적절한 예시로 공감 이끌어내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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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이가 가진 지식과 정보는 '편식'이 심하다. 좋아하는 분야는 전문가 못지 않은 식견을 가지고 있으나, 관심이 덜한 분야는 까막눈에 가깝다. 주장은 적극적이지만 근거가 약해 주장의 완결성이 떨어진다.

권부장: 제이도 멋진 논술을 쓸 수 있는 자질이 충분한데 아직 자신이 부족한 표정이네?
제이: 솔직히 저는 논술에 대해서 소질이 없다고 생각해요. 논술과 글쓰기가 어떻게 다른지도 모르겠구요.
중앙샘: 논술과 문학적 글쓰기가 어떻게 다른지 살펴보자. 논제를 줄테니, 한번 답해 보렴.

[논제 : 한국 축구의 세계 경쟁력에 대해, 축구 선수 '박지성'의 예를 들어 설명하시오.]

제이: 이건 쉬운데요. 박선수의 장점은 폭 넓은 움직임이죠. 상대편의 진영을 위협하면서 생동감있게 움직여 자신만의 공간을 만들어요. 시의적절한 패스가 이어지도록 유도하는 '창의적'인 플레이를 구사합니다. 게다가 동료들도 혀를 내두를 정도로 연습벌레인 그의 성실성이 경쟁력의 밑거름입니다. 박지성의 평점 내용을 보면 가장 많이 나오는 말이 '부지런하다'지요.

(제이는 좋아하는 축구 얘기가 나오자, 그동안 쌓아 놓은 지식과 정보력을 유감없이 드러냈다.)

중앙샘: 제이야, 아주 훌륭하다. 한국 축구의 첫 번째 경쟁력은 강인한 체력에서 찾을 수 있겠지. 상대 선수들보다 많이 뛰고, 빈 공간을 찾아 공격과 수비에 각각 유리한 위치를 차지하려면 체력이 뒷받침돼야 할 테니 말이다. 제이가 말한대로 또 다른 경쟁력은 성실성이라고 볼 수 있겠다. 자만하지 않고 연습과 훈련을 지속하려면 성실한 성품이 필요하니까. 아주 설득력있는 얘기다.

제이: 하하하! 제가 모두 맞췄네요. 그런데, 이 이야기가 논술과 무슨 관계가 있죠?
권부장: 신문사에서는 논설위원들이 사설을 쓰기 전에 다양한 의견을 주고받으며 배경 지식과 사실관계를 확인한단다. 이 과정에서 사설의 기본 입장이 정해지고, 그 기본 입장을 설득하기 위한 구체적 사례나 사실들이 덧붙여지지. 이 과정과 제이가 말한 내용의 기본적인 흐름이 같단다.
중앙샘: 제이에게 주어진 논제를 살펴보면 알겠지만, 논술 시험에서도 '인생이란 무엇인가', 또는 '현대사회에 대해서 말해 보라' 등의 추상적인 질문은 출제하지 않는단다. '한국 축구의 경쟁력을 박지성의 예를 통해서 설명하라'나, '현대사회에서 나타난 가족의 문제'처럼 보다 구체적인 논제가 주어진다는 얘기지. 이 때문에 어떤 현상의 전형이 되는 구체적인 한 사건이나 사례를 통해 그 문제를 심층적으로 파고들어 사고하는 습관을 기를 필요가 있는 거야.
(제이는 뭔가 개념이 잡힐 듯하면서 여전히 명확하게 잡히지 않는다. 그러고 보니 제이가 이제까지 보았던 논제가 대부분 그랬던 것 같다.)
중앙샘 : 논술 점수 좋은 친구들의 첨삭 내용을 본 적이 있니?
제이 : 예. 우리반에서 논술을 잘 한다는 친구의 첨삭문을 본 적이 있어요. "제시문에 대한 이해가 잘 되고 있으며, 주제와 관련된 예시의 선택이 적절합니다"라고 씌어 있더군요.
권부장 : 그래. 논술시험은 출제자가 수험생의 성적을 평가하기 위한 의도를 가지고 있지. 이 때문에 출제자의 '출제 의도'를 얼마나 잘 이해하고 있는지를 평가하기 위한 수단을 논제에 포함시키고 있단다. 바로 그 출제 의도를 논제 분석을 통해 잘 이해할 때 좋은 논술답안을 작성할 수 있어. 바로 이점이 자신의 감상을 표현하는 문학적 글쓰기와 논술의 차이점 중 하나란다.
제이 : 잘 알겠어요. 그러면 논술과 글쓰기의 공통점은 뭔가요?
중앙샘 : 글쓰기 안에 논술이 포함된다고 볼 수 있지. 근본적으로 '글쓰기'는 모두 '사람을 향한다'는 공통점을 가지고 있어. 다만 문학이 사람에게 '공감을 통한 감동'을 주고 있다면, 논술은 사람에게 '공감을 통한 설득'을 준다고 할 수 있단다. 다만, 제이가 치루어야 하는 논술은 평가를 목적으로 한다는 '시험'의 의미가 추가되어 있는 것이란다.

<제이의 일기>

내가 논술을 너무 어렵게만 생각한 것은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선생님 말씀처럼 논술도 다른 '글'과 다르지 않은데. 내가 자신 있어 하는 것을 통해 논술을 배워 보니 이해가 잘 되었다. 역시 사람은 재미있는 것을 해야 하는가보다. "재미있는 것을 하는 것도 좋지만, 네가 하는 것을 재미있는 것으로 만들어라"고 하신 말씀처럼, 논술은 이제 나에게 '재미있는 것'이 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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