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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트코인 창시자' 사토시 나카모토, 그는 왜 사라졌나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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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02면

비트코인 창시자 사토시 나카모토가 7분 만에 보내온 e-메일 답변은...

2009년 처음으로 등장한 암호화페 비트코인. [로이터=연합뉴스]

2009년 처음으로 등장한 암호화페 비트코인. [로이터=연합뉴스]

 2008년 10월 인터넷에 등장해 2011년 4월 아무런 자취도 남기지 않고 사라져 버린 사토시 나카모토(Satoshi Nakamoto). 암호화폐 비트코인의 창시자다. 시작은 A4 용지 9장 분량의 짧은 논문이었다. ‘비트코인: 일대일 전자 화폐 시스템’이란 제목의 논문에서 그는 은행이 필요 없는 새로운 전자 화폐를 제안했다. 10년이 흐른 지금 한국에선 1비트코인이 1300만원대(17일 현재)에서 거래되고 있다. '김치 프리미엄'이란 신조어까지 만들어낸 '비트코인 광풍'을 그는 예상했을까.

2008년 논문 내놓고 2011년 홀연히 사라져 #추측 많지만 정체가 밝혀진 적 없어 #논문엔 기존 시스템에 대한 반기 가득 #실리콘밸리 히피 정신 포함됐다는 해석도 #투자 광풍 몰고왔지만 블록체인 가능성 보여줘 #"다양한 블록체인 협업해야 효과 낼 수 있어"

그가 남긴 유일한 흔적인 논문 속 e-메일로 인터뷰 요청 메일을 보냈다. 7분 뒤 ‘자동답장(auto-reply)’이라 쓴 e-메일이 되돌아왔다.
“지금은 답장을 보낼 수 없다. 돌아오면 답을 하겠다. 사토시 나카모토.(Unfortunately I am unable to reply to your e-mail at the moment. I will answer your e-mail as soon as I return. Satoshi Nakamoto)”

 그가 사라진 2011년 이후 사토시 나카모토가 어떤 인물인지에 대한 추측은 많지만, 아직 정체가 밝혀지진 않았다. 사토시 나카모토가 한 사람이 아닌 특정한 그룹을 지칭하는 필명이란 얘기도 나온다.
사토시 나카모토라고 주장한 인물이 등장하기도 했다. 호주 출신 엔지니어 크레이그 라이트가 대표적이다. 그는 2016년 영국 국영 BBC와의 인터뷰에서 “내가 바로 사토시 나카모토”라고 털어놨지만 IT 업계에서 갑작스러운 그의 고백을 사실로 받아들이는 이는 많지 않았다.

최근에는 스페이스X 최고경영자(CEO) 일론 머스크가 사토시 나카모토라는 설이 나왔다. 머스크는 지난해 11월 자신의 트위터 계정을 통해 “세간의 얘기들은 사실이 아니다”며 “몇 년 전 친구가 비트코인을 내게 보내준 적이 있지만, 지금은 어디 뒀는지 모른다”고 말했다. 머스크가 의심받는 건 사토시 나카모토가 실리콘 밸리를 중심으로 움직이는 익명의 그룹이란 설이 꾸준히 제기되기 때문이다.

사토시 나카모토가 보내온 e-메일 답장.

사토시 나카모토가 보내온 e-메일 답장.

사토시 나카모토가 비트코인을 설계한 의도는 무엇일까. 그가 세상에 남긴 유일한 족적인 논문 곳곳에선 비트코인과 사토시 나카모토의 세계관이 담겨 있다. 이를 관통하는 키워드는 '반감·일대일·익명성' 3가지다.

 “완벽한 전자화폐 시스템은 온라인을 통해 일대일로 직접 전달할 수 있다. 이 과정에서 금융기관(Financial Institution)은 필요하지 않다.”

사토시 나카모토는 첫 문장에서 기존 금융 시스템을 부정한다. 그는 이어 “인터넷 상거래는 일반적으로 제삼자인 은행이 보증하는데 이런 시스템에선 신용에 기반을 둔 근본적인 결함이 있을 수밖에 없다”고 주장했다. 은행 등 금융기관은 해킹 등 보안에 취약하며, 파산의 위험도 있다는 걸 강조한 것으로 풀이된다.

기존 시스템에 대한 반감엔 역사적 배경이 있다. 논문이 발표된 그해 9월 미국 투자은행 리먼 브러더스가 파산을 선언했고 글로벌 금융위기가 찾아왔다. 파산을 신청한 은행이 늘면서 은행 시스템에 대한 신뢰도 무너지기 시작했다.
오정근 건국대 금융IT학과 특임교수는 “비트코인이 등장한 배경에는 금융기관의 비대화·권력화에 대한 반감이 있다”며 “은행 등 금융기관을 마냥 신뢰할 수 없다는 사회적 불안감도 암호화폐가 등장한 배경으로 꼽힌다”고 말했다.

사토시 나카모토가 2008년 공개한 비트코인 논문.

사토시 나카모토가 2008년 공개한 비트코인 논문.

2008년엔 애플이 아이폰을 출시하면서 비트코인이 보다 쉽게 거래될 수 있는 기반도 마련됐다.
또 실리콘밸리 특유의 히피 문화가 비트코인에 담겼다는 해석도 있다. 정태경 서울여대 컴퓨터학과 교수는 “세계적으로 은행에 접근할 수 없는 금융 약자가 20억 명이 넘는다는 통계가 있다”며 “논문 곳곳에선 이들도 금융 혜택을 누릴 수 있게 하자는 노력이 읽힌다”고 말했다.
 “그간 IT 기술이 권력의 탈중앙화를 이끌 것이라고 믿어왔다”며 암호화폐 연구에 대한 의지를 밝힌 마크 주커버그 페이스북 최고경영자(CEO)의 올해 신년사도 이런 맥락으로 해석할 수 있다.

 사토시 나카모토는 논문에서 거래-네트워크-프라이버시로 나눠 비트코인의 유통 과정을 제안한다. 이를 관통하는 핵심은 은행이 독점하던 거래 장부의 분산 보관이다. 거래 장부를 뜻하는 블록은 통상 10분 단위로 만들어지는데 이 블록들을 시간순으로 이어붙인 게 블록체인이다. 비트코인 거래 장부를 보관하고 있는 컴퓨터는 세계적으로 5500대 정도다. 거래 장부를 인터넷을 통해 공유하게 되면 은행이 독점해 온 중개인(middlemen) 기능은 사라지게 된다. 거래 수수료가 사라지는 것은 물론 거래 보증 기능도 잃게 될 수 있다.

정부 규제가 가시화된 지난해 연말부터 비트코인 거래가격이 요동치고 있다.

정부 규제가 가시화된 지난해 연말부터 비트코인 거래가격이 요동치고 있다.

사토시 나카모토가 비트코인을 들고나온 지 10년이 지났다. 짧은 논문에서 그가 디자인한 미래는 현실이 됐을까. 비트코인이 화제를 불러모았지만 아직 세계적인 화폐로 발돋움하지 못했다. 중국 금융 당국은 지난해 비트코인 거래소를 폐쇄하는 등 비트코인을 포함한 암호 화폐 거래를 엄격히 금지하고 있다. 베트남 정부는 올해 1월부터는 암호 화폐 유통과 이용에 대해 형법을 적용해 처벌키로 했다. 베트남은 한국, 일본과 함께 비트코인 투자 열풍을 이끄는 국가로 꼽히고 있다. 러시아는 암호 화폐 체굴세 부과 등을 담은 규제 법안을 마련하는 중이다.

비트코인 그 자체로는 수학에 기반을 둔 완벽한 모델이었지만 인간의 욕망은 간과한 것이란 평가가 나온다. 투기 수요가 이를 보여주는 대표적인 현상이다.
곽금주 서울대 심리학과 교수는“‘남들이 성공했다니 그럼 나도’란 심리가 최근 비트코인 열풍에서 읽힌다”며 "여기에 젊은이들의 사회적 불안감이 더해져 폭발했다"고 말했다. 지난 10년간 비트코인과 같은 암호화폐 종류가 1400여 개로 늘어난 것도 비슷한 맥락이다.

 그런데도 비트코인에서 유래한 블록체인은 거래와 신용에 기반을 둔 법률ㆍ부동산ㆍ지적재산권ㆍ금융시장에 큰 영향을 미칠 것으로 보인다. 세계적인 투자 은행인 골드만삭스는 최근 세틀코인(SETLcoin)이란 독자적인 암호화폐 기술을 개발해 특허를 냈다.
딜로이트와 KPMG 등 세계적인 회계법인은 블록체인을 활용한 디지털 분산 거래 장부 기술 개발에 뛰어들었다. 블록체인 기술을 활용하면 실시간 회계감사가 가능하기 때문이다. 신한은행과 하나은행 등이 전 세계 40여 개 은행이 참여하고 있는 R3CEV 컨소시엄은 블록체인 적용을 통한 거래 수수료 감소 등에 대비하기 위해 선제적인 운영 플랫폼 개발에 나선 상태다.
정태경 교수는 “사토시 나카모토가 비트코인을 만든 목적이 무엇이든 공유에 기반을 둔 새로운 경제 모델을 만들 수 있는 가능성이 블록체인을 통해 확인됐다”고 말했다.
오정근 교수는 “모든 시장 주체의 자율성을 확보할 수 있다는 측면에서 블록체인을 긍정적으로 평가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사토시 나카모토가 비트코인에서 디자인한 것처럼 국가와 기업을 뛰어넘는 세계적인 블록체인이 만들어질 수 있을까. 영국 옥스퍼드대 비즈니스 스쿨에서 강의하고 있는 레이첼 보츠만은 지난해 연말 펴낸 『누구를 믿을 것인가』에서 이렇게 말한다. “다양한 블록체인이 서로 협업하지 않는다면 그 효과는 미미할 것이다. 사토시 나카모토가 그렸던 것은 특정 회사나 몇몇 사람들이 좌지우지하지 않는 불특정 다수가 참여하는 블록체인이었다.”

강기헌 기자 emckk@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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