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기고] 내 기타는 잠들지 않는다 50. 속세를 떠나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지면보기

종합 31면

1968년 아끼는 통기타로 김추자를 위한 노래를 작곡하고 있는 필자. 순수하고 열정적인 시절이었다.

노년기에 접어든 요즘 나는 대중성과는 관계없이 내가 좋아하는 곡을 쓴다. 음악성에 치우치다 보니 대중의 취향과는 다소 거리가 있다. 이 같은 음악이 인정받으려면 세월이 한참 흘러야 할 것 같다. 물론 기회가 주어진다면 나의 음악성을 대중에게 심어놓고 싶다.

음악 문화가 잘못 받아들여지면 그저 놀이가 되고 만다. 반면 마음의 안정을 찾는 도구가 될 수도 있다. 그런 음악을 선보이고 싶다.

내 음악을 관통하는 사상은 '도(道)'다. 사실 나는 도 이야기를 잘 하지 않는 편이다. 장자는 '도를 이야기하면 웃는다'고 했다. 1990년대 초, 한 방송사에서 출연 요청이 왔다. 당시 방송인이던 김한길 열린우리당 원내대표의 토크쇼 '김한길과 사람들'이었다. 녹화 당일, 방송국 스튜디오에서 한참을 기다리자 그가 나타났다. 그는 내게 물었다.

"선생이 아는 게 뭡니까?"

"도를 압니다."

"도가 뭔데요?"

"도는 비우는 겁니다."

대답을 듣더니 그는 자료를 뒤적였다. 나에 대한 설명이 담긴 파일인 듯했다. 이후 말없이 나가더니 돌아오지 않았다. 한참을 기다리다 나도 자리에서 일어났다. 담당 PD는 미안해 어쩔 줄 몰라 했다. 김 의원은 내가 자신의 프로그램에 나올 자격이 없다고 판단했던 모양이다.

'장자 말이 맞구나…. 도를 말하면 웃는구나'.

그렇게 생각하며 돌아왔다.

도를 알게 되면 자유로워진다. 틀 속에서 벗어남으로써 자유를 얻을 수 있기 때문이다.

자유가 중하다고 느낀 건 구치소에서 밧줄로 묶인 채 심문을 받으러 검찰에 끌려갔을 때였다. 호송 버스에 앉아 차창 밖을 내다봤다. 바로 한 걸음 앞의 사람들이 자유롭게 웃고 이야기하며 지나쳤다.

'내가 저렇게 걸은 적이 있었던가…'.

밧줄로 묶이는 건 인간성을 상실하는 일이고 자신의 전부를 잃어버리는 것이었다.

구치소에서 밧줄로 묶여 있는 바람에 오히려 그런 생각을 할 시간과 여유를 갖게 됐다. 깨달음이란 대단한 게 아니었다. 내 자신을 찾아 돌아볼 수 있는 시간과 여유만 있다면 방향을 찾을 수 있었다.

내가 생각하는 도는 인위적이지 않은, 자연적인 것을 말한다. 그저 자연스럽게 우주의 운행에 순행하며 살아가는 삶 자체가 도다.

음악도 마찬가지다. 자연스럽게 나온 음악은 듣기 좋지만 인위적으로 잘 해보려고 애쓴 건 오히려 듣기 싫다. 가수 역시 마찬가지다. 신인 때는 모두가 순수하고 싱싱한 아름다움을 지니고 있다. 수많은 가수에게 음반을 내줬지만 나는 그들의 첫 음반을 제일 사랑한다. 그러나 순수함을 지키는 게 자기 마음대로 되겠는가. 나 역시 처음의 순수함은 잃어버렸을 것인데.

나는 촌스러워 보일지언정 꾸미지 않는 순수함, 심지어 투박함을 좋아한다. 그러나 사회는 그렇게 돌아가지 않는 것 같다. 그러니 난 사회에는 별로 어울리지 않는 사람이다. 가끔은 지금처럼 속세를 떠나 한가로이 있는 게 낫다는 생각이 든다. 덕분에 이렇게 시골에서 어떤 음악을 할 것인지 구상하는 여유도 부릴 수 있다. 그래서 내 기타는 잠들지 않는 것이다.

<끝>

신중현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