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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교가 신나게 바꿨어요"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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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0면

서울 월계고 학생들은 조회시간에 교가를 부를 때마다 "야! 야! 야!"하는 구호를 외친다. 교가에 구호가 들어 있기 때문이다. 학생들은 구호가 나오는 부분에서 크게 소리를 지르고 율동도 곁들인다. 엄숙한 분위기로 교가를 부르는 다른 학교에선 볼 수 없는 광경이다. 교가는 음악교사 출신인 김형주 교장이 지난해 개교에 맞춰 직접 작곡했다. 경쾌한 느낌을 주는 당김음 리듬이 많이 들어가 록 음악의 분위기가 나고 부르기도 쉬워 학생들에게 인기다. 학생회장 선거 땐 교가를 록음악풍으로 편곡해 로고송으로 만든 학생도 나왔다. 이 학교 2학년 유슬아(17)양은 "교가를 부를 때마다 스포츠 응원을 하는 것 같아 기분이 좋다"고 말했다.

일부 학교와 회사에서 정형화된 교가.사가(社歌)의 틀을 깨자는 움직임이 일고 있다. 가수 윤도현씨는 최근 애국가를 록 버전으로 편곡해 부르기도 했다. 수원 영복여중은 30년 전 지어진 교가를 지난해 한 음악업체에 의뢰해 편곡했다. 피아노 반주를 오케스트라 반주로 바꿔 세련미를 더한 게 포인트다. 이 학교 이양호 교장은 "고리타분한 교가에 학생들이 싫증을 내 분위기를 바꿨다"고 말했다. 최근에는 교가를 다운받아 벨소리.컬러링으로 쓸 수 있도록 한 사이트도 생겨났다.

◆ 록.힙합 버전 사가 등장=지난해 LG투자증권과 우리증권이 통합해 출범한 우리투자증권은 사가를 아예 없앴다. 대신 록 버전 응원가나 간단한 구호를 검토 중이다. 주운석 전략기획팀장은 "사가는 젊은 사람들에게 거의 의미가 없다"며 "회식 자리에서 다 같이 외칠 수 있는 구호가 차라리 낫다고 판단했다"고 설명했다.

CJ그룹은 기존 사가를 발라드.록 등의 아홉 가지 버전으로 편곡해 사용 중이다. 피아노 반주 대신 전자기타.드럼 등을 사용했고, 가사는 사내 공모를 통해 만들었다. 뮤직비디오까지 제작했다. 사가를 벨소리로 쓰는 직원들이 나올 정도다. 사내 교육.모임 등의 자리에서 가요를 부르듯이 합창한다. 힙합과 록 버전으로 바뀐 신무림제지 사가와 가수 김도향씨가 만든 GS칼텍스의 사가는 업계에서 화제다.

교가.사가를 현대적 감각에 맞게 편곡.녹음해 주는 전문업체도 등장했다. M스튜디오 장규식 대표는 "시대에 뒤처진 교가.사가를 바꿔 달라는 요청이 최근 늘고 있다"며 "행진곡풍을 경쾌하고 부드러운 동요풍으로 바꿔 달라는 주문이 많다"고 전했다.

◆ 독특한 교가.사가 문화=일본.한국 정도에서만 활성화돼 있는 교가.사가는 대부분 4분의 4박자 행진곡풍이다. 가사도 산.강이 들어가는 식으로 정형화돼 있다. 한국땅이름학회가 최근 서울.경기 일대 초등학교 교가 80여 개를 분석한 결과 90%가 교가에 '산'이 들어 있었다. 미국.영국 등지에도 교가는 있지만 졸업식 등 일부 행사에서만 연주할 뿐이며, 사가가 있는 경우는 거의 없다. 연세대 유석춘(사회학과) 교수는 "교가.사가를 자주 부르고 중시하는 것은 동아시아만의 독특한 문화로 보인다"고 말했다.

김호정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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