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68년 아끼는 통기타로 김추자를 위한 노래를 작곡하고 있는 필자. 순수하고 열정적인 시절이었다.
노년기에 접어든 요즘 나는 대중성과는 관계없이 내가 좋아하는 곡을 쓴다. 음악성에 치우치다 보니 대중의 취향과는 다소 거리가 있다. 이 같은 음악이 인정받으려면 세월이 한참 흘러야 할 것 같다. 물론 기회가 주어진다면 나의 음악성을 대중에게 심어놓고 싶다.
음악 문화가 잘못 받아들여지면 그저 놀이가 되고 만다. 반면 마음의 안정을 찾는 도구가 될 수도 있다. 그런 음악을 선보이고 싶다.
내 음악을 관통하는 사상은 '도(道)'다. 사실 나는 도 이야기를 잘 하지 않는 편이다. 장자는 '도를 이야기하면 웃는다'고 했다. 1990년대 초, 한 방송사에서 출연 요청이 왔다. 당시 방송인이던 김한길 열린우리당 원내대표의 토크쇼 '김한길과 사람들'이었다. 녹화 당일, 방송국 스튜디오에서 한참을 기다리자 그가 나타났다. 그는 내게 물었다.
"선생이 아는 게 뭡니까?"
"도를 압니다."
"도가 뭔데요?"
"도는 비우는 겁니다."
대답을 듣더니 그는 자료를 뒤적였다. 나에 대한 설명이 담긴 파일인 듯했다. 이후 말없이 나가더니 돌아오지 않았다. 한참을 기다리다 나도 자리에서 일어났다. 담당 PD는 미안해 어쩔 줄 몰라 했다. 김 의원은 내가 자신의 프로그램에 나올 자격이 없다고 판단했던 모양이다.
'장자 말이 맞구나…. 도를 말하면 웃는구나'.
그렇게 생각하며 돌아왔다.
도를 알게 되면 자유로워진다. 틀 속에서 벗어남으로써 자유를 얻을 수 있기 때문이다.
자유가 중하다고 느낀 건 구치소에서 밧줄로 묶인 채 심문을 받으러 검찰에 끌려갔을 때였다. 호송 버스에 앉아 차창 밖을 내다봤다. 바로 한 걸음 앞의 사람들이 자유롭게 웃고 이야기하며 지나쳤다.
'내가 저렇게 걸은 적이 있었던가…'.
밧줄로 묶이는 건 인간성을 상실하는 일이고 자신의 전부를 잃어버리는 것이었다.
구치소에서 밧줄로 묶여 있는 바람에 오히려 그런 생각을 할 시간과 여유를 갖게 됐다. 깨달음이란 대단한 게 아니었다. 내 자신을 찾아 돌아볼 수 있는 시간과 여유만 있다면 방향을 찾을 수 있었다.
내가 생각하는 도는 인위적이지 않은, 자연적인 것을 말한다. 그저 자연스럽게 우주의 운행에 순행하며 살아가는 삶 자체가 도다.
음악도 마찬가지다. 자연스럽게 나온 음악은 듣기 좋지만 인위적으로 잘 해보려고 애쓴 건 오히려 듣기 싫다. 가수 역시 마찬가지다. 신인 때는 모두가 순수하고 싱싱한 아름다움을 지니고 있다. 수많은 가수에게 음반을 내줬지만 나는 그들의 첫 음반을 제일 사랑한다. 그러나 순수함을 지키는 게 자기 마음대로 되겠는가. 나 역시 처음의 순수함은 잃어버렸을 것인데.
나는 촌스러워 보일지언정 꾸미지 않는 순수함, 심지어 투박함을 좋아한다. 그러나 사회는 그렇게 돌아가지 않는 것 같다. 그러니 난 사회에는 별로 어울리지 않는 사람이다. 가끔은 지금처럼 속세를 떠나 한가로이 있는 게 낫다는 생각이 든다. 덕분에 이렇게 시골에서 어떤 음악을 할 것인지 구상하는 여유도 부릴 수 있다. 그래서 내 기타는 잠들지 않는 것이다.
<끝>끝>
신중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