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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동원 캐스팅, '1987'이 겪은 기적 중 하나" 장준환 감독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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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1987'의 장준환 감독은 "같이 일한 스태프와 배우들, 영화 속 모든 실존 인물들과 유가족에게 감사하다"고 말했다. 권혁재 사진전문기자

영화 '1987'의 장준환 감독은 "같이 일한 스태프와 배우들, 영화 속 모든 실존 인물들과 유가족에게 감사하다"고 말했다. 권혁재 사진전문기자

지난달 27일 개봉한 영화 ‘1987’(장준환 감독)이 관객 400만 돌파를 눈앞에 두고 있다. 7일 오전 영화관입장권 통합전산망 집계에 따르면, ‘1987’은 6일 하루 동안 43만 명의 관객이 관람해 누적 관객 수 366여만 명을 기록했다. 앞서 개봉한 '신과함께-죄와벌'(김용화 감독)에 이어 올해 두 번째 천만 영화로 기록될지 주목된다.

영화 '1987'의 장준환 감독은 "엄마와 함께 영화를 본 관객이 엄마를 안아줬다는 글을 보고도 눈물이 나왔다"고 했다. 그가 가장 보고 싶었던 관객들의 반응이었기에. 권혁재 사진전문기자

영화 '1987'의 장준환 감독은 "엄마와 함께 영화를 본 관객이 엄마를 안아줬다는 글을 보고도 눈물이 나왔다"고 했다. 그가 가장 보고 싶었던 관객들의 반응이었기에. 권혁재 사진전문기자

‘1987’은 1987년 1월에 발생한 서울대생 박종철 고문치사사건부터 6월 민주화 항쟁까지 6개월 동안 벌어지는 이야기를 그린다. 2003년 ‘지구를 지켜라’로 데뷔한 장준환(48) 감독의 세 번째 장편영화다. 서울 삼청동에서 만난 그는 “이 영화가 과연 만들어질 수 있을까에 대해 많이 의심했는데, 기적 같은 일이 계속 일어났다"며 "정말이지 누군가 우리를 보살피고 있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들 정도"라고 말했다.

-극장에서 ‘1987’을 보고 엔드 크레딧이 다 올라갈 때까지 자리를 지켰다는 관객들이 많더라. 개봉 후 관객들을 지켜본 소감은.
"관객들과 굉장히 깊게 소통되고 있다는 느낌이다. 창작자는 소통을 통해 위로받는데, 요즘 제가 많은 위로를 받고 있다. 감독 입장에서 관객 수도 매우 중요하지만, 관객들과 깊이 통했다는 느낌을 얻는 게 얼마나 중요한지 모른다. 여기까지 온 게 감사하다."

-관객과 깊게 소통한다는 게 무슨 뜻인가.
"제가 이왕 ‘울보 감독’으로 불리는 마당에 더는 숨길 필요가 없어 말씀드리는데, 바로 며칠 전에도 관객 평을 읽으며 눈물을 흘렸다. 관객 자신이 1987년 당시 자신이 어디서 무엇을 하고 있었는지 개인사를 소상히 적은 글을 읽다가 울컥한 거다. 엄마랑 영화를 같이 봤다는 딸이 엄마에게 ‘고맙다’며 안아줬다는 글을 보고 눈시울이 뜨거워지고. 내가 정말로 원했던 게 바로 이런 반응이었던 것 같다. 우리가 이 세상에서 어떻게 어우러져 살아갈 수 있을까를 고민하던 차에 만든 영화라 이런 반응이 더 소중한 게 여겨진다."

-언론 시사회를 마치고 기자 회견에서도 눈물을 보였다.
"오해를 좀 풀어야 할 것 같다. 제 영화를 보고 스스로 감동해서 운 게 아니다. 시사회 때는 옆에 앉은 배우들이 울어 따라서 눈물이 난 거다. 또 그날 기자들의 질문에 답하던 중, 갓 스물을 넘긴 두 청년이 국가 권력에 의해 그렇게 세상을 떠났다는 말을 하다가 슬픔이 밀려와 말을 잊지 못했다. 촬영 때도 이한열 열사 어머니께서 현장을 찾았는데, 김태리 배우의 손을 잡고 ‘우리 아들도 이런 여자 친구 있었으면 얼마나 좋았을까’하고 말씀하실 때 함께 울었다. 생때같은 스무 살짜리 아들을 잃고 30년을 살아온 삶을 우리가 어떻게 짐작이나 하겠나. 눈물은 내성이 생기지도 않더라. 아직도 난 많이 울고 있다."

영화 '1987'의 한장면. 박종철 열사의 아버지가 아들의 유골을 뿌리는 장면이다. 이 장면에서 감독은 슬퍼하는 아버지의 얼굴을 클로즈업하지 않았다. "감히 그럴 수 없었다"고 했다. [사진 CJ E&M]

영화 '1987'의 한장면. 박종철 열사의 아버지가 아들의 유골을 뿌리는 장면이다. 이 장면에서 감독은 슬퍼하는 아버지의 얼굴을 클로즈업하지 않았다. "감히 그럴 수 없었다"고 했다. [사진 CJ E&M]

-‘이 영화가 만들어질 수 있을까?’ 걱정 많이 했다고.
"정말 만들어질 수 있을지 의문이었다. 어떤 형태로든 정치적 탄압 같은 게 있을 수 있다고 생각했다. 제가 느끼기엔 불과 2년 전만 해도 이런 영화를 편하게 만들 수 있는 시대는 아니었다. 정권이 불편해하는 영화를 만들고 불이익을 겪는 사례들이 없지 않았으니까."

-불이익을 당하게 되더라도 만들 생각이었나?
"이 이야기는 정말 만들고 싶다, 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모두가 주인공’이었던 그해의 이야기를 꼭 하고 싶다는, 이상한 감정이 내 안에서 올라왔다. 운명이라는 생각마저 들었다. 오히려 지금까지 이 이야기를 아직도 다루지 않았다는 사실이 놀라웠고, 또 다행이다 싶었다. 지금 일곱 살인 딸 아이에게 현재를 일궈낸 사람들의 뜨거움과 용기를 보여주고 싶다는 마음도 크게 작용했다."

영화 '1987'의 서사에서 척추 같은 역할을 한 것은 박처장 역의 김윤석이다. 이 인물을 두고 다양한 인물들이 엮이며 하나의 사건으로 확대돼 가는 이야기 구조가 독특하다. [사진 CJ E&M]

영화 '1987'의 서사에서 척추 같은 역할을 한 것은 박처장 역의 김윤석이다. 이 인물을 두고 다양한 인물들이 엮이며 하나의 사건으로 확대돼 가는 이야기 구조가 독특하다. [사진 CJ E&M]

-굵직한 사건을 그리며 긴박하게 흘러가는 이야기가 인상적이었다. 기존 한국영화와 다르게 다양한 캐릭터가 점처럼 박혀 있는 것도 특이했고.
"김경찬 작가가 쓴 시나리오 초고가 굉장히 흥미로웠다. 적대 인물(안타고니스트)인 박처장(김윤석)을 가운데 두고, 많은 인물이 모이고 부딪히며 결국 하나의 커다란 사건으로 발전해가는 구도가 색달라 감독으로서 도전해보고 싶었다. 이야기의 가치와 더불어 그런 도전의 의미가 없었다면 ‘1987’은 택하지 않았을 거다. 객석에 앉은 관객들이 ‘아, 내가 주인공이구나’ ‘내가 저기 광장에 있는 사람 중 하나였지’ 하면서 느낄 수 있는 영화를 만들고 싶었다. 위험 부담만큼 매력이 컸다."

-제작이 불투명하던 상황에서 ‘희망’을 보게 된 결정적 계기가 뭐였나.

"지금까지 모세의 기적처럼 바다가 갈라지는 것과 같은 순간들이 여러 번 있었다. 나중에 그 광장에서 촛불 집회가 열리고 정국이 이렇게 바뀔 줄 어떻게 알았겠나. 그래도 가장 결정적인 전환점은 강동원 캐스팅이었다. 처음으로 우리 영화에 힘을 실어준 배우니까. 강동원씨는 여기저기서 러브콜을 많이 받는 배우인 데다 기획 당시 분위기가 이런 영화에 선뜻 출연할 수 없는 분위기여서 대본을 건네기도 민망했다. 대본이 나오면 보여달라고 해서 보내면서 '할 수 있는 역할은 하나밖에 없다'고 했는데, 그가 선뜻 “어떤 역이라도 하겠다!”고 한 것이다. 오히려 작품보다 자기 자신이 두드러지면 작품에 폐가 되지 않겠냐고 걱정까지 하면서. 비록 작은 역이지만 굉장히 중요한 역이고 서슬 퍼런 정국에 그걸 선뜻 하겠다고 해준 게 엄청난 힘이 됐다. 나중에 배우 김윤석, 하정우, 강동원과 함께 처음으로 뭉친 자리에서도 제가 눈물을 보이고 말았다. 그동안 조마조마했던 마음이 풀리고, 배우들에게 너무 고마워서."

-실화를 바탕으로 한 이야기라 극화에 대한 부담이 컸을 텐데.
 "저 역시 그때를 기억하는 세대다. 당시 고등학생이어서 직접 광장에 나가지는 않았지만, 여전히 학생운동이 활발하던 때 대학을 다녔다. 실존 인물들과 당시 사건을 직접 겪고 지켜본 분들이 많으니 모든 게 예민하고 조심스러울 수밖에 없었다. 그래서 더 철저하게 조사하며, 돌다리 두드리듯이 준비하는 수밖에 없다고 생각했다."

-영화를 만들며 지키고 싶었던 원칙 같은 게 있었나.
"실화 자체가 가진 극적인 긴장감이 워낙 컸기에 팩트에 충실하면서도 실화와 영화 사이에 균형감을 지키자고 생각했다. 영화적 재미를 위해 진정성을 훼손시키지 않는 것도, 이미 비극적인 사건을 겪은 유가족에게 누가 되지 않게 하는 것도 모두 중요했다."

-감독의 말마따나 '모두가 주인공'인 영화라 여러 배우의 연기를 조율하는 작업이 쉽지 않았을 텐데.
"조금 과장하면 장편 영화 일곱 편 찍는 것과 같은 노력과 에너지가 들어간 것 같다. 어떤 인물로 그릴 것인가를 놓고 각 배우와 교감하는 것도, 현장에서 연기 톤을 어떻게 조절하는 것도 모두 중요했다. 여기에 등장하는 개인들은 개인적으로서 각기 자신의 위치에 따라 다양한 입장을 대변하는 인물들이어서 같은 대사라도 어떻게 표현하느냐에 따라 굉장히 달라질 수 있는 만큼 매 순간 민감했다. 제 곁에 있는 훌륭한 배우들이 이 모든 걸 가능하게 해줬다."

기자 역할의 이희준과 검사 역할을 맡은 하정우. [사진 CJ E&M]

기자 역할의 이희준과 검사 역할을 맡은 하정우. [사진 CJ E&M]

-아내인 문소리 배우의 도움도 컸다고.
"시나리오를 함께 읽고 작품에 대해, 캐릭터에 대해 가장 많은 얘기를 나눈 사람이다. 광화문 광장 시위 현장을 촬영할 땐 현장에서 시위 장면을 지도해줬다. 어떻게든 '1987'에도 캐스팅을 하고 싶었는데 적당한 배역이 없어 결국 '호헌철폐, 독재타도' 선창하는 목소리만 썼다." 문소리는 2003년 정재일의 뮤직비디오 '눈물꽃'에 출연했으며, 당시 연출을 맡았던 장 감독은 문소리와 2006년 12월에 결혼했다.

-‘1987’이 세 번째 장편영화인데, 이전 비교해서 작업 방식이 달라진 건가.
"배우마다 결이 모두 다르다. 내 생각이 있더라도 그걸 무조건 쏟아부어서 억지로 만든다고 되지는 않더라. 배우가 가진 요소와 내가 구상한 것을 어떻게 맞물리게 할 것인가를 고민해야 했다. 이게 제가 나이 들며 바뀐 부분이다. 현장에서도 내 직감을 믿고 즉흥적인 결정을 내리는 것도 많아졌다. 현장에서 안 되는 걸 억지로 밀어붙이는 대신 할 수 있는 것을 최대한 잘하자는 생각을 하게 됐다.

영화 '1987'에서 유일하게 허구 인물인 연희역을 맡은 김태리. 장준환 감독은 김태리와 많은 대화를 나누며 연희를 어떻게 하면 주체적으로 그릴 수 있을까 고민했다고 말했다. [사진 CJ E&M]

영화 '1987'에서 유일하게 허구 인물인 연희역을 맡은 김태리. 장준환 감독은 김태리와 많은 대화를 나누며 연희를 어떻게 하면 주체적으로 그릴 수 있을까 고민했다고 말했다. [사진 CJ E&M]

-일부에선 ‘1987’에 여성 운동권 인사들이 부각되지 않은 걸 아쉬워하더라.
"정말이지 그것은 뜻밖의 반응이었다. 왜냐하면 이 부분에 대해 저 역시도 예민하고, 굉장히 많이 신경 쓴 부분이라서다. 김정남(설경구) 캐릭터를 여성으로 바꿀까도 생각했다. 자세히 보면 여성 캐릭터가 곳곳에 포진해 있다. 만화 동아리 회장도 여학생이고, 한병용(유해진)에게 전화하는 민주화 운동가도 여성이고, 에필로그에서 잡혀가는 인물도 여학생이고…. 그리고 연희(김태리) 캐릭터가 중요한 역할을 한 몸으로 떠맡고 있다. 그리고 김태리 캐릭터를 어떻게 주체적으로 그릴까에 대해 많이 고민했다."

-제작 과정에서 가장 신경 쓰인 부분을 꼽는다면.
"신경 쓸 게 엄청 많았지만 특히 고민했던 게 박종철 열사가 고문받는 장면과 이한열 열사가 최루탄을 맞고 쓰러지는 장면이었다. 사실적으로 보여주되 잔인함 자체를 강조하기보다 박종철 열사가 당시 겪은 공포와 슬픔을 담아내고 싶었다…" 이 대목에서 장 감독은 목이 메서 더는 말을 잇지 못했다.

-이 영화가 끝이 아니길 바란다고 했다. 어떤 의미인가.
"1987년 그날, 그 광장에서 나와 우리는 제대로 걷고 있었는가, 지금 우리는 어떤 모습인가 하는 질문으로 이어졌으면 좋겠다. 2017년에 또다시 광장으로 나와야 했다는 게 어떤 의미인지도 돌아봤으면 좋겠다."

영화 '198' 촬영 현장의 장준환 감독. [사진 CJ E&M]

영화 '198' 촬영 현장의 장준환 감독. [사진 CJ E&M]

- 전작 ‘지구를 지켜라’는 블랙 코미디였고, ‘화이:괴물을 삼킨 아이’는 하드 보일드한 복수극을 그린 스릴러이다. '1987'은 전작과 결이 매우 다르다.
"아주 다르다고들 말하는데, 솔직히 저는 많이 안 변한 것 같다. '지구를 지켜라'도 그렇고, ‘화이’도 모두 천만 관객을 꿈꾸며 작업했다. 모두 제가 재미있으면 남들도 재미있을 거라고 믿고 작업했으니까. ‘1987’도 마찬가지였다. 아직도 마이너하고, 튀는 감성, B급 감성이 제 안에 유효하게 자리 잡고 있다. ‘지구를 지켜라’하고 명령문으로 제목 지은 것처럼 그런 이야기 하고 싶은 것도 크게 변한 것은 없다."

-방귀 뀌는 수퍼 히어로에 대한 영화를 필생의 프로젝트라고 말해 왔는데.
"그 계획은 여전히 유효하다. 지상으로 올라온 인어 이야기, 방귀 뀌는 슈퍼 히어로 얘기는 언젠가 꼭 해보고 싶다."

-다음 영화는.
"아직 정해진 것은 없다. 무엇이 되더라도 ‘대중성’이라는 틀 안에 갇히고 싶지 않다. 그건 나한테 독이 될 테니까. 내 마음을 잘 따라가는 게 중요할 것 같다. 영화 한 편은 2~3개월 만에 뚝딱 만들 수 있는 게 아니다. 길면 2년도, 3년도 걸린다. 그 시간을 버티려면 내가 먼저 재미있어야 하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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