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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사설

소방서 앞 해맞이 불법주차의 암담한 시민의식

중앙일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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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0면

충북 제천 화재 참사는 불법 주차로 소방차 진입이 늦어져 피해가 컸다. 소방관들은 현장에 도착하고도 길을 가로막은 차량을 치우느라 금쪽같은 30분을 허비했다. 그런 원인이 겹쳐 29명이 목숨을 잃었다. 당시 시민들은 “소방차를 가로막는 불법주차는 무관용 원칙으로 강력히 처벌하라”며 공분했다. 그게 불과 열흘 전이었다.

하지만 어느새 경각심이 증발해 버렸다. 새해 첫날 강원도 강릉시 경포119안전센터 앞마당이 해맞이 관광객들의 주차장으로 변한 게 상징적이다. 소방관들이 20만 명의 관광객 안전을 우려해 경포해수욕장으로 현장 점검을 나간 사이 차량 10여 대가 안전센터를 점령했다. 당시 센터에는 출동했던 펌프차 1대와 구급차 1대 외에 펌프차 1대가 대기 중이었다. 소방관들이 일일이 차주에게 전화를 걸어 차를 빼는 데만 40분 넘게 걸렸다고 한다. 만일 비상 상황이 발생했다면 어찌 되었겠나. 아무리 이례적인 날이라지만 소방차 길마저 가로막은 무개념 주차가 아연할 뿐이다.

목욕탕도 나아진 게 없었다. 서울소방재난본부가 제천 참사 이후 목욕탕·찜질방 319곳을 점검해 보니 120곳이 엉망이었다. 비상 통로에 장애물을 놔두거나 합판을 설치해 출구를 막은 곳이 수두룩했다. 제천의 판박이였다. 화재 참사를 남의 일로만 여기는 업주의 불감증이 만연한 것이다.

새해 시급한 건 ‘안전 대한민국’의 방향을 재정비하는 일이다. 정부와 국회가 나서 소방대원들이 구조 과정에서 차량과 시설물을 부수더라도 책임을 묻지 않고, 불법 주차를 강력히 처벌하는 법안을 조속히 정비해야 한다. 미국·캐나다·영국 등 선진국들은 다 그리하는데 왜 꾸물대는가. 시민의식의 재무장도 중요하다. 일이 벌어질 때만 흥분하지 말고 평상시 단단한 안전의식을 갖추는 풍토를 만들어야 한다. 정부·지자체·학교가 나서야 한다. 안전 대한민국은 거저 얻어지는 게 아니다.