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VERTISEMENT

[소년중앙] SF 속 진짜 과학 24. 디 원(The One)과 평행 세계

중앙일보

입력

일러스트=임수연

일러스트=임수연



24. 디 원(The One)과 평행 세계

이야기는 한 감옥 안에서 시작합니다. 중죄인이 호송되던 중 누군가에 의해 살해되죠. 그런데 그 범인은 방금 살해된 죄수와 똑같은 사람입니다.

상황은 바뀌어 이번에도 다시 감옥이 나오지만, 처음에 죽은 죄수, 그리고 그를 살해한 범인과 똑같이 생긴 경찰이 죄수들을 호송하는 상황이 펼쳐지죠. 그리고 다시금 그 경찰을 죽이려는 자가 나타납니다. 놀랍게도 경찰과 똑같은 사람입니다. 그리고 주인공과 그자와의 사투가 벌어지죠. 얼굴만 똑같은 게 아니라 이름마저도 같은 두 사람의 싸움이 시작된 겁니다.

내가 나와 같은 사람을 죽이고 또 나와 같은 사람과 싸우고... 대체 어떻게 된 것일까요?영화 '디 원'(The One)에는 총 125개의 세계가 있으며, 각 세계에는 또 다른 '나'가 있습니다. 그리고 각 세계에서 '나'를 죽이면, 그 세계의 '나'가 갖고 있던 힘이 나머지 세계의 '나'에게 들어갑니다. 그만큼 나는 강해지고, 만약 나 자신을 제외한 다른 세계의 '나'를 모두 죽이면, 나는 무적의 존재가 되는 것이죠. 그래서 영화 속 악당인 '나'는 또 다른 세계의 '나'를 모두 해치고 있는 겁니다.

또 다른 세계의 '나'를 죽이면, 내 힘이 강해진다는 것은 어디까지나 영화 속 설정이지만, 이처럼 우리 세계와 다른 세계는 존재할 수 있습니다. 한없이 비슷하지만 다른 세계, 이를 '평행 세계'(Parallel World)라고 부르죠. '평행 세계'는 본래 시간 여행에서 생겨나는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등장했습니다. 과거로 가서 아버지와 어머니가 결혼하는 것을 방해하면 나는 태어날 수 없습니다. 아니 결혼을 하더라도 조금 늦거나 빠르거나 하는 차이로 '나'는 태어나지 못하겠죠.그렇다면 아버지와 어머니의 결혼을 방해한 것은 대체 누구일까요? 어떻게 태어나지도 않은 '내'가 부모의 결혼을 방해할 수 있을까요?

이처럼 시간 여행으로 인해 모순(타임 패러독스)이 생겨나지만, 평행 세계가 존재하면 문제는 없습니다.내가 과거로 날아가서 역사를 바꾸는 건 내 운명에 영향을 주지 않거든요. 역사가 바뀐 것은 또 다른 세계이지, 내 세계가 아니니까요. 이처럼 평행 세계를 자유롭게 넘나들면, 나는 원하는 세계로 향해 원하는 삶을 살 수 있습니다. 로또에 맞은 세계, 대통령이 된 세계, 세계 평화를 수호하는 영웅이 된 세계... 물론 지금보다 나쁜 미래도 존재할 수 있겠죠.가령 핵전쟁으로 인류가 멸망했다거나 말이죠. 그런데 이러한 평행 세계는 정말로 존재하는 걸까요?

물리학자에 따르면, 우주가 생성되면서 하나가 아닌 다양한 우주가 생성됐을 가능성이 있다고 합니다. 처음에는 양자 역학이라는 분야에서 관측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 도입한 가설이었지만, 실제로 평행 우주가 존재할 가능성은 얼마든지 있다는 것이죠. 어떤 사람은 우리가 뭔가를 선택할 때마다 새로운 평행 우주가 만들어지면서 이 세상에는 무수한 우주가 존재한다고도 합니다.

'디 원'은 그 같은 상상력을 통해서 만들어진 이야기입니다. 평행 세계가 존재하고, 거기에 다양한 '나'가 있다면 어떨까라는 생각이죠.한 가지 아쉬운 것은, 평행 세계가 존재한다고 해도 우리가 그 세계로 갈 수는 없다고 합니다. 한 세계와 다른 세계는 서로 연결돼 있을 수도 있지만, 그 틈은 너무도 작아서 사람들이 이동할 순 없다는 거죠. 하지만 그래서는 이야기가 되지 않기 때문에, SF 작품에서는 여러 가지 방법으로 평행 세계를 이동할 수 있도록 고안하고 있습니다. 가령 인간을 전자 신호로 바꾸어서 전송하는, 순간 이동 시스템 같은 것을 이용하는 겁니다.

과학자들은 어렵다고 했지만, 언젠가 먼 훗날 수많은 평행 세계가 서로 연결돼 자유롭게 돌아다닐 수 있는 시대가 펼쳐질지도 모릅니다. 또 다른 나를 만나서 서로 숙제를 도와주거나, 같이 게임을 할지도 모릅니다. 수많은 세계의 내가 한자리에 모여서 사진을 찍는다면 정말 신기한 장면이 연출되겠죠.

평행 세계를 이동할 수 없다고 해도 상관없습니다. 또 다른 세계가 있다는 사실 하나만으로도 이 세상은 무수한 가능성으로 가득 차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으니까요. 또 다른 세계에 지금보다 나은 내가 있다는 사실은(못한 나일 수도 있습니다만) 때로는 위안이 되기도 하죠. 어쨌든 우주에는 무수한 세계가 있고, 그 세계에는 제각기 많은 가능성이 있습니다. 그리고 그 가능성을 잡는 것은 모두 '나의 선택'인 것이죠. 그것이 평행 세계를 통해 얻을 수 있는 소중한 가치가 아닐까요?

글=전홍식 SF&판타지도서관장

* 외부 필진 칼럼은 본지 편집 방향과 다를 수 있습니다.

로우틴을 위한 신문 '소년중앙 weekly'
구독신청 02-2108-3441
소년중앙 PDF 보기 goo.gl/I2HLMq
온라인 소년중앙 sojoong.joins.com
소년중앙 유튜브 채널 goo.gl/wIQcM4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