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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겨 페어팀 “2년간 피나는 훈련 허사 되나요”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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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11면

김규은-감강찬(왼쪽부터) 조는 한국 피겨 페어 국가대표로 선발됐다. 하지만 남북이 피겨 단일팀을 구성할 경우 북한 염대옥-김주식 조에 자리를 내주고 평창올림픽에 나가지 못할 수도 있다. 아직은 단일팀 구성과 관련해 확정된 게 없다. [오종택 기자]

김규은-감강찬(왼쪽부터) 조는 한국 피겨 페어 국가대표로 선발됐다. 하지만 남북이 피겨 단일팀을 구성할 경우 북한 염대옥-김주식 조에 자리를 내주고 평창올림픽에 나가지 못할 수도 있다. 아직은 단일팀 구성과 관련해 확정된 게 없다. [오종택 기자]

한국 피겨스케이팅의 유일한 국가대표 페어 팀 멤버인 김규은(19)과 감강찬(23)은 2015년 12월 태평양을 건넜다. 둘은 ‘피겨 강국’ 캐나다에서 꼬박 2년간 매일 6시간씩 스케이트를 탔다. 주말이나 휴일에도 체력훈련을 멈추지 않았다. 훈련비·주거비·식비 등을 합쳐 1인당 매달 400여만원을 썼다. 대부분 자비로 충당했다. 그렇게 지난 2년간 2억원을 넘게 썼다.

남북 단일팀에 평창 꿈 무산 위기 #자비로 2억 쓰며 캐나다 전지 훈련 #주말·휴일도 하루 6시간 스케이트 #개최국 쿼터로 티켓 확정했는데 #최문순 지사 “페어는 북한팀 출전” #“우리가 있는지도 몰라 너무 슬퍼 #남북 함께 나가 유니폼 교환 기대”

김규은은 지난 여름 오른쪽 무릎을 다쳤다. 아픔을 참고 훈련하다가 후방십자인대까지 끊어졌다. 하지만 주사를 맞고 시합에 나갔다. 감강찬은 대학 진학까지 미루고 훈련에 전념했다. 두 사람이 모든 걸 쏟아부은 건 오직 한 가지 이유 때문이다. ‘평창 겨울올림픽 출전’이라는 꿈을 이루기 위해서였다.

태릉빙상장에서 지난 9일 두 사람을 만났다. 7일 끝난 피겨 국가대표 최종선발전을 통해 대표선수로 뽑힌 뒤라 표정이 밝았다. 한국은 자력으로는 올림픽 페어 출전권을 따내지는 못했다. 하지만 개최국 쿼터를 받은 덕분에 평창올림픽에 나갈 수 있게 됐다. 김규은-감강찬 조는 개인전과 단체전에 출전할 수 있다.

환상호흡 김규은-감강찬   (서울=연합뉴스) 박동주 기자 = 5일 서울 목동실내빙상장에서 열린 KB금융 코리아 피겨스케이팅 챔피언십 2018. 페어 김규은-감강찬 조가 경기를 펼치고 있다. 2018.1.5   pdj6635@yna.co.kr (끝) <저작권자(c) 연합뉴스, 무단 전재-재배포 금지>

환상호흡 김규은-감강찬 (서울=연합뉴스) 박동주 기자 = 5일 서울 목동실내빙상장에서 열린 KB금융 코리아 피겨스케이팅 챔피언십 2018. 페어 김규은-감강찬 조가 경기를 펼치고 있다. 2018.1.5 pdj6635@yna.co.kr (끝) <저작권자(c) 연합뉴스, 무단 전재-재배포 금지>

싱글 선수였던 김규은과 감강찬은 2015년 12월 페어 조를 결성했다. 감강찬은 전에 다른 선수와 페어 조를 해본 적이 있지만, 김규은은 페어가 처음이다. 둘이 의기투합한 건 ‘한국에서 열리는 올림픽에 나가고 싶다’는 소망 때문이었다. 김규은은 “7살 때 스케이트를 시작했다. 잘 탄다고 칭찬도 받았다. 그런데 중학교 때 키가 1년 사이 10㎝ 이상 급격히 자라면서 몸의 밸런스가 무너졌다”며 “달라진 몸에 적응하는 사이 다른 선수들에게 뒤처졌다. 그래도 올림픽 출전 꿈을 버릴 수 없어 경쟁이 덜한 페어 쪽으로 눈을 돌렸다”고 했다.

피겨 페어 감강찬 김규은 선수가 9일 태릉 빙상장에서 훈련하고 있다. 오종택 기자

피겨 페어 감강찬 김규은 선수가 9일 태릉 빙상장에서 훈련하고 있다. 오종택 기자

둘은 페어 조를 구성하기에 좋은 조건은 아니다. 감강찬 키가 1m72㎝, 김규은이 1m61㎝로, 둘의 키 차이는 11㎝다. 페어 조 치고는 차이가 너무 작다. 남자가 여자를 머리 위로 들어 올리는 리프트 기술을 위해선 둘의 차이가 20㎝는 돼야 한다. 거기다 감강찬은 먹어도 살이 잘 안 찌는 체질이라 체중이 60㎏에도 못 미칠 때가 있었다. 힘이 달려 여자선수를 들어올리는 연기(리프트)를 펼칠 때 마다 애를 먹었다. 감강찬은 “신경 써서 많이 먹고, 웨이트도 열심히 해 근육량을 늘리고 있다”고 말했다. 감강찬의 체중은 현재 71㎏. 체중이 40㎏ 후반대인 김규은은 “힘들어하는 오빠를 위해 살을 빼고 있다. 남은 기간 2㎏ 정도 더 감량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김규은-감강찬 조는 지난해 2월 강릉아이스아레나에서 열린 4대륙 피겨선수권대회에서 한국 3개 조 가운데 최하위(118.91점)에 그쳤다. 둘은 실망하고 포기하는 대신 더 혹독한 훈련을 택했다. 캐나다 몬트리올로 건너가 브루노 마르코트 코치의 지도를 받았다. 그사이 다른 페어 조는 팀워크 내지 비용 문제로 해체됐다. 김규은-감강찬 조는 이번 대표 최종선발전에선 1년 전보다 20.63점 오른 139.54점을 받았다. 감강찬은 “페어 조가 되는 건 결혼하는 것과 같다. 서로 이해하고 맞춰가야 성공할 수 있다. 규은이와는 소통이 잘 된다. 앞으로도 계속 파트너로 뛰고 싶다”고 말했다.

남북한 피겨 페어 조들. 한국 감강찬, 북한 김주식과 염대옥, 한국 김규은(왼쪽부터). [사진 감강찬]

남북한 피겨 페어 조들. 한국 감강찬, 북한 김주식과 염대옥, 한국 김규은(왼쪽부터). [사진 감강찬]

평창올림픽 하나만 보면서 힘들게 외길을 걸어온 김규은-감강찬 조에게 최근 청천벽력 같은 소식이 전해졌다. 최문순 강원도지사가 “피겨 남녀 싱글과 아이스댄스 세 종목에는 한국 선수를, 페어에는 북한 선수 염대옥(19)-김주식(26) 조를 출전시키자”고 의견을 낸 것이다. 이렇게 되면 김규은-감강찬 조는 평창올림픽에 출전하지 못할 수도 있다. 김규은은 “한국에 페어 조가 있는지도 모르는 현실이 너무 슬펐다. 우리가 지난 2년간 올림픽만 바라보며 노력한 걸 알아줬으면 좋겠다”고 호소했다.

김규은-감강찬 조는 염대옥-김주식 조와도 친분이 있다. 지난해 2월 삿포로 아시안게임에서 처음 인사를 나눴고, 지난여름 캐나다 몬트리올에선 함께 전지훈련을 했다. 김규은은 “대옥이, 주식 오빠와는 몬트리올에서 김밥과 김치를 나눠 먹으며 친해졌다. 평창올림픽에서 다시 만나면 한국의 매운 떡볶이를 소개해주고 싶다”고 말했다. 남북한이 단일팀 대신 각각의 대표팀으로 출전하면 이들은 고민할 필요가 없다. 감강찬은 “피겨도 경기가 끝나면 축구처럼 서로의 유니폼 상의를 교환한다. 일종의 기념인데, 올림픽 무대를 잘 마친 뒤 (김)주식이 형과 교환하고 싶다”고 말했다.

남북한 피겨 페어 조의 남자 선수들. 한국 감강찬(왼쪽)과 북한 김주식. [사진 감강찬]

남북한 피겨 페어 조의 남자 선수들. 한국 감강찬(왼쪽)과 북한 김주식. [사진 감강찬]

피겨 페어 김규은-감강찬 조

최고 점수
149.72점(2017년 9월)
※북한 염대옥-김주식 조,
최고 점수 180.09점(2017년 9월)

김규은
·출생 : 1999년 6월 27일
·체격 : 1m61㎝·48㎏
·종목 입문 : 7세
·페어 경력 : 2년

감강찬
·출생 : 1995년 5월 23일
·체격 : 1m72㎝·71㎏
·종목 입문 : 10세
·페어 경력 : 3년

박소영 기자 psy0914@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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