색 > 은·회색 > 검정, 86%가 무채색 #금융위기 때 핑크·금색 등 반짝 3위

중앙일보가 2010년부터 8년간 현대자동차가 국내에서 판매한 차량의 색상별 비중을 조사한 결과, 총 513만1457대 중 85.7%가 흰색과 회색·검은색 등 무채색 계통인 것으로 나타났다.

[그래픽=차준홍 기자 cha.junhong@joongang.co.kr]

[그래픽=차준홍 기자 cha.junhong@joongang.co.kr]

자동차 색상은 19세기 말 자동차가 처음 등장한 시기부터 지금까지 전 세계적으로 무채색 비중이 가장 컸다.

성기혁 경복대 미대 교수는 “자본주의 태동기의 청교도적 신념이 부의 상징인 자동차의 색깔에 적용됐다”고 설명했다.

하지만 최근 들어 무채색 가운데서도 미묘한 변화가 감지된다. 2010년부터 2012년까지 가장 많은 비중을 차지했던 회색(은색 포함) 차량이 2013년 이후부터는 흰색으로 역전된다. 흰색은 2013년부터 최근까지 5년 연속 1위를 기록 중이다. 지난해 판매된 현대차 100대 중 38대(38.0%)가 흰색이었다.

자동차 업계에선 도시화의 상징이던 ‘회색’이 흰색으로 역전된 이유는 2010년 이후 급속도로 보편화한 스마트폰의 영향이 컸다고 보고 있다. 시중에 흰색 계통 스마트폰이 퍼지다 보니 차량도 스마트폰과 같은 색상으로 ‘색깔 맞춤’하는 이들이 많아졌다는 것이다. 최신 차들은 스마트폰과 블루투스로 연결해 전화 통화, 음악 감상 등의 기능을 쓸 수 있다. 차량과 통신기기가 무선으로 연결되는 동시에 색상까지 비슷하게 맞춰지는 현상이 보편화하고 있다.

권기일 현대자동차 연구원은 “아이폰이 확산하면서 미니멀리즘(단순함·간결함을 강조하는 미적 흐름)이 세계적으로 강조되고 있고, 친환경 이슈가 부각되면서 흰색 계열 색상이 인기를 끌게 됐다”고 설명했다.

그렇다고 회색 계열이 완전히 밀려난 건 아니다. 지난해 현대차가 판매한 회색 계열 차량 비중은 32.7%로 2위를 차지했다. 회색은 흰색이나 검은색보다 햇빛을 받았을 때의 명암이 뚜렷하다. 같은 회색이라도 흰색 바탕 위에선 어둡게 보이고 검은색 바탕 위에선 밝게 보이는 이른바 ‘명도 대비’가 일어나는 것이다. 유선형 디자인이 강조되는 최신 차량에 회색을 입히면 반사되는 빛에 따라 울퉁불퉁한 근육질 볼륨감을 살리는 데 탁월하다.

3위는 검은색으로 7년 연속 17~18%를 꾸준히 유지하고 있다. 지난해에도 100대 중 17대(17.4%)가량이 팔렸다. 보수적인 색상을 선호하는 ‘콘크리트 지지층’이 변함없는 애정을 보이는 셈이다.

핑크·카키색·금색·쑥색 등 독특한 색상의 차들이 금융위기 직후인 2010년에는 15.3%나 차지해 3위를 기록했지만, 갈수록 비중이 줄어 지난해에는 0.4%로 떨어졌다.

권 연구원은 “사회적 위기가 오면 침울한 분위기를 바꿔보려는 인간의 욕망에 따라 패션 트랜드도 화려한 색상이 유행하는 경향이 있다”며 “금융위기 당시 알록달록한 차량이 유행한 것도 이와 비슷한 현상”이라고 설명했다.

김도년 기자 kim.donyu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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