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 사람] 이종격투기 도전 '만화 같은 인생'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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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길 물 속은 알아도 한길 사람 속은 모른다'라는 말은 만화가 유태량(32.본명 유상모)씨에게 딱 들어맞는 말이다.

지난달 21일 작업실에서 만난 兪씨는 누가 만화가가 아니랄까봐 통통한 몸매에 수줍은 웃음까지 만화 속 '아기곰 푸우' 같았다. 순한 인상에 속아(?) '정체'를 깜빡했을 정도.

하지만 兪씨는 낮에는 평범한 은행원이지만 밤만 되면 프로레슬러로 변신하는 영화 '반칙왕'의 주인공 같은 사람이다. 벌써 단행본을 30여권이나 낸 만화가인 그는 지난달 17일 이종(異種)격투기 대회 '스피리트 MC'에 출전했다.

이종격투기가 뭔가. '힘 좀 쓴다'하는 이들은 다 모여 종목불문, 피 튀기며 싸우는 경기가 아닌가. 그 링에 오른 것만 해도 놀라운데 兪씨는 이날 이기기까지 했다.

"저는 문하생들 하고 친구처럼 지내요. 그런데 경기장에서 상대를 때려 눕히는 걸 보더니 갑자기 90도로 인사를 하더군요. '왕년에 운동 좀 했다'는 말이 그제서야 믿겼나봐요."

스스로의 말처럼 兪씨는 운동, 그 중에서 유도를 했다.

"아버지가 권투를 하셨어요. 그래서 운동 중에 다쳐도 오히려 엄살 부린다고 혼내셨죠. 덕분에 고등학교 땐 고된 훈련 때문에 유도부 동기 14명 가운데 10명이 그만뒀는데 저는 거기서 주장을 2년이나 했어요."

이 때까지만 해도 유도인으로 살 팔자였다. 하지만 인생엔 늘 변수가 있게 마련. 졸업 후 실업팀에서 뛰던 兪씨는 훈련 중에 안구가 찢어지는 상처를 입었다. 유도선수에겐 치명적인 부상이었다.

"막막했죠. 유도가 전부였으니까. 그때 생각해낸 게 만화였죠. 그림에 소질 있단 소리도 제법 들었거든요. 무작정 서울로 올라와 '칼새' 시리즈로 인기를 끌던 박인권 선생님 밑으로 들어갔어요. 밤낮 잔심부름을 하면서도 정말 열심히 배웠어요."

만화를 그려도 유도는 잊지 않았다. 그래서 첫 작품도 유도 만화로 정했다. 兪씨는 1995년 대한유도협회지 연재로 데뷔했다.

"이후로도 유도 만화를 계속 그렸어요. 당시 격투물이 유행이기도 했지만 아마 제가 아는 게 유도밖에 없어서 그랬겠죠."

그러던 그가 이종격투기에 관심을 가지기 시작한 것은 4~5년 전부터. 해외에서 열리는 이종격투기를 보면서 '만화 소재로 좋겠다'는 생각에 연구를 시작했단다. 그래서 탄생한 작품이 지난해 완간한 '트랜스 파이터'와 올 초 시작, 2권까지 출간된 '프라이드 혼(魂)'.

하지만 만화가가 자기 작품에 나오는 모든 상황을 직접 경험해볼 필요는 없다. 위험천만한 이종격투기 같은 경우에는 특히 그렇다.

"지난 4월 '스피리트 MC' 경기를 보러 갔죠. 그런데 '직접 해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물론 오래 쉬었던 운동이 쉽진 않았다. 하지만 10년 넘게 했던 운동인 만큼 '감'은 쉽게 찾을 수 있었다.

현재는 오는 6일 있을 16강전을 앞두고 매일 3~4시간씩 땀을 흘리며 마지막 수련 중. 강팀 '팀 태클'에서 최무배 관장으로부터 '필살기'도 전수받고 있다.

"그냥 열심히 하는 거죠. 적어도 '프라이드 혼'을 더 실감나게 그릴 수 있을 테니까요. 그렇다고 대강 싸우지는 않겠습니다."

남궁욱 기자

사진=신동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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