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VERTISEMENT

국채 매입액 줄인 일본 … 구로다, 양적 완화서 손 떼나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경제 02면

구로다 하루히코

구로다 하루히코

2016년 1월 국제금융시장은 일본은행(BOJ) 발 ‘충격과 공포’ 처방에 흔들렸다. 일본은행이 경기 부양을 위해 정책금리를 0.1%에서 -0.1%로 낮췄기 때문이다. 정책금리가 마이너스로 내려간다는 건 민간 상업은행이 중앙은행에 돈을 맡길 때 이자를 받는 대신 수수료를 내야 한다는 의미다. 수수료를 내면서 중앙은행에 돈을 맡길 상업은행은 거의 없다. 돈을 중앙은행에 맡기지 말고 시중에 대출로 풀라는 취지다. 아베노믹스에 발맞춰 경기 부양에 올인 했던 구로다 하루히코(黑田東彦·사진) 총재의 극약 처방이었다.

엔화 가치 상승 금융시장 충격파 #한·미 채권 금리도 일제히 올라 #“긴축 신호로 보기에 일러” 분석도

2년이 흐른 지난 10일. 국제금융시장은 또다시 일본은행 발 충격에 출렁댔다. 이번엔 정반대 이유 때문이다. 9일 일본은행은 잔존만기 10년 초과 25년 이하 국채 매입액을 전달보다 100억엔 줄어든 1900억엔이라고 밝혔다. 일본은행이 시중에 푸는 돈의 규모를 약간 줄인 것이다. 해당 채권 매입액을 줄인 건 2016년 12월 이후 처음이다. 이날 일본은행의 결정에 미국과 한국의 채권 금리가 일제히 상승했다. 약세를 이어가던 엔화 가치도 상승했다.

국채 매입액을 살짝 줄였을 뿐인데 금융시장이 화들짝 놀란 이유는 무얼까. 시장은 구로다 총재의 변심 여부에 촉각을 곤두세우며 ‘일본은행 발 긴축 발작’ 가능성을 저울질하고 있다.

세계금융위기 이후 경기 부양을 위해 통화 수도꼭지를 열었던 각국 중앙은행은 속속 돈줄을 죄고 있다. 미 연방준비제도(Fed)와 영국은행은 기준금리를 인상하는 등 긴축으로 방향을 틀었다. 유럽중앙은행(ECB)도 채권 매입 규모를 줄이는 등 통화 정상화 궤도로 진입하고 있다. CNBC는 9일(현지시간) “일본은행이 펀치볼을 치울 마지막 중앙은행이 될지에 시장의 관심이 쏠리고 있다”고 보도했다.

자산 매입 줄인 일본은행

자산 매입 줄인 일본은행

일본은 국제 자산 시장의 큰손이다. 2001년 양적 완화에 나섰던 만큼 일본의 금융회사와 연기금이 해외에 투자한 자금은 막대하다. DB금융투자에 따르면 지난해 9월 기준 일본 연기금이 해외 채권과 주식에 투자한 자금만 59조7000억엔(572조원)에 이른다. 일본이 양적 완화 페달에서 발을 조금만 떼도 전 세계 자산 시장은 긴축 발작을 겪을 수 있다.

국채 매입액 축소를 양적 완화 축소와 긴축 전환의 신호로 볼 것인지에 대한 시장의 해석은 엇갈린다. 김두언 하나금융투자 연구원은 “아베노믹스로 인해 대놓고 못 했을 뿐 일본은 지난해부터 국채 매입 규모를 줄이는 ‘스텔스 테이퍼링’을 진행해온 만큼 통화정책의 변경이라고 보기는 힘들다”고 말했다. 미래에셋대우에 따르면 일본은행의 연간 자산매입 금액은 80조엔이지만 지난해는 44조9180억엔의 자산을 사들이는 데 그쳤다.

공동락 대신증권 연구원은 “일본 경기가 좋지만 이는 모두 엔화 약세에 기대 지탱해 온 만큼 금리가 오르는 등 긴축으로 전환하면 엔저 기조는 무너질 수 있다”며 “국채 매입 규모를 줄인 건 장기간 이어진 저금리와 양적 완화로 인해 수익성 악화에 시달리는 금융 회사의 숨통을 틔워주기 위한 것으로 분석된다”고 설명했다.

일본은행이 양적 완화에서 발을 빼는 시기가 원래 예상했던 올 하반기보다 빨라질 수 있다는 전망도 나온다. 문홍철 DB금융투자 연구원은 “4월 초 퇴임을 앞둔 구로다 총재가 과도한 완화적 통화정책의 부작용을 해결하기 위해 결자해지의 모습을 보이며 양적 완화 규모를 줄이는 신호를 보내면 엔화는 강세로 돌아설 수밖에 없다”며 “일본은행이 통화정책의 스프링을 눌러 놓았던 만큼 반작용은 클 수 있고 시장에도 충격을 미칠 것”이라고 말했다.

하현옥 기자 hyunock@joongang.co.kr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