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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복한책읽기] 에디슨도 라이벌 이기려 음모 꾸몄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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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0면

빛의 제국
질 존스 지음, 이충환 옮김, 양문, 536쪽, 2만3500원

몽상가들이 꿈을 꿨다. 그 꿈 속에서 세상은 해가 지더라도 어두워지지 않았다. 이 꿈은 19세기 말 전기가 실용화되면서 이뤄졌다. 세 명의 발명가가 이를 이끌었다. 토마스 에디슨, 니콜라 테슬라, 그리고 조지 웨스팅하우스. 이들은 전등을 발명했으며 전기를 공급하는 체계를 만들었다. 그리고 지금의 세상을 만들었다. '빛의 제국'은 이들 셋이 전기 생산과 공급 체계를 만들어 가는 과정을 그린 논픽션물이다.

작가이자 역사학자인 지은이는 당시 세 사람 사이에서 상당히 험악한 경쟁이 벌어졌다고 강조한다. 직류 전기 시스템을 제안한 에디슨과, 테슬라에게서 교류 전기 관련 기술특허를 사서 사업화하려는 웨스팅하우스가 벌인 치열한 싸움이 이 책의 기둥 줄거리다. 특히 에디슨이 웨스팅하우스를 이기기 위해 살벌한 음모를 꾸몄다는 이야기는 충격적이다.

에디슨은 1887년 전기가 '교수형의 품위있고 문명적인 대안'이 될 수 있는지를 알려달라는 뉴욕주 사형위원회 앨프리드 사우스위크 박사의 부탁을 받는다. 그는 처음엔 사형제도에 반대한다며 답변을 거절한다.

하지만 곧 마음을 고쳐 경쟁자인 웨스팅하우스의 교류 전기를 이용하면 사형수를 빠르고 고통 없이 처형할 수 있다는 편지를 보낸다. 전기학자로서 최고의 명성을 누리던 그의 편지는 주 의회가 전기의자 사형제를 확립하는 결정적인 계기가 된다.

웨스팅하우스의 교류발전기로 사람을 처형하게 되면 교류가 위험하다는 인식을 대중에게 심어줄 수 있다는 게 에디슨의 속셈이었다. 그러면 에디슨의 직류가 전력 공급 시스템으로 채택될 가능성이 더 커지기 때문이다. 이리하여 1890년 8월6일 세계 최초의 전기의자 처형이 웨스팅하우스 발전기를 이용해 집행된다. 하지만 이런 집요한 방해에도 불구하고 싸움은 사업 감각이 좋은 웨스팅하우스 승리로 끝난다. 그렇다고 에디슨이 패배자란 소리는 아니다. 지은이는 이들 모두가 승리자라는 입장을 취한다. 서술 방식도 독특하다. 전기가 우리의 삶 한가운데에 자리 잡아가는 장구한 드라마를 대단히 상세하게 서술한다. 디테일 묘사도 충실하다. 이를테면 최초의 전기의자 사형을 다루면서 그 사형수가 저지른 범죄와 체포 과정, 처형 장면을 곁에서 보는 듯 세세하게 그린다.

당시 신문 기사를 비롯한 다양한 사료를 바탕으로 상황을 '역사 재현극'을 연상케 할 정도로 충실하게 재구성했다. 이는 서구의 일급 논픽션물들의 특색이기도 하다. 세 사람에 대한 묘사도 생생하다. 지은이에 따르면 에디슨은 "어려운 과학 기술 용어 대신 쉬운 말로 자신의 발명을 소개하며, 성공한 다음에도 요트나 말 같은 부자들의 장난감을 거부하고 수수한 차림으로 연구와 실험에만 몰두하는 인물"이다.

그러면서도 자신을 호레이쇼 엘저(아무 배경이 없는 사람이 재능과 노력으로 성공하는 내용의 대중소설 주인공)와 동일시하며 우쭐대는 경향이 있었다는 지적은 흥미롭다. 이들 발명가들이 19세기 말과 20세기 초 사회 속에서 어떤 영향을 받았는지도 생생하게 그렸다. 예로 에디슨의 회사에 취직한 테슬라가 나쁜 대우에 불만을 품고 그만둔 뒤 일당 2달러를 받고 도랑 파는 일을 잠시 했다든지, 에디슨 공장 노동자들이 근로조건 개선을 요구하며 파업을 벌이는 사연 등이 소개된다.

에디슨이 전등을 내놓자 가스등에 가스를 공급하는 영국과 미국 회사들의 주가가 떨어졌다는 등의 시대상도 흥미롭다. 한 마디로 이 책은 과학과 기술, 자본주의와 기업의 논리가 세상의 중심에 자리 잡으면서 거대한 물질사회가 도래하는 현장이다. 그 연장선에 우리가 살고 있지 않은가.

채인택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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