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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독]KTB 떠나는 권성문 회장 인터뷰 “30대에 1000억 재산...지금 물러나는 게 옳은 선택"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1세대 벤처 투자자’ ‘벤처 풍운아’ ‘은둔의 투자자’. 권성문(57) KTB투자증권 회장을 수식하는 단어는 많다. 하지만 본인이 직접 자신에 대해 말한 적은 거의 없다. 권 회장은 1999년 한국종합기술금융(KTB)을 사들여 투자전문회사인 KTB네트워크로 개편했고 지금의 KTB투자증권으로 만들었다.

자본잠식 회사 인수해 공들여 키워 #'투자 사관학교' 명성 지키려 노력 # #직원, 회사 보호하는 게 가장 중요 #경영권 유지 못했다고 후회 안 해 #직원 폭행사건은 무조건 내 잘못 #스타트업 투자엔 본능적 감각있어 #누구든 협력 요청하면 도와줄 생각 # #

2016년부터 이어진 이병철 KTB투자증권 부회장과의 경영권 다툼 끝에 그는 회사를 떠난다. 제3자에게 지분을 넘기려 했지만 이병철 부회장이 우선매수청구권을 행사하면서다. 권 회장의 주식 1324만 주(18.8%)가 이 부회장에게 팔린다. 1대 주주 자리는 이 부회장에게 넘어간다.

권 회장은 “제가 물러나는 게 회사를 위한 가장 옳은 선택이라고 생각한다. 아쉽지만 어쩔 수 없다”며 “제가 회사에 있기 때문에 갈등이 있는 것이기 때문에 결단을 내렸다”고 말했다. KTB투자증권이 아닌 외부에 있다는 그는 전화 통화로 인터뷰에 응했다. 인터뷰는 4일 오전 9시부터 10시까지 한 시간가량 진행됐다. 아래는 일문일답.

19년 몸담은 회사를 떠나게 됐다.

“자본잠식 상태의 회사(한국종합기술금융)를 그 당시 인수해서 지금 모든 회사를 제 손으로 하나하나 만들었다. KTB자산운용, KTB프라이빗에쿼티, KTB신용정보. 하나하나 공들여 만들어 지금까지 키워왔다. 나름대로 최선을 다했다. 수많은 사람들, 수많은 임직원들과 같이 해왔는데. 지금은 그래도 제가 물러나는 게 회사를 위해 가장 옳은 선택이라 생각한다. 아쉽지만 어떻게 하겠나.”

권성문 KTB투자증권 회장은 4일 전화 인터뷰에서 ’떠나는 게 회사에 도움된다고 생각한다“며 ’더 이상 갈등을 원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중앙포토]

권성문 KTB투자증권 회장은 4일 전화 인터뷰에서 ’떠나는 게 회사에 도움된다고 생각한다“며 ’더 이상 갈등을 원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중앙포토]

경영권을 이어받을 이병철 부회장이 어떻게 KTB투자증권을 경영했으면 좋겠나.

“이 부회장이 알아서 잘 할 거고 제가 얘기할 입장이 되는지도 모르겠다. KTB는 투자회사로서 자랑스러운 ‘KTB 정신’이 항상 있었다. 1981년 탄생한 한국종합기술금융에서 시작해 많은 인재, 우수한 투자 인력을 배출했다. ‘대한민국 투자 사관학교’ 얘기도 듣고 그랬다. 그 과정에서 항상 투명하게 제대로 처리하고, 비리도 없는 전통을 지켜왔다. 이 부회장도 당연히 그렇게 하겠지만 그런 점을 잘 유지하고 계승ㆍ발전시킬 수 있으리라 생각한다.”

하지만 배임ㆍ횡령 혐의로 검찰 수사를 받는 상황이다.

“수사 중인 사건에 관해 얘기해도 되는지 그런 부분이 좀 염려스럽다. 전 30대에 (벤처 투자로) 이름이 알려졌다. 가장 많은 조사를 받은 사람이기도 할 거다. 수많은 조사를 받았지만 제대로 된 비리가 있었다면 이렇게 있을 수 있었겠나. KTB 이전 가지고 있었던 옥션과 잡코리아 지분 매각으로 30대에 충분히 먹고살 만한 재산을 가지고 있었다. 지금 보면 큰 돈이 아닐 수 있지만, 그때 벌써 1000억원 대의 자산을 모았다. 2010년엔 게임회사 엔도어즈를 넥슨에 팔았다. 저는 항상 회사보다 더 부자였다.

KTB투자증권은 공개 회사다. 개인회사만큼 자유롭게 의사결정을 내릴 수 없고 투자 관련 위원회를 통한다. 초기에 위험이 큰 부분은 충분히 개인 비용을 들여서 파악한 다음 결정했다. KTB네트워크 상하이 사무소가 있다. 전에 제가 개인적으로 몇십 억원 이상 잃으면서 몸으로 부딪힌 걸 바탕으로 중국 사무소를 만들었다. KTB에서 가능한 실수를 하지 않기 위해서 모든 위험은 제 개인 비용으로 하고 그 다음 자신이 생기면 실행에 옮기는, 이런 과정에서 제 나름대로는 최대한 애정과 책임감을 가지고 해왔다. 그런 상황인데 지금 몇억 원 배임ㆍ횡령 얘기가 나오는 데 대해 제 입장에서 참담함을 금할 수 없는 상황이다.”

지난달 19일 돌연 제3자에 지분 매각 결정을 내렸다. 수사 결과에 따라 금융회사 대주주 자격을 잃을 수 있어 이를 대비한 결정이란 관측도 있다.

“금융 관련법 위반이 아닌 경우엔 처벌 받는다고 해서 대주주 자격을 잃지 않는다. 해당 문제에 대해선 검찰 조사에서 충실히 소명하려 한다. 그렇지만 검찰 조사와 언론 보도가 저에게 상당한 압박과 스트레스를 준 건 사실이다. 실질적으로 여러 가지 아픔과 고통, 억울함 이런 것들을 만들어냈다.”

아까 얘기했던 것처럼 이전에도 수사 선상에 오른 적이 있다. 그런데 20년 가까이 일궈온 회사 경영권을 갑작스레 내려놨다.

“이번에 진짜 간절하게 느낀 것은 최고경영진 사이의 갈등은 결국 회사를 파멸에 이르게 하고, 임직원을 혼란스럽고 힘들게 만들고, 장기적으로 주주도 아프게 만들고. 게다가 당사자도 힘들어지고. 오롯이 제대로 회사만을 위해 경영하는 사람을 찾는 게 가장 바람직한 게 아닌가 그런 결정을 내렸다. 전 현재 이런 상황이고. 이 부회장이 제가 볼 적에 열정적이고 잘할 수 있다고 생각이 된다. 다만 저와 방향이 다른 거다. 전 모든 것을 다 비우고 마음이나 욕심을 다 비우고 내려놨다.”

지난달 말까지 지분 매입을 이어왔는데.

“지난달 초중순까지만 하더라도 어떻게든 간에 경영권을 유지하는 게 맞지 않을까 해서 지분도 늘렸다. 그런데 제3자가 지분을 인수하겠다고 나섰다. 이틀 동안 고민해 결단을 내렸다. 제가 지금 회사에 있기 때문에 갈등이 있는 것이고, 제가 떠나면 회사를 위해서 도움이 되겠다 해서 결단을 내렸다. 그래서 전격적으로 됐던 부분이다.”

하지만 지난달 19일 이후에도 지분을 사들였다.

“단기 매매 차익 반환 규정에 의해 12월 취득 주식의 매매로 생기는 차익은 전부 회사에 반환하도록 돼 있다. (지분 매입 의사를 밝힌) 제3자 쪽에서 계약을 체결하기 전에 (경영권의 안정적 이양을 위해) 적극적으로 지분을 매입해달라는 요청이 있었다. 주가가 너무 오르고 내리는 것도 부담이고 괜한 오해도 받을 수 있었기 때문에 제3자의 양해를 구하고 오히려 조금씩 10~20만 주씩 샀던 거로 기억하고 있다.”

이 부회장이 우선 매수 청구권을 행사하면서 경영권이 이 부회장에게 넘어가게 됐다. 막판 계약 조건을 두고 갈등이 있기도 했는데.

”제3자에게 매각하려던 그 조건 대로 받아들여졌으면 했을 뿐이다. 무리한 요구를 하거나 원래 없던 요구를 해서 (매각을) 힘들게 하려던 게 아니다. 저와 같이 오래 일했던 사람들을 보호하는 게 가장 중요했다. 측근 몇 명(의 고용 보장)만을 무리하게 요구한 게 아니고. 모회사와 자회사를 포함해 모든 임직원의 신분을 3년간 보장하는 것이 가장 중요한 부분이었다.”

지난해 8월 논란이 됐던 직원 폭행 사건을 묻지 않을 수 없다.

“제가 그런 잘못을 한 것은 무조건 잘못이다. 이야기할 것도 없이 잘못이다. 퇴직금과 위로금을 주는 방식으로 합의가 잘 마무리된 사건이다. 그런데 1년 후 동영상이 공개됐다. 합의가 된 일이데. 참담하긴 했지만 대응하다간 더 사건만 커질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어서 아무런 대응을 하지 않았다.”

KTB투자증권 매각으로 막대한 자금을 갖게 되는데. 어떤 투자 계획을 갖고 있나.

“지금 사실은 아무 생각이 없다. 며칠 좀 쉬면서. 전 사실 (이 부회장의) 우선 매수 청구권 행사 기간이 오는 11일까지였다. (이 부회장의) 우선 매수 청구권 공시가 2일 나올 것이라 생각을 못했다. 그래서 아직도 얼떨떨한 상태다. 전혀 마음의 준비가 안되다시피 한 상태에서 이렇게 됐다. 현재는 아무런 생각이 없다. 이 부회장이 유구한 역사를 가진 KTB를 맡아 잘 이끌어가 주고 잘 경영하고, 제가 만들고 아꼈던 모든 회사 임직원이 다 잘됐으면 좋겠다는 그 생각만 분명한 상태다.”

벤처 투자자로서의 계획도 그런가.

“저는 벤처 이런 부분에 대해선 본능적으로 관심이 있고 새로운 것에 대한 호기심도 있다. 그런 부분에 대해 누구든지 적극적으로 요청하면 도와주거나 그렇게 할 의사가 당연히 있다. 어떻게 보면 살아가는 보람 중의 하나다. 그 부분은 당연하게 (계속해 나갈 것이라) 생각을 한다.

전 1세대 벤처 투자자다. 옥션과 잡코리아, 맥스무비, 티켓링크, 키움증권 그리고 엔도어즈 등 수많은 게임회사. 한두 개가 아니고 제가 관여한 10여 개의 벤처기업이 큰 성공을 거뒀다. 동일한 주주에서 성공한 회사가 많은데 어떤 이유가 있지 않겠나. 벤처 투자로 가장 성공적이었던 건 좋은 사람들을 많이 만났다. 최고경영자(CEO)가 될 수 있는 좋은 사람들을 만났다. 그들이 성취감을 느낄 수 있게 지분을 많이 갖게끔 노력했다. 그리고 또 제가 가졌던 원칙이 ‘모든 성과는 CEO가 한 거로 하자’였다. 전 인프라 역할만 하고. 그게 중요한 성공 요소라고 본다. 길게 생각하고 힘들더라도 끈질기게 이런 원칙을 고수했다.”

KTB투자증권을 떠나면서 남기고 싶은 말은.

“제가 결과를 내면 사람들이 진실을 알아봐 줄 것이란 믿음을 가지고 살았다. 하지만 생각과 달리 분위기에 휩쓸리면 휩쓸리는 대로 가버리는 경향이 많다는 걸 이번에 뼈저리게 느꼈다. 제가 어리석은 부분 때문에 물러날 수밖에 없는 상황이 됐다. 자괴감도 들고 반성도 해보고 그런 상태다. 지금 뭘 하겠다는 생각보다는 반성하고 거듭나야겠다 이런 생각을 하고 있다. 하지만 30년은 더 일할 수 있다. 어떻게 앞으로 살아갈지 지켜봐 달라.”
조현숙 기자 newear@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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