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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슈추적] 규제 풀자며 ‘네 것’은 안 된다는 여야 … 박용만 “안타깝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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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3면

‘2018년 경제계 신년인사회’가 3일 오후 서울 삼성동 코엑스에서 열렸다. 참석자들이 건배하고 있다. 왼쪽부터 유영민 과학기술정보통신부 장관, 손경식 CJ 회장, 백운규 산업통상자원부 장관, 김영주 한국노총 위원장, 이낙연 국무총리, 구자열 LS 회장, 김동연 경제부총리, 박용만 대한상의 회장. [연합뉴스]

‘2018년 경제계 신년인사회’가 3일 오후 서울 삼성동 코엑스에서 열렸다. 참석자들이 건배하고 있다. 왼쪽부터 유영민 과학기술정보통신부 장관, 손경식 CJ 회장, 백운규 산업통상자원부 장관, 김영주 한국노총 위원장, 이낙연 국무총리, 구자열 LS 회장, 김동연 경제부총리, 박용만 대한상의 회장. [연합뉴스]

박용만 대한상공회의소 회장은 3일 서울 삼성동 코엑스에서 열린 ‘2018년 경제계 신년 인사회’에서 “미래를 위해 반드시 해야 하는 것임에도 많은 과제가 ‘이해관계’라는 허들(장애물)에 막혀 있어 안타깝다”며 “기업들이 많은 일을 새롭게 벌일 수 있게 제도와 정책을 설계해 주길 바란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우리가 후발 주자로 생각해 왔던 중국에선 가능한 일이 한국에선 불가능한 사업 모델도 상당수에 이른다”고 했다. 기업하기 좋은 나라가 될 수 있도록 정부와 국회에 규제개혁의 필요성을 강조한 것이다. 박 회장은 앞서 기자단과의 신년 인터뷰에선 “기업 규제 수준이 사회주의 국가인 중국보다 높은데도 국회가 이를 수수방관하고 있다”며 보다 직설적인 화법을 구사했다.

속 타는 재계, 손 놓은 정계 #여당, 전 정부 프리존에 반대 입장 #야당은 “그러면 샌드박스도 안 돼” #내달 임시국회서 법안 처리 불투명 #박용만 “규제 수준 중국보다 높다” #재계 인사회서 개혁 강력히 요구

이낙연 “규제 없앨 테니 신산업 개척해야”

1962년 이래 역대 네 번째로 ‘대통령 없는’ 행사로 치러진 이날 신년 인사회에는 역대 최대 규모인 1300여 명이 참석했다. 하지만 매년 자리를 빛내던 대통령이 오지 않으면서 재계에서도 불참자가 많았다. 예년에는 참석하던 정의선 현대자동차 부회장과 최태원 SK 회장, 구본무 LG 회장 등이 오지 않았다.

대통령을 대신해 참석한 이낙연 국무총리는 “우리 경제가 3만 달러 시대에 머물지 않고 계속 성장하기 위해선 4차 산업혁명에 조속히 진입해야 한다”며 “규제를 과감히 없앨 테니 신산업, 신시장 개척에 힘써 달라”고 당부했다.

이처럼 새해를 맞아 청와대와 정부, 경제계는 한목소리로 “불필요한 규제를 없애야 한다”고 강조하고 있다. ‘2018년 경제정책 방향’이 발표된 지난달 27일 문재인 대통령은 “규제혁신은 혁신성장을 위한 토대”라며 “과감하고 창의적인 발상의 전환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법으로 금지한 행위가 아니면 모두 허용하는 ‘네거티브(negative) 규제’ 방식과 특정 사업 분야의 규제를 일괄적으로 풀어 주는 규제 샌드박스(Sand box) 도입 필요성을 거론했다.

이 총리도 지난 2일 정부 시무식에서 “대담한 규제 혁파가 필요하다”며 “규제 샌드박스가 새해 벽두부터 구체화됐으면 좋겠다”고 했다. 김동연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은 틈날 때마다 규제혁신을 언급하고 있다.

하지만 3일 경제계 신년 인사회에서 정치권 인사들은 차이를 보였다. 추미애 더불어민주당 대표와 홍준표 자유한국당 대표는 축사에서 ‘규제’라는 단어를 거론하지 않았다. 다만 안철수 국민의당 대표가 “최저임금이 급격히 오르고 규제프리존법은 통과되지 않는 문제가 걱정되고 우려된다”고 했을 뿐이다. 규제완화를 대하는 정치권의 모습을 간접적으로 엿볼 수 있는 장면이었던 셈이다.

특히 문재인 정부 출범 이후 청와대·정부와 적극적으로 보조를 맞추고 있는 더불어민주당은 규제 문제와 관련해 엄격한 잣대를 들이대고 있다. 우원식 민주당 원내대표는 3일 본지 기자와 만나 “무분별하게, 급하게 (규제완화를) 하면 안 된다”며 “제천 화재도 무분별하게 그렇게 (규제완화)해서 사고가 난 것”이라고 말했다.

[그래픽=박경민 기자 minn@joongang.co.kr]

[그래픽=박경민 기자 minn@joongang.co.kr]

여야의 더 큰 모순은 서로 자신이 발의한 법안은 “필요한 법안”이라고 주장하면서도 상대방이 발의한 법안에는 소극적이라는 점이다. 야당이 발의한 ‘규제 프리존(free zone)’과 여당이 내놓은 ‘규제 샌드박스’를 바라보는 관점이 다르다는 게 대표적인 예다. 두 법안은 구체적인 내용은 차이가 있지만 똑같이 규제를 풀자는 내용이 골자다.

박근혜 정부는 2015년 2월 지역 단위로 규제를 과감하게 풀어주는 규제 프리존을 지정하겠다고 발표했고, 당시 여당이던 새누리당(현 자유한국당)은 ‘규제프리존특별법안’을 발의했다. 19대 국회 임기 만료로 자동폐기된 이 법안은 20대 국회에서 재차 발의됐지만 아직 국회 문턱을 넘지 못하고 있다. 민주당이 “공공성이 훼손되고, 특정 재벌에 특혜를 줄 수 있다”는 논리로 막고 있다. 반면에 자유한국당·국민의당·바른정당은 찬성하고 있다.

규제 샌드박스 도입 논의의 경우 문 대통령이 불을 댕겼다. 4차산업혁명위원회 출범식이 열린 지난해 10월 “창업과 신산업 창출이 이어지는 혁신 생태계를 조성하겠다”며 직접 규제 샌드박스를 언급했다. 이후 정보통신기술 분야에 규제 샌드박스를 도입하는 내용의 정보통신융합법 개정안도 발의됐다. 하지만 한국당은 “경제 활성화를 위해 필요한 법안이라면 규제 프리존이든 규제 샌드박스든 협조할 용의가 있다”면서도 “규제 프리존에는 반대하면서 규제 샌드박스는 추진하는 민주당의 이분법에는 동의할 수 없다”(함진규 정책위의장)는 입장이다.

안철수 “프리존법 통과 안 돼 우려된다”

야권에선 지난해 정기국회 때 규제프리존특별법안을 처리하기 위한 여야 협상이 진전을 보였지만 지난해 11월 비공개로 열린 당·정·청 회의에서 청와대가 법안 처리에 난색을 보여 협상이 가로막혔다는 주장도 나온다.

당시 김동철 국민의당 원내대표는 “민주당은 규제프리존특별법에 긍정적 입장을 밝혔지만 당·정·청 비공개 회의에서 ‘재벌 특혜가 우려된다’며 청와대의 반대 의견이 나왔다”고 주장했다.

2월 임시국회가 열리더라도 규제 관련 법안의 처리는 불투명하다. 여야 모두 입장 변화가 없기 때문이다. 이런 정치권의 모습을 보며 경제계에선 “솔직한 심정이 정말 절규라도 하고 싶다”(박용만 회장)는 말까지 나오고 있다.

박태희·허진·하준호 기자 bim@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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