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총리 좀 더 버텨주는 것도 나쁘지 않은데 …"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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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1절 골프 로비 의혹 사건'에 연루된 이해찬 총리의 사퇴설이 흘러나온 13일 한나라당의 한 영남 지역 의원은 이렇게 말했다. 모처럼 제 발로 찾아온 호재가 너무 빨리 사그라지는 것이 아니냐는 실망감이 배어 있다. 2일 골프 로비 의혹 사건이 불거진 뒤 한나라당은 꾸준히 이 총리의 사퇴를 촉구해 왔다.

"만약 사퇴하지 않으면 더 이상 국정협조는 없다"며 "대통령이라도 나서 해임하지 않으면 해임안을 제출하겠다"고 으름장도 놨다.

하지만 속내는 조금 달랐다. 골프 파문이 불거지기 전 한나라당은 궁지에 몰려 있었다. 지난달 24일 터진 최연희 전 사무총장의 여기자 성추행 사건 때문이었다. 여론의 뭇매가 쏟아졌다. 5.31 지방선거에도 먹구름이 드리워졌다. 이때 이 총리의 골프 파문은 한나라당엔 먹구름을 걷어내는 한 줄기 햇살이었다.

한나라당은 신속하게 진상조사단을 꾸리고 정부.여당을 압박하기 시작했다. 그러면서 파문을 지방선거 국면까지 끌고가겠다는 계산도 했다.

최 전 총장 사건을 방어하는 차원을 넘어 지방선거에서까지 무기로 쓰겠단 의도였다. 진상조사단의 한 의원은 "무슨 수를 써서라도 선거까지 끌고 간다"고 말한 것도 이런 맥락이었다.

하지만 이젠 한나라당의 기대가 실현될 가능성이 작아졌다. 한 주요 당직자는 "우리로선 (이 총리가)조금 더 버텨주는 것도 나쁘지 않은데…"라며 말을 흐렸다. 그는 이어 "이제부턴 다시 여당이 최 전 총장 문제를 집요하게 들고 나올 게 뻔하다"며 "한나라당은 속수무책 당할 수밖에 없다"고 우려를 표했다.

남궁욱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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