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VERTISEMENT
오피니언 글로벌 아이

“길을 바꿔라” … 중국의 환도 전략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지면보기

종합 26면

예영준 기자 중앙일보
예영준 베이징 총국장

예영준 베이징 총국장

얼마 전까지 중국인들은 ‘만도초차(彎道超車)’를 논했다. 자동차 경주에서 커브(彎道)를 돌 때 순위가 확 바뀌듯 세계 경제와 기술이 전환기에 선 지금이야말로 중국이 선진국을 추월(超車)할 절호의 기회란 뜻에서다.

지금은 ‘환도초차(換道超車)’란 신조어가 대세다. “커브길에서의 추월은 매우 힘들다. 열 번 시도하면 아홉 번은 넘어진다. 남이 앞서간 길을 따라갈 게 아니라 길을 바꿔(換道) 달려야 한다”고 말한 이는 마윈(馬雲) 알리바바 회장이다.

중국은 ‘무현금 사회’의 실현에 가장 근접한 나라다. 대도시 주민, 특히 젊은층은 일상생활에서 지갑을 꺼내는 일이 매우 드물다. 대신 휴대전화 앱으로 돈을 받는 쪽의 QR코드만 스캔하면 끝이다. 얼마 전 점심시간에 베이징 도심의 서점 계산대에서 현금을 건넸더니 점원은 “오늘 현금 손님은 처음”이라고 했다. 건망증 심한 필자는 지갑을 집에 놓고 나와도 당황하지 않는다. 대신 휴대전화 충전량을 수시로 확인하는 버릇이 생겼다. 중국에서 모바일 결제가 성공한 건 신용카드가 일상화된 선진국들과 ‘다른 길’을 달린 결과다.

지금 이 순간 중국이 갈아타려는 새 길은 뭘까. 그건 바로 인터넷과 전통산업의 결합을 의미하는 ‘인터넷 플러스’다. 필연적으로 빅데이터와 인공지능(AI)으로 연결된다. 빅데이터야말로 중국의 강점이다. 8억의 인터넷 유저가 쏟아내는 데이터 축적량은 타의 추종을 불허한다.

저장(浙江)대 부속병원의 인공지능 ‘닥터알파’는 직장암 자기공명영상(MRI) 1만여 장을 학습한 결과 월등히 뛰어난 영상 판독 능력을 터득했다. 새 환자의 MRI를 제시하면 정확하게 종양의 위치를 찾아내고 악성 여부를 판별한다. 최근 닥터알파와 실제 의료진이 MRI 판독 ‘배틀’을 벌였다. 결과는 압도적인 닥터알파의 승리였다. 300장의 MRI 영상에서 직장암 부위를 찾아내는 데 걸린 시간은 불과 23초, 정확도는 95.22%에 이르렀다.

2015년 중국이 인터넷 플러스를 국가 전략으로 꺼내 들었을 때 이를 귀담아듣는 사람은 거의 없었다. 지금 그랬다간 큰코다친다. 글로벌 IT기업들의 경연장이던 국제전자제품박람회(CES)가 올해는 중국전자쇼(China Electronics Show)나 마찬가지였다고 한다.

문재인 대통령이 지난달 국빈 방중 때 서민 식당에서 요기를 하고 모바일로 결제했다. “13억의 마음을 샀다”고 자화자찬한 청와대 참모들이 중국의 혁신에 대해 얘기한 건 들어보지 못했다. 정작 봐야 할 건 못 본 셈이다. 한국을 일본과 중국 사이에 끼인 샌드위치라 비유하던 때가 그리 오랜 일이 아니다. 우리 뒤에 있던 줄 알았던 중국은 어느새 새 길을 달려 우리를 멀찌감치 앞서가고 있다.

예영준 베이징 총국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