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VERTISEMENT
오피니언 사설

남북대화, 원칙 지키며 냉정하게 임해야 한다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30면

북한이 새해 벽두 우리와 대화할 뜻을 비친 데 이어 3일에는 판문점 연락 채널을 다시 개통한다고 밝혔다. 2년 만에 남북 간 연락망이 복원된 건 의미가 작지 않다. 북한의 무분별한 핵·미사일 도발로 한반도가 전화에 휩싸일 우려가 커진 상황이다. 위기 관리를 위해서라도 남북이 대화에 나설 필요성은 크다. 북한이 참가 의사를 비친 평창 겨울올림픽이 한 달여 앞으로 다가온 점에서도 그렇다.

다행스러운 2년 만의 판문점 채널 복원 #대화 필요하나 북 노림수 말리면 안 돼 #올림픽 참가 유도하며 핵폐기 촉구해야

그러나 정부가 모처럼의 대화 분위기에 휩쓸려 앞뒤 재보지도 않고 움직인다면 북한의 노림수에 말려들 뿐이다. 북한은 지난해 우리의 대화 제의를 일축하며 미사일을 17번이나 발사했고 6차 핵실험까지 감행했다. 지금도 언제든지 대륙간탄도미사일(ICBM)을 발사할지 모른다는 관측이 나돈다. 이런 마당에 돌연 대화 모드로 돌아선 그들의 속내부터 면밀히 파악해야 모처럼의 남북대화가 평화와 비핵화의 선순환 촉매가 될 수 있다.

김정은의 신년사를 보면 북한의 의도가 명확히 드러난다. 우선 북한을 ‘핵강국’으로 선포하고 핵무기의 ‘책임 있는 관리’를 선언했다. 또 미국을 겨냥한 ‘핵단추’가 김정은 책상 위에 있다고 주장해 한·미 동맹 균열, 남남 갈등을 부추기려는 속셈도 드러냈다. 결국 김정은의 대화 선언은 정부의 제안에 호응한 게 아니라 평양의 핵무장 로드맵에 따른 화전 병행 전술의 일환일 공산이 크다.

그런데 정부의 대응은 이산가족 상봉과 남북 올림픽 단일팀 구성 등 ‘남북대화가 안겨줄 성과’만 강조하는 인상이다. 여권은 “대화만 재개되면 우리가 운전대를 잡게 된다”는 근거 없는 낙관론을 흘리고 있다. ‘6·25 이래 가장 위험한’ 안보 위기의 본질인 북핵엔 침묵하며 대화에만 매달리는 모양새다. 이런 기조가 가속화되면 비핵화를 전제로 한 대화 원칙은 실종되고 북한의 숨통만 열어주는 결과를 빚을 것이다.

미국이 남북대화 모드에 제동을 걸고 나선 것도 이런 문제점을 우려했기 때문이다.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은 “내 핵단추가 훨씬 크고 강하다”며 김정은의 ‘핵단추’ 발언을 일축했다. 니키 헤일리 주유엔 미 대사는 “북한이 누구와 대화해도 자유지만 핵폐기 안 하면 의미 없다”고 했다. 정부는 냉정해져야 한다. ‘대화를 위한 대화’는 북한의 핵무장을 돕고 한·미 동맹은 약화시키는 최악의 수다. 지금은 막 효과를 내기 시작한 대북제재를 더욱 확실하게 밀어붙여야 할 시점이다. 그래야 북한이 ‘입구는 동결, 출구는 비핵화’인 협상 테이블에 나올 유인이 생긴다.

우리도 원칙을 지키며 남북대화에 임해야 할 것이다. 의제는 평창올림픽 참가에 국한하고, 핵폐기도 집요하게 촉구해야 한다. 북한은 대화 테이블에서 올림픽 참가 조건으로 한·미 연합훈련 중단과 돈(경협)을 요구할 공산이 높다. 이걸 들어주면 우리 안보에 커다란 금이 갈 것임을 명심해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