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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양성희의 시시각각

한국판 '미투'가 다시 벌어진다면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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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6면

양성희 기자 중앙일보 칼럼니스트
양성희 논설위원

양성희 논설위원

페미니즘 역사에서 2017년 말~2018년은 주요한 순간으로 기록될 것이다. 지난해 10월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에서 시작된 성폭력 피해 고발 ‘미투 캠페인’ 때문이다. 30년간 은폐된 할리우드 유명 제작자 하비 와인스타인의 성추문이 계기였다. 애슐리 저드, 앤젤리나 졸리, 귀네스 팰트로, 우마 서먼 같은 톱스타들이 피해자로 앞장섰다. 묻히기 쉬운 ‘유명인 가해자’에 ‘무명 피해자’ 조합이 아니라 ‘유명인 피해자’의 고발이라 파장이 컸다. 사태는 영화계를 넘어 스포츠, 정치, 정보통신(IT) 업계 등으로 확대됐고 거물 남성들이 낙마했다. 이달 초 골든글로브 시상식에서 배우들은 검은 의상을 입고 미투 캠페인을 지지했다.

페미니즘 운동 역사 바꾼 미투 캠페인 #남성혐오 아닌 인권운동으로 진화하길

일각에서는 과열을 우려한다. 가해자로 지목된 일부 남성의 반발에 최근에는 여성들도 가세했다. 프랑스 배우 카트린 드뇌브는 “남성에게 유혹할 자유를 허하라”고 했고, 브리지트 바르도는 “여성 영화인들의 미투 캠페인은 위선”이라고 발언 수위를 높였다. 드뇌브는 자신의 발언이 큰 반발을 낳자 사과하면서 “나도 페미니스트다. 낙태를 찬성한다”고 말했다. ‘시녀이야기’로 유명한 캐나다 페미니즘 작가 마거릿 애트우드도 도마에 올랐다. 법 절차보다 여론재판이 앞서는 것에 대해 “법이 문화적으로 공고화된 린치 습관으로 변할 수 있다”고 했다가 “나쁜 페미니스트”란 비판을 받았다.

이 같은 엇갈린 시선은 문화와 세대에 따라 같은 여성들 사이에도 페미니즘에 대한 이해가 다르다는 것을 보여준다. 가령 드뇌브가 말한 ‘유혹할 자유’란 1960~70년대 페미니즘이 추구했던 ‘성개방=성해방’ 담론을 떠올리게 한다. 드뇌브와 바르도는 마녀사냥을 경고했지만 그 사례를 적시하지 못했다. 또 성공한 여배우인 자신들만의 경험으로 미투 피해자의 경험을 일반화했다는 지적도 면키 어렵다. 그러나 최근의 페미니즘이 그저 여성만이 아니라 양성을 넘어 소수자의 ‘인권운동’으로 확대되고 있는 점을 감안하면 극단적 마녀사냥에 대한 경계는 항상 옳다. 드뇌브가 집중포화를 맞고 있을 때 프랑스 작가 아그네스 포리에는 “다수가 옳다는 기준을 강요하고 이에 줄 서지 않는 사람들을 비난하는 요즘 페미니즘을 인정하지 않는다. 남성 권력에 대항하는 운동이 아닌 남성 혐오에 기반을 두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미투와 그에 대한 반격은 얼핏 페미니즘의 위기처럼 보이지만 페미니즘의 진화 혹은 제자리 찾기 차원에서 바라봐야 하는 것은 아닐까. 이번 미투 캠페인에서 인상적인 장면 중 하나는 가해자로 지목된 배우 제임스 프랑코가 의혹들을 정면으로 반박하자 애슐리 저드가 그를 적극 지지해 준 대목이다(저드는 하비 와인스타인 성폭행 피해자다). 저드는 BBC와의 인터뷰에서 “미투 캠페인은 남성과 여성 모두 직장, 가정, 사교 공간에서 보다 공정한 지위를 누리는 상태를 지향한다. 집단적 변화를 일으키는 움직임에는 개인의 책임감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사실 한국은 미투 캠페인의 원조다. 2016년 국내 소셜미디어에서도 ‘해시태그 문화계 성폭력’ 고발 릴레이가 있었지만 ‘무명 피해자’라는 한계가 있었다. 충무로라고 할리우드와 크게 다르지 않을 텐데, 우리 유명 여배우들도 그처럼 피해를 고백할 수 있을까. 쉽지 않을 것이다. 아직도 여전한 ‘순결 이데올로기’ 속에서 성폭력 피해자 이전에 여배우의 이미지와 커리어가 일순간 날아갈 게 불 보듯 뻔하기 때문이다. 반대로 그 같은 캠페인에 반하는 목소리도 나오기 어려울 것이다. ‘다수의 권위’ 속에서 대세를 거스르는 의견은 탈탈 털려 ‘조리돌림’당하는 세상 아닌가.

양성희 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